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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그렇소 나는 비정규직이요 2001.6.20.금요일
열분들 안녕하신가? 위의 뉴스 쪼가리는 <한겨레 21> 6월 13일자의 한 부분이다. 요번주 주제는, 그렇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다. 얼마 전 있었던 <민주노총>의 연대 파업은 '가뭄에 나라가 온통 난리인데 왠 파업'이라는 보수 언론들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 노동 문제의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어물어물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슬픈 일이다. 아무튼 본 우원 요번 건을 보면서 좃선의 놀라운 '가뭄' 장풍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안사안별로 꼼꼼하게 노조의 주장을 살펴보는 대신 무시무시한 장풍 한 방으로 민주노총 연대파업을 튕겨내신 좃선의 고난도 무공. 중원을 주름잡고 있는 최고 고수의 실력이라 할만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파업이 허무하게 끝났다고 우리의 삶도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것이 인생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똥꼬털을 바짝 세우고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본 우원 열분들께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 나왔다. 과연 비정규직이란 무엇이며 비정규직과 관련한 쟁점 사항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들은 무엇일까? 그러나! 열분들 중 계실 진보적인 독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본 우원 무조건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는 노조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조의 주장을 100% 수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해결되어서도 안될 문제다. 본 우원 다시 힘겹게 냉정한 경제적인 분석을 할 터이니, 심장이 약한 분들이나, 18세 미만의 청소년, 임산부, 노약자들은 다른 페이지로 이동해주시기 바란다. 지금 본 우원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다. 그리고 혹시 가슴이 너무 뜨거워 냉철한 분석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다른 페이지로 이동해 주시라. 딴지에 다른 좋은 기사 쌔고 쌨다. 먼가 화산처럼 터져오르는... 그렇지만 본 우원 역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몸. 갑자기 <청계천 8가>란 민중가요 생각이 난다. 심각한 야그 하기 전에 숨 돌리는 셈치고 담배 한 대 피워가며 이 노래 들어보자.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를 살짝 눌러주시라 우리의 인생살이란 왜 이리도 신산하며 고단한 것인지.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것인지. <청계천 8가>의 노래 가사를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크아아~~~~~~~~ 산란해진 마음들을 다시 다잡고, 디벼 보자. <그렇소, 나는 노동자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요> 개념 정의, 비정규직이란 무엇인가? 사회과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하게 개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이다. 토론 중 서로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대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경험해 보셨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용어에 대한 개념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개념 정의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이 필연적으로 반영되게 된다. '비정규직'을 둘러싼 논쟁 속에도 '비정규직'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개념 정의가 존재한다. 무엇을 '비정규직' 노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사용자측과 노조간에 상당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말보담두, 수치로 제시하는 것이 열분들 이해에 빠르겠다. 자 보시라. 먼저 사용자측의 입장을 배타적으로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용자측의 입맛에 딱 떨어지는 야그를 하고 계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박기성 교수가 제시하는 수치를 보자. 박교수는 <비정형노동자의 측정과 제언>이라는 <한국노동경제학회> '특별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에서의 비정형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26.4%인 342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비정형 근로자에는,
등이 포함된다. 박교수와 <한국노동경제학회>에서는 정규(regular)와 비정규(non-regular)라는 개념 속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희석하기 위해 비정규(non-regular) 대신 비정형'(non-standard)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치만 뭐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개념인 것. 본 우원은 이를 모두 싸잡아 걍 '비정규직'이라고 하겠다. 이에 비해 노조측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한국산업노동학회>의 입장을 보자. <비정규직과 노동운동>이라는 세미나에서 김유선 교수가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의 실태>란 논문은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758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58.4%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 김교수가 주장하는 비정규노동자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따온 것일까? 그건 통계청에서 매달 발표하는 <경제활동 인구조사>라는 통계자료에 의한 것이다. 통계청의 보고서는 근로자들의 '종사상 지위'를 상용, 임시, 일용으로 나누고 있는데,
을 지칭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는 지금까지 비정규직을 파악하는 가장 통상적인 기준으로 사용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이라 하면 임금노동자들 중 상용을 제외한 임시와 일용노동자의 합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수는 674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2%가 된다. 그러나 김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상용 근로자들 속에 숨어 있는 계약근로, 파견, 요역 가내 근로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파악해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수치가 임시(443만명)+일용(230만명)+상용 중의 비정규직(84만명)을 더한 758만명이라는 수치다. 비슷한 개념을 두고 양자 사이에 416만명이라는 똥꼬시린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휴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어느 놈의 야그가 맞을까? 416만명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노동경제학회>가 통계청의 통계 기준상의 '임시', '일용'직 중 한 직장에서 1년 이상 계속 근로가 가능한 '장기임시근로자'들을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분류한 데 있다. 크아아~~~ '장기 임시 근로자', 용어 그 자체부터 좀 구리하게 들리면서 짜증나지 않는가? '장기'면 장기고, '임시'면 임시지. '장기 임시' 근로라니? 이 무슨 열라게 삽질하다 복상사하는 소린가?
'장기임시근로자', 그럼 이 분들은 우리 나라 경제에 몇 분이나 계실까? 놀라지 마시라? 자그만치 367만명이다. 367만명의 이 분들. 바로 이들이 비정규직과 관련한 많은 논의의 핵심에 계시는 분들이 되겠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고용되지는 못했지만, 매년 계약을 경신해가면서 한 작업장에서 몇 년씩 저임금에 신음하며 일하고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에서는 어느 정도 장기 고용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통상적인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 볼 때 1년 1년 계약을 경신하는 자리를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규직은 <근로기준법> '해고제한규정'에 의한 보호를 받게 되어 중대한 귀책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고용이 대체로 보장이 되는 자리를 말한다. <한국노동경제학회>분들이 좋아하는 학적으로 세련된 개념 정의가 어떤 건지는 본 우원 잘 모르겠으나 일반인의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올바른 개념 정의는 김유선 교수의 758만명 노동자의 58.4%가 맞는 야그인 것 같다. 일반인들의 상식 차원에서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일년 일년 고용을 갱신하는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은 우리 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58.4%인 758만명이다. 잡소리 가져다 붙이지 말자. 짜증난다. 758만명, 여기서 끝. 그렇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그럼 비정규직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비정규직의 증가는 노조의 주장대로 비열한 사용자측의 농간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사용자측의 주장대로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영상 긴박한 필요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양자 모두 진실인가? 아니면 둘 다 구라일까? 비정규직이 생겨나는 이유: 그렇담 왜 자꾸 똥꼬 시린 비정규직이 생겨나는 것일까? 본 우원 먼저 흥미로운 통계자료를 하나 제시하겠다. '비정규직'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IMF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의 노동 시장의 추세를 바라볼 때,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은 대개 언제나 45% 전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여기서의 비정규직은 '일용+임시'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런 통계 자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래프에서 보듯 97년 외환 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비중이 45%대에서 53%로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그 전에도 40%가 넘는 정도로 우리 경제에 꾸준히 존재해 왔다. 이는 적정한 정도의 비정규직의 존재는 우리 경제 구조상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주장의 방증이 된다. 단지 문제는 4년 남짓한 시간에 45%에서 53%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투쟁의 칼날은 '비정규직' 전체가 아닌 이의 급격한 증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렇담, 이런 건전한 비정규직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학생들이 방학중에 하는 파트타임 잡, 흔히 말하는 노가다, 자발적으로 풀타임 잡을 거부하고 여가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인한 비정규직. SOHO라 불리는 자택 근무. 일의 특성상 계절을 타는 업무들. 이딴 것들은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 필요한 비정규직이다. 이런 일에까지 굳이 정규직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게 본 우원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경제에는 비정규직이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간단한 모델을 생각해 보자. 열분들은 패스트푸드 점 딴지리아의 사장님이다. 패스트푸드점 딴지리아의 특징은 겨울에는 비교적 손님이 뜸하고 여름이나 방학중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등 매상의 변화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매장을 관리할 사람들로 호황기인 여름에는 10명, 그리고 겨울같은 비수기에는 5명이 필요하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사람을 고용할 것인가? 1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할 것인가? 아니면 5명 정도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5명은 경기를 보아가며 유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파트타임 학생을 쓸 것인가? 아래 그래프를 보아가며 이야기를 계속하자. 위 그래프는 딴지리아 사장님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말해준다. 열분의 사업에는 수요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호황기에는 사람을 많이 고용할 수 있어도 불황기에는 불가피하게 고용을 정리해야 한다. 아마 열분이 합리적인 사장님이라면 열분은 5명의 정규직 서빙맨을 고용하고 그때 그때 상황을 봐가며 사람들을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더 고용하던지 말던지 할 것이다. 그렇담, 이런 결정을 내리는 열분은 매정하고 비열한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저 열분은 당연한 경제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경제 원리'란 그것을 따르지 않았을 때 열분이 망하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원리'이다. 이렇게 수요의 불학실성이라는 외부조건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생산 시스템을 어려운 말로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적 생산 시스템이라고 한다. 열분이 1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10명 정도의 노동력이 필요할 만한 안정된 수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 생산,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들의 입맛의 변화, 그리고 옆 패스트푸드점과의 경쟁이라는 제약 조건은 열분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가한다. 그 뿐인가? 세계화라는 요상망측한 현상은 열분들 가게 옆에 막도날드라는 무시무시한 경쟁자를 데려다 놓는다. 열분들? 본 우원이 지금 개구라치는 것 아니다. 이거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담 왜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 장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본 우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나라의 경제 구조다. 지난 수년간의 울 나라 노동 통계치를 살펴볼 때, 전체 임노동자 중 대략 40%의 비정규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둘째, '포스트 포디즘'적 유연 생산 시스템을 요구하는 세계적 경제구조의 변화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기업들은 빠르고 유연하게 수요의 변화에 적응해야한다. 적응에 실패할 경우 망하는 것 밖에 달리 우리가 갈 곳은 없다. 셋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IMF 이후의 변화다. IMF 이후 몰아 닥친 구조조정의 한파는 우리 경제에 단기간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해냈다. 크아~~ 본 우원 생각하기에 우리가 문제제기를 해야할 점은 앞의 두 가지가 아니고 이 마지막 경우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지만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이렇게 처참하게 우리의 삶이 파괴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본 우원 정말 어렵게 이런 말씀을 드릴까한다. 우리가 좋아하던 싫어하든
21세기는 자본의 시대이다. 자본의 냉혹한 논리는 점점 더 노동의 활동 범위를 제약할 것이고, 미안하지만 그리고 정말 처참하지만 앞으로 '비정규직'의 비중은 점점
늘어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거센 칼바람과 함께 적응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한 세계화를 만드는 일이다. 압도적으로 밀려드는 세계화 자본의 움직임 앞에 떡하니 버티고 배째며 깔려죽을 수는 없다. 지혜롭게 한편으로 비껴서서 가열찬 똥침을 날릴 준비를 하자. 우리의 고민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 말 한 번 다시 외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부당한 것들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특히 IMF 이후에 불어닥친 '비정규직'의 증가에 대해서는 소리를 높여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그렇다면 IMF 이후 발생한 '비정규직'의 증가는 어떤 양태를 띠고 있을까? 다시 딴지리아의 야그로 돌아가 보자. 딴지리아를 경영하다 실패하고 돈만 까먹은 열분들. 다시 새로운 사업을 중국집 딴지반점을 오픈했다. 패스트푸드점에 비해 중국집의 유리한 점은 하루에 나가는 매상이 변동 없이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하면 딴지리아 때와는 달리 안정적인 수요가 예측이 되고 따라서 정해진 인원을 변동 없이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슬슬 돈이 욕심나기 시작한 열분들. 종업원들에게 주는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장사를 하기 위해 열분은 10명의 철가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열분은 '구조조정'과 '군살 빼기'란 이름으로 '비정규직' 철가방 5명, '정규직' 철가방을 5명씩 고용하게 된다. 똑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철가방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은 한달에 100만원에 기타 여러 가지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등의 사회 보험까지 가입이 되어 있다. 그러나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50만원의 어린애 껌값도 안되는 월급에다가 여러 가지 사회 보험에 혜택도 전혀 못 받게 되었다. 이거 말이 좋아서 철가방이지 철가방 업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매일 오토바이 위에서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매연을 마시니까 기관지염 같은 직업병에도 걸릴 수 있다. 크으~ 그러나 딴지리아 사업 실패 후 독기가 돈 여러분 딴지반점에서는 오로지 돈벌 궁리로 다른 야그들은 쳐다도 보지 않으신다. 사실 비정규직 철가방들이 하는 일은 그래프에서 보듯이 한 80만원 쯤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열분은 50만원밖에 주지 않으신다. 험한 말 써서 죄송하지만 열분들은 지금 '비정규직' 철가방들을 착취하고 계신 거다.
음... 그럼담 열분들은 왜 일부 철가방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셨나? 이유? 간단하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IMF 이후 우리 나라 '비정규직'이 증가한 원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실제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많다. 하루 아침에 정식 직원에서 해고가 되고 바로 다음날 바로 '비정규직'으로 재고용된 은행 여직원들. 몇 년동안 뼈빠지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아닌 밤중에 복상사(腹上死)식으로 단번에 해고당한 7,000 한국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의 위협을 피해 비정규직이지만 이거라도 좋다고 울며 겨자먹기로 비정규직 전환 서약서에 눈물을 흘리고 도장을 찍으신 우리의 노동자분들. 작년 공권력에 두드려 맞고 피 질질 흘리면서 개처럼 끌려나가신 롯데 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분들. 에피소드 하나 하나 소개하려면 날밤 샐 것 같구, 본 우원 술도 못마시는데 소주 생각날 것 같아 이쯤에서 관두기로 하자. 그렇다면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위에 놓여 있을지 통계자료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사회보험 문제를 보자. 아까 딴지반점 비정규직 철가방들은 각종 사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비정규직은 각종 사회보험(국민연금, 직장의보, 고용보험)등에 가입률이 22%-25%에 불과하다. 이거 비정규직 철가방들은 사고라도 한 번 날라치면 그냥 죽는 편이 낮겠다. 정규직은 얼마 정도 가입되어 있느냐구? 정규직의 가입비율은 74-91%에 해당한다. 그리고 임금문제를 보자. 딴지반점의 철가방들은 50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정식 철가방들은 10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했다. 에구 똑같은 일을 하는데 그렇게 임금 차이가 많이 나려구? 본 우원이 열분들 놀래켜 줄라고 구라치는 것 같나? 실제 사실을 보자. 비정규직의 지난 3개월 간 월 임금 총액 평균은 84만원이다. 그에 비해 정규직 임금은 157만원이다. 계산기 두드려 봐라. 정규직 월급의 54%밖에 안돼는 수치다. 본 우원 구라친 것 없다. 여기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생산성의 차이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시는 똑똑한 분들 있을 줄 안다. 이와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계신 안주엽 연구원이 <노동경제논집>에 발표한 <정규근로와 비정규근로의 임금격차>란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생산성 차이를 고려하고도 비정규근로와 정규근로의 임금차는 35%에 이른다고 한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을 수 있는 학력 차이나 연령차, 노동에 대한 숙련도, 생산성 차이를 제어하고 나서도 35%의 임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 35%는 경제학적으로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임금 차이다. 휴우~ 뭐겠냐? 지금 이 분들 착취당하고 계신 거다. 마지막으로 노동 시간을 보자. 그렇다면 사회 보장도 덜 받고, 임금도 적에 받고 그러는 딴지반점 비정규직 철가방들은 일을 덜하고 계신가? 이게 또 그렇지 않다. 딴지반점 비정규직 철가방들은 지금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47.5 시간 그리고 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47.1시간이다. 만약에 누가 '비정규직'이 뭐냐고 물으면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고, 사회
보험 혜택은 별로 받지 못하는 분들이라고 대답하라. 크아아~~~ 이 말 정답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대안제시. 음... 열분들 똥꼬시리게 역까지 와서 본 우원도 잘 모른다고 발뺌하면 쫘증 나시겠지? 음... 좋다. 본 우원 소신을 말씀드리겠다. 에이 더러운 넘이라고 본 우원 얼굴에 침 뱉으려면 뱉으시라. 그렇지만 본 우원 소신을 꺽지는 않으련다. 하나 하나 본 우원 생각을 말씀드리마. 먼저 당연한 것 두 가지부텀 말씀드리자. 첫째,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 보험의 강화이다. 아까 비정규직의 사회 보험 가입율이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회 보험이란 만약 뭔 일이 났을 때, 이를 대비해서 돈을 적립하는 것을 말한다. 아까도 보았듯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훨씬 열악한 경제 환경에 놓여 있다. 이 분들의 보험 가입 비율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이거는 따지고 뭐고 할 것도 없는 야그다. 오로지 실천의 문제이다. 둘째, 시급한 임금의 현실화이다. 아까도 보았듯 엄밀한 경제적 분석을 통해서두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턱없는 임금을 받고 있다. 월급 84만원이 뭔가? 84만원이. 우리 나라에서 84만원 받고 누가 살 수 있겠나? 생산한 만큼 기여한 만큼 돈을 받겠다는 것은 투쟁의 문제가 아닌 권리의 문제이다. 그 동안 비정규직들은 엄청난 착취를 받아온 것이다. 사업장마다 합리적인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산출해 그만큼 지급해야한다. 이것도 따지고 뭐고 할 것도 없는 당연한 야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 드리기 힘들다. 음... 뭔 야그냐면. 현재 노조에서 주장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것이다. 사실 '장기 연속 근로자'들은 똑같은 작업장에서 매년 근로를 연장하면서 근무하고 있다. 이 분덜 상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측에서는 '장기 연속 근로자'들에 대해 계약 연장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2회 이상 계약을 연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의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정규직을 계속 정규직화 시켜나가자는 소리다. 말 되는 소리며 본 우원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음의 그래프는 그런 제한이 주어졌을 때, 딴지반점 사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아까도 보았듯 딴지반점은 10명의 철가방을 고용하고 있다. 정규직 철가방은 5명, 월급은 100만원을 받는다. 비정규직 철가방은 50만원. 이때 50만원은 턱도 없이 부족한 것으로 당연히 80만원 정도를 받아야 한다고 아까 말했다. 그런데 이 비정규직 철가방을 모두 100만원을 받는 정규직으로 바꾼다고 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비정규직은 이제 안정된 직장에서 좋은 월급을 받으면서 살게 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똑똑하신 열분 딴지반점 사장은 고용을 줄이실 것이다. 왜 그렇냐구? 그래프에서 보듯 딴지반점의 균형점은 10사람 모두 80만원씩을 받는 점이다. 정규직이 그 동안 많은 월급을 받아온 것은 사실 비정규직이 생산성에 못 미치는 월급에 착취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을 가만히 방치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에게까지 100만원의 정규직 임금을 제시한다면 열분들은 장사를 할 수가 없다. 열분들은 아마 사람을 줄이고 있던 사람을 가지고 조뺑이를 치려할 것이다. 생각을 해 보라. 기업하는 사람들이 호구로 보이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면 당연 고용이 줄어든다. 경제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벌인 정책이 때때로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용 수준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으으~~ 이 야그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치만 열분들? 정규직에 손을 대야 한다. 사실 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쓰려고 하는가? 왜 정규직을 써야 하는 상시 업무에도 비정규직을 쓰는가? 그것은 정규직을 쓰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들어갈 돈도, 취해 주어야 할 보장책도 그리고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해고 요건도 엄격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어쩔 수 없다. 진정 우리가 불합리한 비정규직을 없애고자 한다면 정규직에 손을 대야 한다. 즉 우리 딴지반점 정규직 철가방들은 이제 80만원의 월급에 만족을 하셔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100만원씩의 월급을 주도록 강제한다면 경영자는 그에 맞게 야리꾸리한 방법으로 우리의 똥꼬를 아리하게 할 것이다. 실 사람을 안 쓰면 그만 아닌가?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고용의 결정권은 자본에 있다, 그리고 또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정규직은 그 동안 비정규직의 노동착취에 간접적으로 득을 보아 왔다.
사실, 이러한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공공연한 일로 감출 것도 못된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에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와 <단위 사업장의 복수 노조 허용> 문제가 동시에 유예되는 합의도 이러한 양자의 갈등 구조를 보여주는 예다. 단위 사업장에서 복수 노조가 허용된다면 비정규노동자 노조도 설립될 수 있고, 현재 노조 가입률 2-3% 대에 머무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 중심의 상급노조가 이를 막아버렸다. 음... 어느 신문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음과 같은 절규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부담스러우십니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규직에 대한 피해는 불가피하다. 본 우원이 보기에 음... 우리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의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려 할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철폐하는 것이 능사일까? 이것을 시작으로 정규직에 대한 보호도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로 '비정규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되어 버렸다. 본 우원이 보기에 노동계 내부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모두 잘 알고 계신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 있게 어려운 문제제기를 안 하신다.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정규직과 관련한 문제다. 이 점을 인정하고 들어갈 때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만약 진정으로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만약 없으시다면 본 우원 이제 별로 드릴 말씀이 없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다음의 <한겨레 21>의 기사를 보도록 하자. '비정규직'을 둘러싼 현재 노동계 내부의 갈등을 비교적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한겨레 기자의 갈등이 글 속에 면면히 묻어 나온다. 그러나 막나가는 딴지의 논설 우원도 아닌 <한겨레 21>의 기자가 이러한 갈등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의 기사는 역시 두리뭉실 도무지 뭔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게 끝나고 말았다.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겠지만, 정말로 필요한 자세는 사태의 본질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만약 우리에게 사태를 진정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사실 본 우원은 담배 못 피운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진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은 마음이다. 본 우원이 가장 답답해 하는 사람은, 무조건 절대적 가치를 내세우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몰아부치는 분들이다. 사실 인간은 모두 평등해져야 하며 다른 조건 없이 '비정규직'이 몽땅 '정규직'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본 우원 그런 말을 하실 때 그 분의 머리와 가슴 속에 얼마나 진지한 고민이 계셨는지 되묻고 싶다. 사실 본 우원도 이승환이 <이오공감>에서 노래했듯,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착한마음과 예쁜 사람과 좋은 나라만이 있어서, 싸움도 없고 미움도 없는 좋은 세상이면 좋겠다". 휴우~~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더냐?
그렇다. 비정규직 문제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우리의 고민의 시작점이 '비정규직'의 조건 없는 '정규직'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사태 해결의 핵심에는 정규직의 양보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본 우원에게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분이 풀리고 정신이 되돌아 올 때쯤... 사태의 본질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다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 보자.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본 우원 정말로 여러분께 감사하겠다. 자 그럼 이만. 졸라! 딴지 경제부 논설우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