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이 진녹색으로 변한 한여름의 어느 날, 동네 카페에서 동생과 마주 앉았다. "언니가 이 동네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돼 가네. 이사 와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야?" 그러고 보니 한 해도 어느덧 반이 지났다. 흑백 필름처럼 스쳐가는 지난날 속에서 컬러 장면처럼 반짝거리는 순간을 정지시켜 봤다. 잠깐이지만 명징한 행복을 느낀 순간들이었고, 그곳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벌써 몇 달 전 일이다. 더운 날씨에 등산을 감행했다가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도착한 날이었다. 점심으로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다시 집을 나와 빵집까지 걸어갔다. 우리 집은 산골짜기여서 어느 가게를 가든 왕복 30분 이상은 걸어야 하는데 그날도 샌드위치를 사 들고 땡볕 아래를 걷자니 다리가 녹는 것 같았다. 지친 상태로 터덜터덜 걷던 중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아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엉겁결에 "어, 안녕" 하고 답했더니 어디 가시냐고 호기심을 보였다. 집에 간다고 하자 "안녕히 가세요!"라며 손을 흔들던 아이의 웃음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너도 잘 가!" 나도 아이만큼 활짝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피곤으로 얼룩졌던 마음이 반질반질 깨끗해졌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웃어서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처럼 순수한 이웃 때문에 웃음 났던 날이 또 있다. 단골 정육점을 방문한 날이었다. 청년 두 명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젊은 사람들이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이 예뻐서 고기 살 일이 있으면 부러 가는 곳이다. 불고깃감이 필요했던 그날, 고기를 계산하려고 하자 카운터 뒤에 있던 사장님이 갑자기 "이거 같이 하실래요?" 하고 말을 건넸다. "네?" 하면서 넘겨다보니 커다란 통 안에 뽀얀 젤리 같은 것이 가득 들어있고 사장님은 장갑 낀 손으로 그 위를 탁탁 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그는 "슬라임 놀이에요. 시간 되시면 해보세요" 하고 권했다. "아, 제가 지금은 볼일이 있어서…. 다음에 할게요"라고 둘러대고 가게를 황급히 나왔지만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넉살 좋게 대화를 건네는 정겨움에 마음이 슬라임처럼 부드러워졌다. 길에서 만난 아이, 정육점 주인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여름에 특히 자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에어컨 설치 기사다. 이사 온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통화할 때부터 그는 조금 남달랐다. 오전 11시로 방문 시간을 잡고 통화를 끝낼 때 그의 인사는 "내일 봐요"였다. '내일 봐요라니. 보통 내일 뵙겠다고 하지 않나?' 친근한 인사말을 남기고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기사는 가수 손호영을 닮은 얼굴이었다. 특유의 활짝 웃는 얼굴이 손호영과 비슷한 30대 중후반의 기사는 집으로 들어서며 역시나 남다른 인사를 건넸다. "날씨가 참 좋아요. 하늘 보셨어요? 정말 예뻐요." 초면에 하늘을 봤냐고 묻는 방문 기사라니, 참 보기 드문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을 열심히 설치해주는 모습이 감사해서 간단한 간식과 커피 한 잔을 내어줬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가벼운 대화를 건넸다. 아이들이 게임을 점점 더 좋아해서 걱정이라는 나의 말에 그는 "자기가 조절할 능력만 갖추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행복한 순간은 누구라도 오래 갖고 싶죠. 그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냈다. 그러고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하세요?" 뜻밖의 인물에게서 예상치 못하게 받은 질문이라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글쓰기였다. 하지만 난 항상 누군가의 앞에서 글쓰기를 좋아한단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왠지 '난 한참 멀었다'는 자격지심부터 앞서 창피했다. 그런데 '손호영 기사님'의 인자한 미소 때문이었을까, 스스럼없이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해요"라고 고백해버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오, 좋네요!" 왠지 모를 비웃음도, 따지듯 던지는 추가 질문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가 좋았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작업은 마무리 됐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의 걸음이 산책을 나선 듯 여유로웠다. 남은 한 해 동안 또 누가 내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올까? 누가 재밌는 일을 해보라고 권해줄까? 누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줄까? 이름 모를 이들의 다정함이 기대된다. 다음에 이들과 마주쳤을 땐 내가 먼저 크게 손 흔들며 인사를 건네야지. 이슬기 12살, 8살 남매를 두고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주부입니다. 3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고 기본 치료를 끝낸 뒤에 회복자 공기 좋은 불암산 아랫동네로 이사 왔습니다. 집마다 마당에 꽃을 가꾸는 이 동네에서 일주일에 세 번 등산을 하고 이틀은 필라테스를 하며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즐깁니다. 35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이용법
내가 사는 집은 35층짜리 고층 아파트의 10층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딱 한 대밖에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1층에서 탈 때도, 우리 층에서 탈 때도 엘리베이터가 오기까지는 언제나 한참 걸린다. 어느 때는 직전에 이용한 애꿎은 이웃들에게 불만의 화살이 돌아가기도 한다. 특히 택배 배송과 겹칠 때는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에 짜증이 더 커진다. 내 앞으로 배달된 물건도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얼마 전 불만과 답답함만 안겨주던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타고 올라오던 한 아저씨와 마주쳤다. 9층 버튼이 눌러져 있기에 9층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아저씨는 내가 10층을 누르자 돌연 9층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껐다. 아저씨의 의아한 행동에 '충수를 잘못 눌렀었나? 옆집에 온 손님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내가 사는 10층에 멈췄고 아저씨도 함께 내렸다. 그런데 옆집으로 향할 줄 알았던 아저씨가 계단으로 가더니 한층 밑으로 걸어 내려가는 게 아닌가. 9층이 집인데 윗집 사는 이웃이 더 편하도록 한 층 정도는 걸어 내려가는 것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하면 이웃을 더 배려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동안 내가 불편하다고 불평만 늘어놓은 것이다.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아래층 이웃의 배려심과 비교돼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그날 이후로 난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짜증 내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타면 상대가 버튼을 누를 때까지 기다린다. 목적지가 1, 2층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으면 걸어 올라가거나 내려온다. 이웃도 배려하고, 다리도 튼튼해지고, 전기도 절약되니 여러모로 유익하다.
조금씩 체력이 늘어 나중에 10층 이상 차이가 나도 이웃을 먼저 들여보내고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내릴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상상하면 불만 대신 즐거움이 맘속에 가득 찬다. 전병구 대한항공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대구가톨릭대학교 글로벌항공서비스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는 승무원의 꿈을 가진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듬직한 두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틈틈이 여행을 즐기며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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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늘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한 나날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