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정말 힘들었습니다.
월요일엔 이미 지난주 완성된 대본을 부랴부랴 수정하느라 힘들었고 양미옥에서 곱창 먹고 대취한 뒤 화요일 새벽같이 떠나 여수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수요일은 편집하느라 힘들었고 목요일은 또 갑작스레 경기도 양주 덕소에서 한 대학 야구부 훈련 장면을 찍었고 밤에는 꼬리찜에 거나하게 한 잔하고 금요일에 또다시 이 대학 야구부가 동아대학교를 이기는 순간을 지켜보고 대본을 작성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 대학은 전북 완주에 있는 한일장신대입니다.현재 선수 9명이 전부입니다.한 명이라도 다쳐 전열에서 제외되면 경기를 할 수 없는 팀입니다.학교의 지원도 없고 든든한 동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원해주는 이도 없어 9명이 감독이 핸들을 잡은 봉고차로 이동해 대회에 참여하고 훈련을 하고 있어 '봉고차 야구부'라 불립니다.
감독이 운전기사에 코치,주무,트레이너,매니저 노릇을 다 합니다.경기를 하면 아주 볼 만한데,동아대 팀은 30명이 넘는 인원이 덕아웃에 득실거리며 야유를 보냅니다.그런데 이 대학은 달랑 감독과 볼보이 한 명(김원재란 자퇴생인데 친구들이 노느니 공이나 주워달라고 해서 나와 정말 공을 주우러 다닙니다)만이 남아 소리를 질러 댑니다만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덕소 훈련장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자양중학교 야구부가 40명이 넘는 인원에 온갖 장비와 용수대를 들고 내리는데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하물며 중학교 야구부가 이럴진대 전통의 동아대 야구부와 비교는 아예 불가능하죠.
감독은 학부모들이 매월 60만~70만원씩 내는 회비에서 월급 200만원을 챙겨가면서 각종 대회가 열리는 곳까지 장거리 운전을 한 뒤 경기를 지휘해야 합니다.그런데도 이 작은 월급으로 모셔가겠다는 학부모들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이는데는 백운섭 감독의 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당신의 천직'이라고 격려했다는군요.그리고 감독은 선수들이 수도권에서 훈련을 해야만 어찌됐든 전력을 상승시킬 기회도 있다고 학부모들을 설득해 봉고차를 사게 된 것입니다.그러다보니 지방 학생 셋은 자취를 하게 됐고 감독의 사모는 반찬이며 김치며 할 때마다 조금씩 더해 학생들 자취방에 전달해주곤 한답니다.
그런 한일장신대가 23일 동아대와의 경기에서 5-3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전날 감독도 분명,질 거라고 말했고 그래서 그동안 촬영했던 내용의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지게 돼 25일 고려대와의 8강전을 나가 또 취재해야 할 상황이 됐지만 이들의 승리가 마치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2003년 이후 창단 이후 첫 3연승의 쾌거입니다.그리고 백 감독 부임 이후 12연패 뒤의 3연승이니,경기 뒤 학부모들은 백 감독에게 정말 정성 어린 감사 인사를 올리더군요.대회 성적도 신통찮고 희망을 잃은 선수들이 자꾸 빠져나가니까 전임 감독의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한양대 감독까지 지낸 이기호란 분인데 지난해 10월 언저리에 지휘봉을 놓은 지 얼마 안된 지난 1월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23일 경기를 보면서 많이 속으로 울었습니다.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정말 열심히 하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늠름해보였는지 모릅니다.45인승에 에어컨 빵빵 나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는 동아대 선수들을 바라보며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오고 땀 냄새 진동하는 12인승 이스타나에 각종 장비와 야구공을 싣고 몸을 싣는 한일장신대 선수들이 대견스럽기만 했습니다.
내일 고려대와의 8강전에서는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궁금합니다.3연승을 달리는 과정에서 고갈된 체력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다면 승리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하지만 이들이 패배하더라도 다음에는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란 점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들이 수비할 때 더그아웃에선 "다치면 안돼" 소리가 수시로 터져나옵니다.대체할 선수가 하나도 없기에 터져나오는 절규입니다.그리고 안타까운 현실을 처연하게 확인하는 기회입니다.
처음에 박동희라고,스포츠 춘추란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자인데 이 분이 이들을 다루면서 '봉고차 야구부'란 표현을 썼습니다.감독이나 선수에게 이런 표현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처음엔 기분 나빴지만 괜찮다.이게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단 한명의 포수이자 주장인 정종윤(4학년)은 얼굴도 잘 생긴 데다 덩치도 우람하고,한 눈에 보기에 믿음직한 선수입니다.동아대와의 경기 도중 타구에 왼손목을 다쳐 플레이트 위에서 나동그라졌습니다.경기 뒤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 황소 같은 눈망울로 이러는 겁니다."뼈가 으스러져도 괜찮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한 명이라도 다치면 안 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하는 절박함이 선수들과 감독,팀을 똘똘 뭉치게 만들고 불가능의 영역을 하나씩 허물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에게도 이 얘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고려대와의 경기 결과는 내일쯤 업뎃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한일장신대 야구부가 25일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6-7로 아쉽게 역전패하고 말았습니다.6-0까지 리드했는데 6회초 갑자기 심판들이 도와줘서 5-6까지 추격을 허용했고 2점을 더 잃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너무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팀이다.대학야구는 거의 프로수준일텐데 그렇게 선전하다니 선수도 선구이려니와 감독이 정말 대단타!!
예전 서울대 야구부 보다는 성적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