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과 애신아씨 그리고 김태리(1)
나는 TV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 맞추어가며 본 드라마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대조영” 정도. 그런데 요즘 늦바람이 들었다. 바로 “미스터 선샤인”이다. 시작 전에는 말도 많았지만 몇 번 보다 보니 중독이 되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첫 번째는 대본의 탄탄함이다. 알고 보니 사전 제작이란다. 여유를 가지고 작가가 집필할 수 있다는 얘기. 다음은 연기자다. 어디서 그런 배우를 모았는지, 정말 대단하다. 인기나 얼굴이 아닌 정말 연기자들. 조연 누구하나 어색함이 없다. 연예 뉴스에 많이 나오는 얘기. 사생활에서 말이 많았던 이병헌도 연기 하나는 정말 명불허전이다. 특히 그 눈빛. 신인 급 중에서는 단연 애신아씨역의 김태리다. 물론 내 개인적인 평가. “아가씨”라는 영화에 노출 많은 하녀 역 정도로 기억하던 배우가 이렇게나 물건이었다니! 한복 입은 단아함. 조선의 양반이었던 애신 아씨와 딱 맞아떨어진다. 미인의 기준을 바꾼 듯! 사실 그 얼굴은 요즘 말하는 서양식으로 정형화된 미인은 아니다. V라인이라 불리는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 큰 눈과 오똑한 코. 이런 전형적 미인과는 다르다. 평면적인 우리말로 동글납작한, 아니면 넙데데한 얼굴형에 크지 않은 눈, 약간 낮다는 느낌마저 주는 코에 약간은 각진 턱. 어느 졸업생이 그 각진 턱이 양반의 기품을 느끼게 한단다. 양반은 기품이 있다. 사실은 이것도 선입견. 인정. 그래도 한복 입은 김태리는 멋있다. 절제된 연기 또한 일품이다. 오락 프로에서 자주 패러디되는 김치로 싸다구를 날리고 고함을 지르는 막장 드라마의 연기가 아니라 슬픔이나 분노를 최대한 억제한 듯한 내면적 연기,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연기 내공이라니! 연기 9단의 김갑수 배우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대사! “자네가 이 의병의 대장인가?” 대단하단 말밖에. 특히나 그 발성법! 얼굴 마담 구실을 하는 연기자들이 자주 듣는 말.“국어책 읽는 것 같다.”는 표현은 적어도 애신아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병원 신세를 좀 져서 그런지 귀가 조금 좋지 않다. 젊은이들의 랩소리를 잘 알아 듣지 못 한다. 그런데 애신아씨의 대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 낮으막하게 내뱉는 소리가 다 들린다. 발음이 정확하다는 얘기도 되겠지. 이병헌과는 부녀 같다는 둥. 삼촌 같다는 둥 말들도 많았지만 그 러브라인까지도 멋 있게 소화. 참 대단한 배우 하나 건진 것 같다. 이젠 이 드라마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조선의 결말은 다 알고 있지만 애신아씨만은 열린 결말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그만큼 그 배역에 내가 빠져 있다는 얘기겠지. 미스터 선샤인 홧팅! 애신아씨 홧팅이다.
첫댓글 전직이 방송 평론가 아닌지요?
과찬의 말씀. 고교시절 철 없이 시나리오 공부 조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