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14년. 드디어 한국이 TV드라마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이태리가 오페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넘어섰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4년에는 영국이 뮤지컬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2034년에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체 수익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 연말에 예정된 드라마대상 시상식은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훨씬 많은 수의 세계인들이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호 PD의 4계절 시리즈 완결편 <봄의 찬가>가 벌어들인 돈은 <쥬라기 공원> 시리즈 전편을 통해 벌어들인 돈보다 많다. <봄의 찬가>외에도 그가 제작한 <가을 동화><겨울 연가><여름 향기>같은 TV드라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방영되고 있고, 리메이크 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다(<봄의 찬가>라는 제목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것이 정말 허무맹랑한 꿈일 뿐일까? 국가대표 문화상품 TV드라마,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 마냥 난망한 이야기일까? <겨울 연가>가 일본에서 낭보를 전해오기 전까지 이것은 한낱 백일몽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를 뒤덮은 한류 열풍이 단순한 계절풍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서서히 현실화 되고 있다.
한국 TV드라마를 키운 힘은 대중문화 권력 이동
이런 한국 TV 드라마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의 노하우나 연기자의 연기력,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의 발전 이유는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구할 수 있다. 바로 드라마를 둘러싼 대중문화 전반에 나타난 ‘권력의 이동’을 통해서 한국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 환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제작 일정에 쫓기며 쪽 대본을 들고 밤샘 촬영을 예사로 하고 있고 말단 스텝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TV드라마 제작에 관여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탤런트 안재욱과 <브레이크뉴스>의 공방이 한창이다. 발단이 된 것은 <브레이크뉴스>의 한 기사로, 그 기사에서 안재욱은 PD의 지시를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연기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안씨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 대한 일선 PD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 정도면 양반이다’라는 것이었다.
스타급 출연자와 PD간의 지위가 역전된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 PD들에게 병권의 상징이었던 캐스팅 권한은 짐이 되었다. 그만큼 스타급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한 방송사 드라마 국장은 스타와 드라마 제작진간의 뒤바뀐 권력관계를 자신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요즘 한창 한류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 연기자를 드라마 제작 문제로 몇 번 만났는데 늘 자신을 30분 이상 기다리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같이 주차장에 들어서고도 자신을 기다리게 하더라며 분개했다.
스타와 PD, 작가의 달라진 위상
그러나 이런 스타와 PD의 뒤바뀐 권력관계는 TV드라마를 둘러싼 ‘권력의 이동’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권교체는 전 분야에서 이뤄졌다. 일단 스타의 지형도에서도 권력 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주연급을 보면 이전에는 공채 연기자 중심에서 배역이 주어졌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기획사들이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외부 연기자, 즉 특채 연기자들이 주연급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브라운관 스타는 다시 가수와 모델로 대체되었다. 모델 출신의 김민준(<다모>) 김남진(<황태자의 첫사랑>) 강동원(<매직>), 그리고 비(<상두야 학교 가자><풀 하우스> 에릭(<불새>) 윤계상(<형수님은 열아홉>) 등 가수들이 기존 연기자들을 대신해 새롭게 안방극장의 스타로 등극했다.
인기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되는 대상이 주로 여성 연기자였다가 남성 연기자로 바뀐 것도 최근 나타난 현상이다. 고현정 심은하 김희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최진실 채시라, 그리고 전지현 송혜교까지, 지금까지 인기드라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성 스타가 남았다. 이들은 드라마를 통해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을 구현하고 그 반대급부로 톱 광고모델로 등극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천국의 계단> <불새> <파리의 연인> <풀 하우스> <형수님은 열아홉> 등의 인기드라마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삼각관계를 풀어가고 최지우 이은주 김정은 송혜교 정다빈 등 정상급 여성 연기자가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통해 주목받은 사람은 권상우 에릭 박신양 비 윤계상 등 남성 연기자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배역을 그리는 시선이 남성PD의 시선에서 여성작가의 시선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최근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양상중의 하나는 여자 주인공의 나이는 점점 높아지는 대신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또 하나의 권력이동은 바로 PD에서 작가로의 권력 이동이다. 이제 PD는 스타뿐만 아니라 작가에게까지 휘둘리는 작은 존재가 되었다. 요즘 TV드라마를 둘러싼 제작 환경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는 바로 드라마 작가의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캐스팅이라는 ‘절대반지’도 상당 부분 작가 손으로 넘어갔다.
얼마 전 만난 방송사 공채탤런트 출신의 한 친구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뒤바뀐 역학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는 PD나 작가와 맺은 관계에 따라 신분이 나뉜다. 작가가 캐스팅한 연기자는 성골, PD가 캐스팅한 연기자는 진골, 그리고 나 같은 공채출신 연기자는 6두품이다.”
여성 탤런트와 여성 작가의 뒤바뀐 역학관계를 방증하는 것 중의 하나가 누드집이 아닌가 한다. 설 자리를 잃은 많은 여성연기자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누드집 앵벌이에 나선 것은 아닐까? 여성 작가들의 위상 강화와 얼짱 몸짱 여성 연기자들의 누드집 열풍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대척점에 선 TV드라마와 한국영화
여성 작가의 극작 능력에 의존하는 드라마는 남성감독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영화와 정확히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TV드라마가 여성중심으로 재편될 때, 한국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지극히 마초적인 영화들이 득세했다. <인어아가씨> <매직> <왕꽃선녀님> 등 드라마가 자매관계에 주목할 때, <태극기 휘날리며> <우리형> 등 영화는 형제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TV드라마가 여주인공 위주로 삼각관계를 구성해갈 때 영화계에서는 <누구나 비밀은 있다> <주홍글씨> 등 남자를 애정갈등의 중심에 놓았다. 김희애 채시라 김혜수 등의 선전으로 TV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나이가 높아갈 때, 영화계에서는 최민식 설강구 송강호 등이 분투하면서 남자주인공의 나이가 높아졌다. TV드라마와 영화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쌍끌이로 우리 대중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대중문화 판세라고 볼 수 있다.
TV드라마를 둘러싼 권력 이동을 좀더 도식화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드라마의 세 주체인 방송사와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의 권력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TV드라마에 영향을 주는 세력은 크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송사와 PD 작가 연기자 등 현장 제작인력, 그리고 이를 관람하는 시청자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세력이 절묘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인기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각 분야에서 역시 여야가 바뀌었다.
먼저 살펴 볼 부분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권력이동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단순히 방송사의 하청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겨울연가><올인><파리의 연인><풀하우스> 등 외주드라마가 방송사 자체제작 드라마를 압도하면서 일부 유명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이런 권력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드라마 왕국 MBC 몰락이다. 가장 우수한 드라마 제작 역량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던 MBC는 외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SBS와 KBS에 권좌를 넘겨주었다. 외주채널의 등장은 이러한 역학 관계의 변화를 더욱 고착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실패한 로비’로 끝나기는 했지만 김종학 프로덕션의 송승헌 구명로비는 외주사의 입김이 얼마나 세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D에서 작가로의 권력이동이 진행 중인 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는 작칠피삼, 즉 드라마 성공의 결정요인은 바로 작가가 70%, 피디가 30%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만큼 작가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한 편의 성공으로 스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듯, 요즘은 작가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다.
얼마 전, 최근 가장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의 작가를 만났는데 그녀는 드라마의 성공으로 다음 작품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료가 20배가 뛰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한 편의 성공으로 모델료가 수십배가 오르던 연기자처럼 작가도 곧바로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뛴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녀와 함께 드라마를 제작했던 방송국 PD역시 적잖은 몸값을 받고 방송국에서 외주제작사로 이적했다.
지금까지 TV드라마의 일방적인 소비자로, ‘싸일런트 메이저리티’로 방치되었던 시청자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네티즌이라는 ‘샤우팅 마이너리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드라마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코드를 오픈한 리눅스 시스템이 윈도우 시스템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게 되었듯이 한국드라마의 열린 제작방식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은 이제 드라마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창작에도 관여하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발전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네티즌 반응을 의식한 인터렉티브한 제작방식을 꼽을 수 있다. 제작진이 ‘해피엔딩이냐, 반전이냐. 핫하게 갈 것이냐? 쿨하게 갈 것이냐?’의 판단을 할 때 이들의 외침은 드라마의 나침반이 된다. 졸속 제작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시청자 반응을 그때그때 수용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맞춤형 제작 방식은 한국드라마를 키웠다. 이는 사전제작 드라마가 줄줄이 실패하는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형식미의 완성도 성공 요인
이런 역학관계의 변화와 함께 한국드라마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장르별로 형식미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발전은 홈드라마 트렌디드라마 대하드라마, 삼각편대의 균형발전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드라마에 스테레오 타입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절대선은 아니지만 어떤 장르건 장르의 완성은 형식미의 완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홈드라마의 형식미는 ‘가모장제’의 완성으로 나타났다. 무능한 남편 대신 가계를 책임 진 가모장(<애정의 조건><금쪽같은 내 새끼><왕꽃선녀님>)이 이야기가 요즘 홈드라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제 드라마는 여성 가모장을 중심으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주축을 형성한다.
가부장제의 대표주자, 대발이 아빠는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가모장제’ 드라마에서 몰락한 가부장제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기까지 하다. 요즘 홈드라마에서 아버지는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등장한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벌인 외도가 모든 문제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인어 아가씨>와 <애정의 조건>은 좋은 예다. 실재로 그런 콩가루 집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배 다른 자녀가 연적이 되어 비극적 운명을 맞는 것은 요즘 드라마의 중요한 설정이다.
홈드라마는 TV드라마 중에 가장 안정적인 시청자군을 확보하고 있는 장르이다. 양가의 결혼을 중심으로 그려지던 예전 드라마(<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와 달리 요즘 홈드라마는 이혼을 중심(<애정의 조건>)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홈드라마가 서서히 기울고 있다. 돌아온 따발총(김수현 작가)와 대발이(최민수)의 컴백에 시청자들이 보낸 반응은 식상하고 느끼하다는 것이었다.
트렌디드라마의 흥행 코드는 ‘캔디렐라’
트렌디드라마는 홈드라마다 더욱 섬세하게 형식미를 발전시켰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0여년 전, 트렌디드라마의 전형은 매사에 적극적인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이 착하고 예쁜 여자 주인공과 사랑을 이루는 것이었다. 남자주인공의 성공과 사랑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그려졌고 삼각관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남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절은 변했다. 이제는 예쁘면 악역이다. 김태희(<천국의 계단>) 정혜영(<불새>) 오주은(<파리의 연인>) 한은정(<풀 하우스>) 등 숱한 바비인형들이 뛰어난 외모 때문에 악역을 해야 했다. 예쁜 조연보다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여주인공이 드라마의 중심이고 그녀의 성공과 사랑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그려진다. 삼각관계의 중심에도 여주인공이 서있다.
여자의 외모처럼 선천적인 변수에 속하는 것이 바로 남자의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시절의 드라마에서 예쁜 여주인공이 드라마에 등장했듯이 요즘은 돈 많은 재벌2세가 빈번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천국의 계단><불새><파리의 연인> 등). 재벌2세가 등장하지 않으면 전문직이라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의사다(<나는 달린다><상두야 학교가자><결혼하고 싶은 여자>).
주목할만한 현상은 이들 재벌2세가 결코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속 재벌2세는 처음에 잠깐 안하무인의 막되먹은 인간으로 나오지만, 이내 착한 여주인공으로부터 교화를 받고 순수한 사랑을 이루고 적들로부터 경영권도 방어한다. 여성들의 판타지를 이루어주는 왕자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드마라속 재벌2세가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게 긍정적으로 그려진다고도 볼 수 있다.
부모의 불륜으로 인해 이복형제 이복자매간에 사랑을 놓고 다투는 운명비극, 이를 좀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불치병 혹은 기억상실증과 함께 트렌디드라마의 필수요소는 바로 ‘캔디렐라’다. 캔디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인 이 말은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표현한 말이다. 캔디처럼 서민적인 주인공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 요즘 드라마의 일반적인 구성 양식이다(<파리의 연인><풀 하우스><오 필승 봉순영>).
현실에 두 발을 딛고서 손으로는 별을 따는 ‘캔디렐라’ 드라마는 현실과 판타지의 환상결합이다. 캔디 캐릭터를 통해 현실감을 더해 감정이입을 쉽게 만들고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한 국문과 교수는 요즘 여성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을 ‘캔디렐라’ 주인공에 ‘빙의’한다고 표현했다. 드라마 여주인공에 자신을 ‘빙의’하고서 시청자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선택해서는 어떻게 사랑을 풀어갈지를 스스로 자문자답하면서 드라마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 사랑 게임을 풀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암시를 끝없이 넣어주는 것이다. <모래시계>부터 <겨울연가>를 거쳐 <파리의 연인>까지, ‘순수한 사랑’은 인기를 보중하는 핵심 코드였다. 386드라마의 전형으로 알려진 <모래시계>도 윤혜린을 짝사랑한 백재희가 죽을 때 시청률(60.3%)이 5-18광주민중항쟁을 다룰 때 시청률(30.5%)보다 두 배 나 높았다.
대하드라마의 형식미는 각 방송사마다 다르게 발전시켰다. SBS는 반골영웅(<홍길동><임꺽정><장길산)이나 여성을 중심에 둔 드라마(<여인천하>)를 발전시켰다. 이에 반해 KBS 절대권력을 두고 다투는 정통사극(<용의 눈물><태조 왕건><명성황후><무인시대>)을 발전시켰다. 미시사에 초점을 맞춘 MBC 역사에서 소외된 민초들의 삶을 그리는 드라마로 새로운 사극을 개척했다(<허준><상도><다모><대장금>).
대하드라마역시 홈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위기를 맡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영웅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영웅은 점점 퇴출되고 있다. 반골영웅(<장길산>)도 구국영웅(<불멸의 이순신>)도 경제영웅(<영웅시대>)도 모두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광렬과 차인표, 두 시청률 보증수표가 출연하고 이순재 최불암 정한용 등 전직국회의원 3명이나출연한 <영웅시대>의 참담한 실패는 남성 대하드라마의 종말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다.
공정 경쟁과 끝없는 혁신으로 한류열풍 이어야
다시 처음 화두로 돌아가 보자. TV드라마가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아시아 대중문화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그 징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시아 대중문화의 여당과 야당이 바뀌고 있다. 일방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던 한국이 이제 드라마 영화 가요 전 분야에서 역수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NHK가 <겨울연가> 방영을 통해 얻은 수익은 3백50억원에 이른다.
한류 파생상품으로 인한 수익도 만만치 않다. 일본에서 한류 뒤에 등장한 것은 바로 한국어열풍이었다. 국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구사나기 쓰요시 같은 연예인은 한국어교재를 발행해 40만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의 한국어 열풍은 한류 관광을 온 일본인을 만나도 체감할 수 있다. 이들이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뷰가 수월해졌다.
한국 드라마를 키운 것이 권력 이동과 형식미의 완성이었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드라마를 발전시켜야 할까? 누가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누가 드라마 제작의 키를 잡아야 하고 드라마를 통한 이익을 누가 얻어야 맞을까? 답은 없다. 그 답은 오직 시청자만이 알 것이다. 지금까지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부적격자를 낙오시켜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발전을 위해 제작진이 신경 써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드라마의 형식미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형식미가 정착하는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순풍 산부인과>가 시트콤의 전형을 마련했지만 이를 단순 모방한 다른 시트콤들이 부진했던 것은 형식미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멜로드라마 전성기를 마감하고 전문드라마와 시트콤, 리얼리티 드라마를 발전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던 미국처럼 우리도 미래의 드라마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한뼘 드라마(MBC)나 반전 드라마(SBS)를 통해 미래의 드라마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KBS는 <개그콘서트><폭소클럽> 등을 통해 키운 웃음의 노하우를 새로운 시트콤에 적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두 의미 있는 작업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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