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허공처럼 영원히 적멸함을 관하지만, 갖가지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觀諸佛國土永寂如空,而現種種清淨佛土,是菩薩行。
관행(觀行)이 성취되고 더 나아가 정(定)에 들어가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허공처럼 영원히 적멸함을 몸소 증득하여서, 이것을 궁극으로 삼는데, 사실은 역시 소승 경계입니다. 하나의 적멸이 있고 하나의 공이 있다면 이미 공이 아니게 되며 청정함이 아닙니다. 적멸과 공도 버리고 ‘갖가지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어야[而現種種清淨佛土]’ 비로소 보살행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도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비록 불도를 얻었고 법륜을 굴리고 열반의 경계에 들어갔지만, 보살도를 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雖得佛道轉於法輪入於涅槃,而不捨於菩薩之道,是菩薩行。
최후에는 불도의 궁극을 말했는데, 진정으로 대승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비록 불도를 증득했다 할지라도, 비록 자리(自利)가 성취되었다 할지라도 법륜을 굴려 타인을 이롭게도 할 수 있으며, 언제나 열반에 들어가서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대승불도는 다음 두 마디입니다. ‘대지혜를 갖추었기에 3계에 머물지 않고, 대자비하기 때문에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智不住三有, 悲不入涅槃].’로서 지혜와 자비를 함께 운용하는 법입니다. 지혜는 반야의 성취로서 법신을 증득하고 해탈한 것을 대표합니다. 법신ㆍ반야ㆍ해탈 이 세 가지가 모두 원만해진 겁니다. 그러므로 ‘3유(三有)’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보살은 생각 생각마다 자비 속에 있어서, 비록 법신을 증득하여 3계 밖으로 뛰어넘었지만, 자비심 때문에 영원히 필경의 열반에 들어가지 않고 세세생생 무량한 3천대천세계의 6도 속에서 중생을 제도합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더 이상 유마거사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설했을 때, 문수사리가 이끌고 왔던 대중들 중에서 8천 명의 천인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說是語時,文殊師利所將大眾,其中八千天子,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당시에 문수보살이 이끌고 왔던 대중에는 출가대중과 재가대중이 있었으며 천인 천룡팔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락의 불이법문을 설할 때에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한 가지 종류의 사람에 국한되었는데, 바로 8천 명의 천인들이었습니다. 오직 욕계천 이상의 천인들이라야 이러한 지혜가 있어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아들었기 때문에 대승심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거듭 말하겠는데, 유마경은 번역이 너무나 좋습니다. 문자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매번 읽을 때마다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한 글자 한 구절 속에는 포함된 의미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들 문자에 가려서 지나가 버립니다.
(이상이 유마경 강의 중의 문수사리문질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