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創作論
윤 행 원
문예지 편집주간으로부터 ‘나의 창작론(創作論)’을 써 달라는 글제를 받고 처음엔 엉거주춤했다. 수필 창작론이나 詩
창작론은 비평가나 文學家들에 의해 이미 많은 논거(論據)를 했을 테니, 나에겐 개인적인 글 쓰는 습벽(習癖)을 이야기해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필론(隨筆論)이나 시론(詩論)을 펼치기 보담 글 쓰는 동기라든가 습관이라든가 자잘한 에피소드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메모지와 펜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든가 글감이 생각나면 장소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메모를 하는
버릇 때문이다. 잠을 자는 머리맡에도 메모지와 펜을 비치(備置)하고 있다. 잠을 자다가도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 즉시 낙필(落筆)을 하고는 다시
잔다. 쓸거리가 제법 많다 싶으면 응접실로 나오지만, 간단한 메모라면 옆 사람에게 미안해서 어둠 속에서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 읽어보면
글씨가 비뚤비뚤 하지만 그래도 내용을 알 수가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간혹 섬광처럼 솟아나는 아이디어는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그때 기록을 해
두어야 활용을 할 수가 있다.
나는 길 걷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길가에 서서 메모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글을 쓰고 싶으면 펜을 들고 기록을 한다. 이러는 것을 즐긴다. 조그만 행복으로 치부한다. 간혹 전철
안에서는 한 편의 詩나 수필을 꼬박 완성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쓰고 싶은 제목만 정해 두고 며칠간 묵힐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글자 하나하나가 웅덩이에 물 고이듯이 저절로 고여서 넘쳐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물동이에 물을 받듯이 글을 받아쓴다. 물론
의도적으로 글제를 만들고 文章을 만들 때도 많지만, 이렇게 자연스레 머리에 고인 글이 저절로 숙성(熟成)되어서 탄생되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한 희열이 함께 분출된다. 초고(礎稿)를 써 놓고 그대로 이삼 일 방치(?) 하다가 다시 꺼내 놓고 수정보완을 하기도
한다.
간혹 어떤 작가의 푸념을 들어 보면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상당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번 최명희의 문학관을 방문했을
때다, 작가는 ‘혼불’을 쓰다가 막히면 한동안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끙끙 앓다가 원고를 메우기도 했다고 고백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전업
작가거나 상당한 원고 물량을 펼쳐 놓고 성격적인 강박관념이나 책임감에서 글을 쓰는 작가일 거라고 생각을 한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드라마라면
방영시간 때문에 기다릴 여유가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글을 완성시키려면 그런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업작가(專業作家)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간에 쫓기면서 글을 쓰는 성격이 못 된다. 심지어 내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의 글제를 부탁 받으면 학생이 作文을 하는 것
같아서 점잖게 거절을 한다. 그러면 상대에 따라 시간을 넉넉히 줄 테니 구속받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고 시간을 풀어 줄 때도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지나면 어느새 글이 쓰고 싶어지고 저절로 술술 풀리기도 한다. 아마 써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심층에 가라앉은
잠재력(潛在力)을 충동질하는 지도 모른다.
詩를 쓸 때에는 주로 순간적인 영감(靈感)이라든가 어떤 감동(感動)을 받고 짧은 시간에
쓸 때가 있다. 대개 10분이나 20분쯤 걸린다. 경우에 따라선 떠오른 생각따라 계속 펜을 움직이면 한 편의 詩가 탄생되기도 한다. 한 말로
즉흥시(卽興詩)가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번에 文友들과 광주와 해남지역 여러 곳에 문학기행을 간 적이 있다. 이틀 동안에 걸친 즐겁고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올 땐 광주역사(光州驛舍) 부근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회식(會食)을 하면서 같이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초콜릿을 한 박스 사서
기차 안에서 나누어 먹었다. 화기애애한 우정의 즐거움을 한창 누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나는 옆
文友한테서 펜과 종이를 건네 받아 즉석에서 쓰고 즉석에서 낭독을 했다. 기차 안 사람들의 환호와 손뼉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행의 즐거움과 詩의
향연(饗宴)이 어우러지는 어슬한 밤이었다. 차창 밖으론 파릇한 봄날의 낭만(浪漫)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왕 이야기 한 김에 그
詩를 여기에 잠깐 올려보자.
즐거운 사람들과
달콤한 초콜릿이
함께 춤을 추네
아름다운 友情이
그리움이 되는 어느 봄날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
우리들 삶을
더욱 살찌게 하네
같이 있기만 해도
고마운
친구들
존재의 희열(喜悅)이
무지개 되어 나를 반기네
그리운 사람들아
웃고 있어도 더욱 웃고 싶구나
살아 있음의 은총(恩寵)이
따뜻한 가슴속에 수(繡)를 놓는다
순박한 교유(交遊)의 즐거움이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들을 다듬어 주네
나는 지금도
친구가 보고 싶다
옆에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들
철없는 文友들이여!
나에겐 글 쓰는 일은 즐거움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어디에 가더라도, 어떤 경우를 맞이하더라도
내재(內在)된 문학적인 감성은 든든한 친구가 옆에 있는 느낌을 준다. 아직도 호기심은 왕성하고 인생을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산다. 늙을 틈이
없다. 언제나 청춘을 느끼면서 산다. 글 쓰는 작업은 행복이고 희열이다.
나는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에 일어나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이때가 가장 영감(靈感)이 왕성할 때라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자는 동안 잠재의식에 고인 글들이 부드럽게 쏟아져 나올 때도 있다. 나는
잠재력(潛在力)을 믿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심리에 큰 보탬이 된다. 평소에 스치는 모든 경험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체감(體感)으로 고이 저장해 둔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물을 다듬어진 감성 속에 꽁꽁 저장해 둔다. 체험(體驗)이 어느새 녹아서 무색의
덩어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 잠재력으로 탈바꿈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치고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신문 읽는 걸 즐긴다. 바쁜 일을 하면서도 틈새 시간이 나면 신문을 뒤적인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도 자투리 시간이 아까워서
읽을거리를 지참할 때가 많다. 어느 날 우연히 따져보니 신문은 백만 쪽을 훨씬 넘게 뒤적거렸다는 계산을 하고 나 자신이 놀라기도 했다. 사실
신문은 공부가 많이 된다. 어떤 칼럼은 책 한 권 읽는 것 보담 유익할 때가 있다. 요즘은 문우(文友)들로부터 보내오는 책도, 정기 간행물도
많이 온다. 모두를 읽을 수는 없지만 대충 간추려서 읽을 만한 글은 정독(精讀)을 한다. 책은 글쓴이의 사상(思想)과 철학을 피력하고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여러 사람의 생각을 취사선택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의 생각에 윤기(潤氣)를 더 해 준다. 그러니 얼마나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신문이나 책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다양한 알 거리를 얻고 많은 걸 배운다. 그래서
글을 많이 읽을수록 글쓰기도 수월해 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작업이다
첫댓글 나도 먼 엣날에 글 쓰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새벽일찍 일어나 글쓰던 그때가 그립다.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게으른 탓인가? 의지가 약한 탓인가?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녀가 주시고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