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도를 서핑하기
파도의 물 마루 타기
파도가 심한 해변가에서 누군가는 파도에 쓸려 나와 바다를 원망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파도를 즐기며 활짝 웃죠. 상황은 똑같은데 왜 바다는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요? 바다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사람의 문제인가요?
삶이 우리에게 매일 매일 보내는 파도들이 존재합니다. 여기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죠, 누군가는 삶을 원망하는 반면 누군가는 즐겁죠. 심지어 함께 겪는 사건 속에서도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울고, 웃고 하는 것이 전적으로 해석의 문제라는 진실을 말해줍니다.
원인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한 부부가 이혼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작은 단순한 말실수였습니다. 그저 함께 하는 삶이 무료했기에 “이렇게 살꺼면 그냥 이혼할까?”라는 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시한 폭탄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혼? 그래 이혼하자!” 라는 상대편의 감정 폭탄이 터져 버린 것이죠.
부부는 이혼을 준비하며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사이로 변해버렸습니다. 애타게 사랑하며 달달했던 그 모든 일들이 마치 없었던 일인마냥 그렇게 서먹해져 버린 것이죠. 서로가 서로를 이혼의 원인이라고 원망하며 지내던 중 남편이 우연히 귤 한 봉지를 사왔습니다.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귤 좀 사달라는 부탁을 거절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온 것이었죠.
아무렇게나 식탁에 검은 봉지를 던져 놓고, 샤워를 마친 후 나온 그는 귤을 까 먹고 있는 아내와 마주쳤습니다. 아내는 민망한 듯 “귤 맛있네?”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그 순간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본래 귤을 엄청 좋아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자주 사주던 귤을 결혼한 후 단 한번도 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편은 방에 들어가 한참을 혼자서 울었습니다. 그 좋아하는 귤을 단 한번도 사주지 않았다는 사실, 귤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는 진실이 너무나도 미안했던 것이죠. 그는 깨달았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내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이 세상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한 그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결코 없습니다. 번지수가 틀렸으니까요, 고통은 오직 해석의 문제입니다. 꽃이 피고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꽃을 보고 고통을 느낄지, 행복을 느낄지는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스스로의 잘못된 해석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뿌리를 튼튼하게 하다.
부처님 당시 두 형제가 출가를 했습니다. 사실 형을 따라 동생은 그냥 출가한 것이죠. 그렇기에 동생은 그냥저냥 생활했고, 형은 목숨 걸고 수행을 했습니다. 그 결과 형은 자아라는 잘못된 개념을 꿰뚫어버린 아라한이 된 반면 동생은 여전히 탐욕과 분노에 가득찬 상태였죠.
어느 날 동생과 형의 아내들이 사찰에 찾아 왔습니다. 먼저 동생의 아내들이 동생스님을 유혹했고, 탐욕과 분노에 사라잡혀 있는 그는 그 유혹에 넘어가 환속해버렸습니다. 다음날 형의 아내들이 그들의 남편을 유혹하러 다가왔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도 그 아내들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시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질문했습니다.
“부처님, 저 여인들은 동생에게 했듯 저 스님을 환속시키기 위해 온 것입니다. 모르시지 않을텐데 왜 그들을 사찰에 들어오게 허락하셨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반문하십니다.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중생과 온전한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 같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믿음대로 아라한이 된 형은 유혹에 넘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아내들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그들의 스승이 되어 행복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똑같은 욕망의 폭풍 속에서 형과 동생은 정말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죠.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이는 결국 악마에게 정복당한다. 거센 바람이 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아름다운 것을 헛것으로 여겨 꺼리며,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고, 음식을 절제하고, 믿음이 깊고 노력하는 이를 악마는 결코 정복할 수 없다. 바람이 바위산을 넘어뜨리지 못하듯이.”
삶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때 내공의 차이에 따라 누군가는 갈대처럼 쉽게 흔들립니다. 반면 누군가는 단단한 바위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겠죠. 이것은 상황의 좋고 나쁨이 아닌 온전히 내공의 차이입니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상황을 바꾸고,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다의 파도를 멈추려고 하는 어리석음의 발현입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결코 파도치는 해변을 즐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그 파도의 물마루를 정복할 수 있는 내력을 키우면 어떤 바다에서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파도가 잔잔하면 잔잔한대로 평화를, 거세면 거센대로 서핑을! 언제나 상황을 즐길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붓다는 이 내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 뿌리를 튼튼하게 하길 권했습니다.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깨어있음의 뿌리, 집중의 뿌리, 지혜의 뿌리. 다섯 가지 중 한 가지 만이라도 튼튼하면 튼튼한 그만큼 삶이 안정적으로 변화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뿌리도 튼튼하지 못하다면 허공에 떠 있는 배처럼 살랑바람에도 흔들리는 불안정을 맞이하겠죠.
언제 어디서 바람이 불지 두려움에 벌벌 떠는 고통을 견딜 힘으로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아등바등 파도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애쓰는 힘이면 내공을 바위산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뿐입니다. 바다에게 제발 파도를 그만 보내라고 부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파도를 타고 놀 수 있는 힘을 키우시겠습니까? 이 선택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첫댓글 스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동입니다~♡♡♡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 깨어있음의 뿌리, 집중의 뿌리, 지혜의 뿌리 5근을 배우며 잘 따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파도가 잔잔하면 잔잔한대로 평화를
거세면 거센대로 서핑을!ㅎ
언제나 상황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평온한 날 보내세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선택과 집중, 현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스님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