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등반/매드락클라이밍팀 중국 쓰꾸냥 산군 빙벽 '드래곤 브래스' 등반
빙벽 천국의 고갱이, 용의 숨결을 오르다 글 이서구·사진 주영·정호진 (주)넬슨스포츠코리아
|
◇ 매드락클라이밍팀은 넬슨스포츠의 매드락 신제품 빙벽화 ‘마운틴’의 필드테스트를 위해 쓰꾸냥 산군의 빙벽을 등반했다. |
매드락클라이밍팀은 새로 개발한 빙벽화에 ‘마운틴’이라 이름을 붙이고 혹독한 필드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의 쓰꾸냥 산군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계곡마다 줄줄이 걸려있는 빙벽에 대한 기대로 나의 ‘몬스터(그리벨사의 아이스바일 이름)’는 바이스 위에서 열심히 길들여지고 있다.
정호진 사장과 나는 칭두 공항에서 앞서 도착한 마운틴 빙벽화 개발자인 주영 사장과 중국 매드락 대표가 준비해놓은 도요다 미니 밴에 몸을 실었다.
인구 천삼백만의 칭두는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시내를 빠져나와 매콤하고 기름진 사천요리를 맛본 뒤 스노체인을 준비하고 덜컹거리는 길을 달려 어두워질 때쯤 와룡에 도착해 하루를 묵었다.
판다 보호구역인 와룡은 <삼국지> 제갈공명의 고향으로, 그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곳이다.
다음날 4시간가량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서 전날 와룡에서 하루를 쉰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곳곳에 빙판이 있어 여러 번 차에서 내려 길가에 마련된 지푸라기들을 바퀴 밑에 깔아야했다.
고소증세가 오는 4487m의 언덕을 넘는 것은 차나 사람이나 똑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후 3시가 되서 쌍교구 밖에 있는 조그만 마을 리룽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
처음 사용할 새 빙벽화와 안전벨트 등의 장비를 만지작거리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하고 바라니 마치 어린시절 소풍 전날 같은 기분이다.
우리가 묵은 곳은 4성급 호텔이라지만 문틈사이로 외풍이 심했다.
이튿날 쌍교구 공원 입구에서 버스표와 입장료를 지불하고 본격적인 정찰에 나섰다.
버스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 때마다 한 아름의 선물꾸러미처럼 걸려있는 빙벽들. 모두다 눈이 휘둥그래져 감탄사를 연발한다.
차는 마냥 신이 난 아이들을 태우고 한참을 달린다.
분명 이곳은 빙벽 천국이다.
수직벽과 꿀루와르가 적당히 혼합되어 여러 가지 등반을 즐길 수 있으며, 북쪽 면의 산에서는 설산등반이, 남쪽 면의 바위에서는 빅월 등반이 가능하다.
거기다 트레킹 코스 또한 히말라야 부럽지 않은 곳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많은 빙벽 가운데 어느 곳을 먼저 오를 지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첫날이고 약간의 고소증세도(이곳 해발 고도가 3000m 이상이다) 있고 해서 어프로치가 30여 분 걸리는 비교적 완만한 빙벽을 골라 몸을 풀기로 했다.
그곳에는 중국 클라이머들이 가이드로부터 빙벽 등반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신형장비들은 곧바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첫 피치는 주영 사장의 선등이다.
주영과 정호진, 이 두 사람의 오랜 파트너는 아직도 서로 선등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등반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젊은, 대단한 선배들을 모면서 20년 후에 내 모습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
◇ 쌍교구 내 무명폭을 등반하고 있다. 이곳은 빙벽 등반의 천국이라 할 만큼 계곡마다 다양한 빙장이 즐비하다. |
숙소를 공원 안쪽 로지에 잡았다면 입장할 때마다 값비싼 입장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공원 안의 로지는 생활이 넉넉하진 않아도 여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올리며,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로지를 지나면서 상지대학교 원정대원 2명을 만났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산 사람들이 무척 반가웠다.
그들은 고소 증세 때문에 잠시 내려와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아비설산을 등반하고 있던 팀으로, 2캠프까지 구축해 놓고 대원들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라면과 평양 옥류관에서 사온 칼칼한 김치로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얼음폭탄 세례 퍼부으며 러셀 하듯 올라
다음날 30m쯤 돼 보이는 얼음 기둥으로 벽을 등반하기로 하고 1시간가량 어프로치를 했다.
오늘은 등반보다는 포스터에 필요한 사진 촬영이 주된 목적이었다.
여러 가지 난해한 동작들을 취해가며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는 공원 탐방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안내를 맡은 나이 어린 장족 여성은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친절한 설명에, 노래를 불러달라는 농담에 안무까지 곁들여 중국노래를 해주었다.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란 느낌이다.
오후에는 이곳에서 제일 이름난 드래곤 브래스(dragon breath)를 향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어프로치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마치 용이 살고 있는 요새로 한판 결투를 하러가는 기사처럼 아이스 스크루와 바일로 무장한 채 결연한 마음으로 나아갔다.
1시간 만에 도착한 막다른 협곡에는 정면에 두 개의 얼음 줄기와 오른 쪽으로 얼음기둥이 보였다.
우리가 이곳을 등반한다는 소리를 듣고 중국 가이드와 그의 친구들이 따라왔다.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그리 쉽지 않은 곳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등반길이는 70여m이고 고드름과 버섯형 오버행이 혼합 되어있는 전형적인 자연 빙폭이다.
워낙 난이도 높은 우리나라 인공빙벽에 익숙해진 터라 자신감은 있었지만, 우리가 미국 팀이 초등한 이후 2년만의 재등이란 말에 혹시 복병이라도 있지 않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정호진 사장의 확보를 받으며 등반을 시작했다.
초반의 버섯형 얼음을 넘어 순조로운 진행을 한다.
등반 시작 전 루트 파인딩을 한대로 정확한 위치에 스크루를 하나하나 설치해갔다.
잠시 후 삼분의 일 지점에서 용의 등 비늘 같은 모양의 얼음 지대를 만났다.
드래곤 브래스는 토왕성폭 상단에서 흔히 보이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얼음인데 그 깊이와 크기부터 달랐다.
바일을 걸고 올라가기엔 얇고 넓어서 머리 위의 비늘들을 모두 제거해야만 등반이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양의 낙빙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확보물 설치가 어려운 구간을 전진하는 동안 밑에 있는 정호진 사장이 연신 “낙빙!”을 외친다.
몸에 연결된 자일이 계속 출렁인다.
혹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에 로프라도 찍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청난 얼음 폭탄에 확보자 또한 온전하지 않았다.
빙벽등반에서도 러셀을 하듯 가슴팍까지 짓누르고 있는 얼음들을 걷어내는데 순간 내가 있는 위치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빙벽 시즌이 시작됐을 때 원주 판대리에서 15m를 추락한 탓인지, 올겨울엔 항상 추락에 대한 공포가 질기게 따라다닌다.
얼음 속에 아이스바일을 깊숙이 박고 멈춰 선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나의 뇌가 오름짓의 본능에 충실한 육체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결정의 순간이다.
등반에 대한 성취욕과 함께 밑에서 바라보고 있는 중국 가이드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I’m Korean!’이었다.
‘그래 자신감을 불어넣자!’ 판대리에서 추락할 때도 잘 잡아주었던 선배가 지금도 든든하게 확보를 보고 있다.
10여 년 산에 다니는 동안 위험 앞에서 내 판단은 비교적 정확했다고 믿는다.
다시 힘이 솟는다.
등반의 중반을 넘어서니 물이 떨어져 장갑이 젖으면서 팔을 타고 흐른다.
밑에서 볼 땐 용의 비늘도, 낙수도 없었는데 낭패다.
물을 피하다보니 자꾸 어려운 고드름 기둥으로 오르게 된다.
물에 젖은 로프는 자꾸 안전벨트를 벗겨내려 한다.
입이 바짝 마른다.
고드름을 따먹으며 간신히 어려운 구간들을 통과했다.
드디어 미국 등반대가 남기고간 흔적으로 보이는 낡은 하강용 슬링이 보인다.
곧바로 후등자 확보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데 밑에서 철수를 하자고 한다.
아직 해가 질 때까지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를 데리러 온 버스가 저 멀리 길가에서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강준비를 한다.
탈출을 대비해 러시아제 구형 스크루로 얼음에 구멍을 뚫어 아발라코프 확보지점을 만들고 첫 번째 하강을 한다.
두 번째는 구형 스크루와 고드름 기둥을 이용해서 한번에 바닥까지 하강을 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밀려오는 뿌듯함 그리고 나를 묶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돌아오는 길에 따구냥 산에 트레킹을 다녀온 김춘만씨와 만나 매드락클라이밍 팀이 다시 모였다.
이틀 동안 고소에서 엄청난 체력을 쏟고 온 사람 답지 않게 지친 모습에도 표정이 너무 밝았다.
우리는 중국인 친구가 운영하는 맥주 바로 향했다.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박물관의 창고 같은 곳인데 구석구석 거미줄이 쳐져 있고 드럼과 기타도 있는 아담한 술집이다.
커다란 개 2마리가 먼저 우리를 반기는데, 전에 한국사람이 다녀갔는지 한글로 적힌 메모가 보인다.
“개를 사랑하세요? 먹이는 주지마시고 사진은 플래시를 터트리지 마세요.” 방명록에 ‘다음에 다시오리’란 다짐을 적어 넣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고소 때문에 정신은 몽롱한 채로 하늘에 촘촘히 박힌 은하수를 올려다보니 마지막 밤이 아쉽기만 하다.
|
◇ 쌍교규 공원 내 무명폭을 등반 중인 이서구씨. |
INFORMATION
중국 쓰꾸냥 산군 길잡이
인천공항에서 화·목·일요일 9시 45분 출발해 칭두에 12시 45분에 도착하는 아시아나 항공편이 있다(돌아오는 편은 같은 날 칭도 13시 50분 출발 인천 18시 10분 도착). 칭두 시내에 있는 슈퍼마켓과 장비점에서 식료품과 전문장비, 의류 등을 구입할 수 있다.
100~200위안(1위안은 130원) 정도면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호텔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쓰꾸냥 산군의 산행기점인 리룽(235Km)까지는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은 길을 5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식수나 간식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때 4487m의 파낭 산 고개를 넘기 때문에 고소 증세가 올 수 있다.
식당의 음식은 향이 강한 기름진 음식이 많아 입맛에 따라 김치나 고추장, 젓갈 등을 준비하면 좋다.
대행사를 이용하면 가이드가 동행하는데 의사소통이나 여러 행정적인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드래곤 브래스는 쓰꾸냥 산군의 쌍교구 공원지구에 있는 빙벽으로 공원 매표소에서 순환버스가 운행한다.
버스비를 포함한 공원 입장료는 50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