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임금이 하나이니 씨가 하나인 대추를,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정승이니 세알 밤을, 육조판서이니 씨가 여섯 개인 감을, 팔도관차라이니 씨가 여덟 개인 배를 제사상에 조율시이(棗栗시梨) 순서대로 차린다는 속설이 있다.
삼대에 걸쳐 공을 들여야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조선시대 이야기로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대추·밤·감·배의 씨앗에 관질의 의미를 부여하여 제사를 지낸 조상님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이 외에도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홍동백서(紅東白西) 등의 여러 가지 제례가 있으나, 가례를 비롯한 예서 에는 진설의 구체적인 방식이 명시되어 있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특히 과일의 경우는 '果' 라고만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진설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알려져 있는 조율시이, 홍동배서 등은 후대에 생겨난 것들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조율시이나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 과일 놓는 순서는 지방이나 가문(가정)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대추, 밤 다음에 감 놜, 배 놔라(남의 일(제사)에 간섭하지 말라)는 속담도 조율시이와 조율이시에서 유래된 듯하다.
옛날에 없던 사과, 귤 등 요즘 과일은 조율시이나 홍동백서에도 맞지 않으므로 배 다음에 사과를 슬그머니 갖다 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서에서와 같이 사계절 제철의 과일을 차린다면 과일의 종류와 순서는 없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또 다른 철학적 속설을 보면 조상님들의 지혜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대추는 원래 암수 한 몸 나무로 열매가 아주 많이 열리므로 후손이 번성하고 씨가 통째로 하나로 절개와 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고 한다.
밤은 나무가 죽은 뒤에도 뿌리를 캐보면 처음 싹을 틔웠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다.
배의 황색은 우주의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긍지를 나타내며, 하얀 속살은 백의민족을 의미한다.
감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는 속에 검은 심이 없고, 열매가 열린 나무는 검은 심이 있다고 하여,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데 그만큼 속이 상하였다는 생각으로 제사상에 차린다는 것이다.
추가로 영양학적인 속설도 있다.
대추는 조화방지에 효력이 있는 비타민C가 귤의 7배나 많으며 위장을 튼튼하게 하여 소화가 잘되고 약방의 감초같이 한약에도 널리 쓰인다.
밤은 노화와 성인병을 예방하고 세톨만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다며 동의보감에도 가장 유익한 과일로 칭송한다.
배는 그리스의 역사가 호메로스가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하였고, 중국에서도 과종(果宗)이라고 부르며 주독을 풀어주고 육류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으뜸과일이므로 제사상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 뒤로 피로회복과 신진대사에 좋다는 사과도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된것 같다.
이렇게 조상을 섬기는 효심은 지극 정성이지만 제사상차림에 속설이 난무 하다보니 '가가예문' 이라고, 집안마다 감 놔라, 배 놔라, 조설이다, 우설이다, 구구각색이라고 한다.
원래 예서에 나오는 진설은 특별한 방식이 없고 서너가지라도 간결하게 정성껏 차리면 되지만, 가문별로 양반이나 권력을 과기 하기 위하여 형식을 바꾸고, 가짓 수를 늘리고 층계를 쌓아올리는 허례허식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조선후기의 왜곡된 제례문화를 원래의 유교의식대로 간소화하고, 가족 모두가 부담 없이 정성껏 차려서 조상을 숭배하고 명절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순수한 제례의 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유교식 제례 외에도 2천년 동안 다양한 종교의식으로 변화해온 새로운 제례문화도 온고지신(溫故知新) 으로 널리 포용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임청각의 미투리 편지에도 읽히듯이 조선증기까지도 부부, 남매가 재산을 나누고 제사를 같이 모시던, 남녀가 매우 평등한 사회였음을 상기하고, 집안대소사에 온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하는 가족공동체 생활을 실천한다면 명절증후군 같은 부작용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유교의 본향부터 솔선수범 하여 예절의 본질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미래 천년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휘태 / 안동시 풍천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