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혹은 노래는 절망을 견디는 희망 혹은 기도로서 옛날부터 계속해서 지어지고, 불려져 온 것이다. 나의 희망과 기도는 변함 없이 대지 그 자체에 있고, 대지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 야마오 산세이
야자잎 모자를 쓰고 22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사람들은 나아간다
세계로 세계로
우주로 우주로 눈먼 쥐처럼 나아간다
나는 반대로 물러난다
나에게로 나에게로
흙으로 돌로 숲으로 물러난다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오래도록
우리 모두의 고향인 바다를 본다
*ssambook.net에서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러나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 자연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을 열다
밭에서
밭에서
토마토가 온다
잘 익은
토마토 냄새가 짙게 나는 토마토가 온다
밭에서
가지가 온다
검자줏빛으로 익은
먹기에 아까울 만큼 예쁜 가지가 온다
밭에서
강낭콩이 온다
엷은 초록빛
현자의 마음과 같은 강낭콩이 온다
밭에서 생명이 온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밝은 빛으로부터
생명과 생명의 말 없는 기적이 온다
야마오 산세이는 마흔을 앞둔 1977년, 가족과 함께 낮밤 없이 반짝이는 도쿄의 빌딩 숲을 떠나 야쿠섬 시라카와강 가의 칠흑처럼 묵묵한 숲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풍요'를 단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사회에 맞서 외롭고도 풍요로운 자기만의 '존재의 길'을 평생에 걸쳐 걸었다.
숲은 그에게 "진보라는 숙명과 동시에 순환 내지 회귀라고 하는 또 하나의 숙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쉼 없이 가르쳐 주는 곳이기도 했다. 야마오 산세이는 낮에는 농사일에 힘을 쏟았고, 가족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늦은 밤에야 서재에 들어 글을 써 내려 갔다.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 자연으로 더욱 깃드는 삶 속에서 발견한 깊은 진리가 간결한 말들 속에 차곡차곡 담겼다.
그는 "모든 조용하고 충실한 것들의 신도"로서 "산을 바라보며" "구름을 바라보며" "물을 바라보며" "도토리가 열리는 모밀잣밤나무를 바라보며" "개여뀌의 붉은 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었다. "산에 오르며 산에 잠"기듯, 섬에 깃들어 섬의 삶 속으로 하루하루 잠겨 갔다. 그의 일생은,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거기" 세상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조용한 기쁨"을 발견하며, "생명과 생명의 말없는 기적"을 끝도 없이 마주하는 삶이었다. 꽉 차 있으나 비어 있고, 비어 있으나 누추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걸작은 결국 삶이었다.
'지고 물러난 것들로부터 오는 불가사의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집
야자잎 모자를 쓰고 8 - 루이 씨에게
그저 별다른 장식도 없는
야자잎 모자
아마미오섬의 도산한 한 도매상이 방출한
사람이 손수
야자잎으로 짠 야자잎 모자
그래도 그것을 쓰면
그 순간부터
지고 물러난 것들로부터 오는 불가사의한 힘이 시작된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반드시 지고 떠난 자들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쁨이 시작된다
살아 있다고 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시작된다-
그저 별다른 장식도 없는
야자잎 모자
야자잎 모자를 쓰고
천천히 호미로 감자를 캔다
1960년대~1970년대, 야쿠섬의 원생림은 일본 정부가 주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본래 모습을 잃고 빠르게 사라져 갔다. 결국 몇몇 주민이 ‘야쿠섬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숲이 더 망가지기 전에 섬을 구하자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시를 써 온 야마오 산세이를 섬으로 불러들였다. 섬의 실상을 보고, 섬 사람들과 큰 섬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는 시를 써 달라고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관찰자로 구경꾼으로 머물고자 하지 않았다.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1977년 기어이 섬의 버려진 한 산속 마을로 삶터를 옮긴다. 지극히 산세이다운 결정이었다.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도성장기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혁명과 구도의 길을 걷던 그는, 2001년 위암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홉 자녀를 야쿠섬에서 길러 내며 섬사람으로 살았다. 스스로 "지고 물러난" 자를 자처하며 더 깊이 자연으로, 평평범범한 이웃들 속으로, 깃들고자 했던 평생이었다.
'물러섬'은 새로운 삶의 문을 활짝 열었다. "나에게로 나에게로 흙으로 돌로 숲으로" 물러나 야쿠섬의 조그만 산마을에 깃든 산세이는 도시의 삶이, 근대 문명의 휘황한 불빛이 가져다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 충만함의 흔적들을 여실하게 기록했다.
푸르던 그의 삶을 버티던 가파른 열정과 사상은 한없이 잠잠하고 고요한 삶 속에서 단정하고, 간결하고, 온화한 시어로 거듭 피어났다. "지고 물러난 것들"의 자리에서 '어제'의 가치들 사이를 속속들이 누비는 야마오 산세이의 시는 시작과 끝이, 안과 밖이, 너와 내가, 도시와 섬이, 중심과 변방이, 어제와 내일이, 끝내는 돌고 돌아 맞닿아 있음을 깊이 있게 말하고 있다.
일상이라는 끝없는 "형벌과 위로의 산기슭"에 서서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간 이의 깊은 성찰과 기도가 담긴 시집
고요함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에 둘러싸인 작은 밭에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게 괭이질을 하다가
때로 그 허리를
짙푸른 산을 향해 쭉 편다
산 위에는
작은 구름이 몇 덩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은 고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향인 도쿄를 버리고 섬에 와 농부로 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구름은 고요하다
땅은 고요하다
벌이가 되지 않는 것은 괴롭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누구보다 가파른 사상을 품고 평생을 굽히지 않고 일관했으나, 그의 시는 온화했다. 재가자로서 나날이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갔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간명하고 쉬운 말들로 자신이 건져 올린 깨달음을 담고자 했다. 자연의 일부로서 모든 생명을 가름 없이 섬겼듯이, 야마오 산세이는 자신이 써 내려 간 시 역시 모든 이에게 되돌리고자 했다. 시가 특정한 누군가의 몫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그의 믿음은 한없이 쉽고 담백한 시들로 피어났다. '순순한 역주逆走'와도 같은 역설로 가득 찬 그이의 삶처럼 그의 시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 규슈 남쪽 조그만 섬 야쿠시마에서, 야마오 산세이는 갑자기 돌아간 친구 부부의 아이 요가와 라가를 포함해 자녀 아홉을 키우고, 닭·산양·돼지와 같은 집짐승을 돌보고, 낡은 집채와 뜰을 가꾸고, 개간을 하거나 빌린 산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섬의 이웃들과 함께 웃고 웃었다. 섬의 일상 또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는 인간 본연의 슬픔과 외로움의 무게를 기꺼이 지고, "바다의 영원함을 바라보며" "산의 고요에 젖으며" 다만 하루하루를 살았다. 일상이라는 끝없는 "형벌과 위로의 산기슭"에 서서 평평범범하고 온화한 시어로 그가 써 내려 간 시들은 우리의 가파른 생각을 조용히 감싸안고, 생채기 가득한 메마른 마음을 위로하듯 두드린다.
자연에 깃든 풍요로움과 성스러움 앞에 깊이 고개 숙인 자의,
숙연한 기도와 같은 말들의 향연
하루 살이
바다에 가서
바다의 영원함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는다
조개와 바다풀을 조금 따고
땔감으로 쓸 나무를 주워 모으며 하루를 산다
산에 가서
산의 고요에 젖으며
도시락을 먹는다
머위 새싹과 쑥을 조금 뜯고
땔감으로 쓸 죽은 나무를 주워 모으며 하루를 보낸다
일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루 하루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거품 경제 속에서 정신 없이 허우적거리는 사이, 일본 지도의 축소판과도 같은 조그만 섬 야쿠시마에서 세계를 바라보던 야마오 산세이는 천천히 애니미즘이라는 세계에 가 닿았다. 그는 자연에 깃든 풍요로움과 성스러움 앞에 더욱 깊이 고개 숙였고, 숙연한 기도와 같은 말들을 거기서 길어 올렸다.
섬에 살며 그는 "사람의 연약함과 대자연의 크기를 몸에 사무치게 느끼"며 "맡기는" 법을 배웠다. 자연 앞에 더욱 깊이 고개 숙일 때, 그는 모든 것, 모든 곳에 깃든 신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자연과 지구, 우주가 주가 되고 인간은 이를 섬기며 겸허히 종으로서 살아갈 때, "경계가 없는 깊은 평화이자, 인간적인 고민이고, 사는 방식이자, 죽는 방식"으로서 우리 앞에 비로소 '조화로운 삶'이 열린다는 것을 야마오 산세이는 몸소 보여주었다.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는 야마오 산세이가 평생에 걸친 '자연생활'을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의 진보"가 가능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일상에서 거두어 올린 94편의 "평화의 열매"를 잘 갈무리해 담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을, 새로 오는 절기를, 어려움이 없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풍요로운 나날의 일상을, 기쁨이자 또한 번뇌의 원천이기도 한 가족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소회를, 오래도록 자신의 형이상성의 나무였던 조몬 삼나무를 뵌 기쁨을, 깊은 진리가 담긴 법어를, 바쁠 것 없는 걸음으로 물끄러미 응시하고, 찬찬히 써 나갔다.
기도와 성찰이 깊이를 더할수록, 그의 시는 가뿐해져 갔다. 깊은 산 계곡물처럼 한없이 청아하고, 조그만 봉우리를 도도록 내민 봄꽃처럼 말긋말긋한 시들은 마주친 독자의 마음을 어느새 말끔히 비추이고 씻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