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가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인류 멸망을 다그치듯, 종말을 가리키는 시계가 무섭게 돌아가는 듯하다. 이런 절박한 순간, 한국의 종교들은 무엇하고 있을까.
종교는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는가
자타공인 생명의 종교는 불교 아니던가. 불교계에서 주최한 검찰독재 반대 시국법회는 그동안 두 차례 열렸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해안스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일인 시위를 한 달 넘게 날마다 계속하고 있다. 일부 스님들과 불자들이 동조시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의 대부분 절간은 한마디로 적막강산이다. 조계종 총무원과 본사 단위의 조직적 저항은 찾아볼 수 없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더 먼저, 더 강하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해야 옳지 않은가. 지금처럼 비상한 시국에서는, 하안거 다 취소하고서라도 거리와 광장에 나와서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소리를 외쳐야 하지 않는가. 말로만 생명 존중, 글로만 생명 존중 누가 못할까.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개신교 성도들과 목사들이 적지 않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성명서도 여러 차례 발표하고 기도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주일예배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 문제를 언급하고 설교하고 반대하는 목사는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죽은 생명의 부활을 가르치는 개신교가 지금 이대로 처신해도 좋을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월요시국기도회를 지난 3월부터 전국 각지를 돌며 개최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제8차 우리 바다(OUR OCEAN) 회의’ 참가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모든 민족의 연결고리인 바다가 비극의 장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6월 25일 한국 주교회의는 생태환경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 명의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제주와 부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데 제주교구 어느 신부가 슬픈 소식을 공개했다. 6월 26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 제주 월요시국기도회가 성당에서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한다면, 미사를 봉헌하는 제단을 강제로 점거하겠다고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협박했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충돌을 우려해, 할 수 없이 성당 아닌 제주시청 앞 좁은 도로에서 시국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했단다.
26일 월요일 오후 6시쯤 나는 기도회 장소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20여 명의 나이 드신 천주교 남녀 신자들이 시국기도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소리쳐 악쓰기 시작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옥신각신 하다가 7시 30분에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며칠 후 나는 느닷없이 이런 소식을 들었다. “7월 3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부산 월요시국기도회가 교구 사정으로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양해를 바랍니다.” 누가 부산 월요시국기도회를 막았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폭군 연산군아, 네 죄가 크다
“너처럼 왕에 대해 험담을 하는 백성, 왕에게 잔소리 하는 백성, 왕을 가르치려 드는 백성, 그들을 가두고 격리하고 매질하면, 나머지 아흔아홉이 그 한 명이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내게 충성하게 되지. 해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선 혹독하게 버려지고 짓밟힐 그 한 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한 명이 당하는 그 고통이 십만 군사의 위용보다 더 두려운 것이거든. 그러니 무산아야, 너의 오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 그리 생각하거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에서 연산군이 한 여악(女樂)을 일벌백계로 다스리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홍길동의 아내인 ‘가령’이 연산군의 귀를 물며 꾸짖는다. “오냐, 짐승에게 찢겨죽은 홍길동은 내 서방이요, 니가 바로 내 서방을 찢어 죽인 짐승이다. 나를 능지하고 육시하여 죽여라. 허나 두고 봐. 나는 죽어도 내 망령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의 잠자리를 찾아갈 테니. 뭐? 아흔아홉에게 본을 보이려 하나를 폭력으로 다스리겠다고? 니가 아무리 본을 보인들 나도, 내 서방도, 아니 이 나라 조선의 백성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절박하다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에 백만 유로가 넘는 거액의 뇌물을 주고 일찌감치 최종보고서 결론을 받아 놓았다는 제보를 ‘시민언론 더탐사’와 ‘시민언론 민들레’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정부는 신뢰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국도 답변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과 일본은 방사성 폐기물 해양 투기를 금지한다는 1993년 11월 런던협약에 가입한 나라 아닌가.
‘시민언론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가 7월 4일 외신기자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적을 기다리듯, 제보자 ‘조르세티’ ‘시민언론 민들레’ ‘시민언론 더탐사’는 인류의 재앙을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 절박함의 아주 일부라도 지금 대한민국 종교인들은 느끼고 있을까. 무너져가는 이 나라를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는 스님, 목사, 신부가 지금 우리 곁에 몇이나 될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행동하지 않는 종교인 자리
우리 앞에는 두 길 밖에 없다. 귀신 하나를 내쫓았더니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일곱 귀신(마태 12,43-45)과 치열하게 싸울 것인가. 로마군대가 예수를 붙잡아갈 때 나 몰라라 도망치던 제자들처럼(마태 26,56) 친일매국 정권에 비굴하게 무릎 꿇을 것인가. 고통받는 시민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길을 걸을 것인가, 무너지는 나라 꼴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것인가. 특히 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종교인은 자신의 이익을 떠나, 세상 걱정을 내 걱정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소속 종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처신한다면, 종교인이 시정잡배와 다를 바 무엇인가. 그런 종교가 이익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혼돈의 시대에 중립을 유지한 사람들을 위해 비어 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그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내 몰라라 했던 종교인들을 위해 비어 있다.”
첫댓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문제를 언급하고 설교하고 반대하는 목사님들, 성직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정말 두려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