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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일거수일투족으로 이룬 시간의 탁발.
뼈만 남은 그 앙상한 고독을 탐하네.
시나위 그 털끝하나 안 들어가는 꽉 찬 소리의 급소를 찔러 들어가 요지부동으로 서 버리는 순간, 말없는 춤에서 대갈일성이 난다. 고작 5분 그러나 참으로 그럴 수 없는 춤이다. 우리가 그토록 이야기 해왔던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말끝마다 “춤은 조갑녀”라던 마원사람들의 말 또한 허언이 아니었다.
조갑녀(趙甲女 1923년 생) 활동할 때는 영숙(英淑)이란 예명을 썼다. 열세 살 무렵 남원의 승사교가 놓였을 때 강 이편에서 출발해서 저편까지 거닐며 승무를 추었고 다리 가운데서 법고를 쳤다. 혼 인 후 판에서 물러났고, 흥이 있으나 가족들 때문에 다시 들어서지 않은 명무였다. 2006년 <어머니의 춤>에 다시 나섰고, 2008 <천년만세> 2009년 <춤 조갑녀>에 출연했다.
와 보라! 흉곽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그 5분
무심히 꺼낸 빈손이 공기의 결 속으로 스며들었고 축축한 선율에 결로되어 손끝에 춤이 똑똑 떨어졌다. 그간 ‘얼룩’으로 알고 숨겨온 춤은 찬란한 ‘문양’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옮겨 담을 도리가 없는 춤. 발견되자마자 부스러져 망실되어가는 유적, 아니 벌써 풍화되어 날려버리고 한 줌 밖에 없다. 하여 매 순간이 소매를 부여잡고 보내는 몌별(袂別)처럼 시리다.
장금도(張今桃 1928년생) 채만식의 탁류가 흐르던 군산이란 대처에서 인력거 두 대가 와야 춤추러 나갔던 최고의 예기. 자라는 아들의 장래 때문에 춤을 접었지만 김제만경너머 파다한 춤 소문 때문에 곡절 끝에 다시 나서야 했다. 1998년 <명무초청공연>, 2004년 <여무, 허공에 그린세월>, 2007년 먼저간 아들을 위해 살풀이춤을 추었던 <해어화 장금도>에 출연했다.
임이조의 한량무
발은 휘모리 숨은 중모리,
엇부침의 치밀한 수공이 심금에 번져가니,
류(流) 하다.
진유림의 ‘승무’
법열세계에서 신열에 들뜬 북소리,
그만 앵도가 똑똑 떨어지니,
정(靜)하다.
하용부의 ‘북춤’
춤은 ‘침’에서 나는 법,
북의 진동 속으로 들이댓바람으로 뛰어드니,
장(壯)하다.
김경란 ‘교방굿거리춤’
진주라 천리에 발품,
이내 ‘휘영청’ 한마디를 들여놓았네,
동(動)하다.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혼신으로 침묵을 이끌고 간 자리,
깊숙한 발자국에 흥이 흥건하니,
중(重) 하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춤은 ‘배움’이 아니라 ‘겪음’,
심장으로 구동한 백색 알피엠을 쏟아내니,
격(激) 하다.
풍운을 여는 춤의 노름마치와 ‘드림 시나위’
노명무와 함께 반열의 판에 서는 장쾌한 춤꾼 <승무>의 진유림, <북춤>의 하용부, <교방굿거리춤>의 김경란, <한량무>의 임이조, <도살풀이춤>의 이정희, <채상소고춤>의 김운태, 우리시대 춤의 노름마치들이다.
그리고 악과 춤은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 장고의 김청만 아쟁의 박대성, 대금의 원장현, 피리의 한세현 해금의 김성아가 만나니 드림시나위다. 춤을 부르는 꽉 찬 소리에 춤이 둥실 뜰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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