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구천동 마이산의 돌탑
돌탑
눈도 코도 없는 것이 돌 틈에서 부지런히 숨을 쉬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많은 소원이다. 그 때문일까?
돌의 모서리가 모두 닳았다. 반질반질한 조약돌이다.
돌들은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살얼음판을 걷듯이 숨을 죽이며 나지막한 탑을 이루었다. 탑들은 흡사 운동회 때 조를
짜서 기마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맨 아래에는 좀 납작하고 실팍한 돌이 큰오빠처럼 딱 버티고 있다. 층을 이루며 십여
단을 쌓았고, 맨 위에는 가장 작은 콩돌이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서 소개한 철원의 고석정 꽃밭을 가는 길목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원 한쪽에
조약돌과 콩돌이 소꿉놀이 하듯이 섞여있다. 그들 사이에 자그마한 바위들이 무게를 잡고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만치서 손짓하는 화사한 꽃밭으로 향하느라 낮은 돌탑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만만했을까?
돌탑들이 내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지막한 돌탑이 내게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허리를 굽혀 들여다
보다가 그 옆에 아예 주저앉았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손 안에 드는 조약돌 하나마다 자신의 걸작임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을 것 같다. 하물며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오장육부는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서 빚었을까? 절로 나고 자란 것처럼 내 육신을 얼마나 주장했던가.
그렇다. 머리털 하나도 소중히 여겨야 할 일이다. 조약돌에 소원을 빌던 수많은 손길의 흔적들도 켜켜이 쌓여 있다.
어쩌다가 헌 책을 사서 읽을 때, 글의 행간이나 여백에 남긴 메모 몇 자로도 전 주인과 소통이 되듯이, 작은 돌탑에 조약돌
하나 얹으며 나 이전에 돌을 얹은 손길과 그의 간절한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손끝에 닿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눈물이
핑 돈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 작은 돌멩이에 마음을 의지하고 고단한 시간의 강을 건너보려고 했을까? 나도 지금 그처럼
조약돌 하나에 간절한 마음을 정갈하게 담든다. 그것을 탑 위에, 아니 이전 사람의 소원 위에 포개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에게 번지는 순간이 아닌가.
그런데 정성이 부족했을까. 돌은 떼굴떼굴 땅으로 떨어진다. 다시 주웠다. 이번에는 손에서 교만의 힘을 오롯이 빼내고 살짝
얹는다. 내 소원을 머금고 올라앉은 조약돌과 눈을 맞춘다. 그리고 찰칵 인증사진 한 컷 찍었다. 언젠가 이 돌에 담은 소원을
이루는 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일어섰다.
이곳을 찾았던 천차만별의 사람처럼 소원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를 빌었을 것이고, 과년한 청춘들은 이상향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서, 또 나이 지긋한 부모들은 오직 자손들의 오복
을 위해서 탑을 쌓았으리라. 가장 절박한 소원은 역시 불치병으로 내일의 삶이 불확실한 이들의 소원이 아닐까 싶다. 돌마다
그들의 지문이 또렷하다.
그런데 ‘돌탑’ 하면 먼저 떠오르는 탑이 있다. 전북 무주구천동 마이산의 돌탑들이다. 여고 3학년 때 졸업여행으로 다녀온
곳이다.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돌탑의 높이와 그 숫자에 친구들과 함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대체 그 깊은 산골에
누가 왜 돌탑을 그렇게 정성들여 쌓았을까. 그보다도 수십 미터 되는 돌탑을 그 당시 사람의 손으로만 어떻게 쌓았을까.
하늘에 닿을 듯한 맨 꼭대기 돌은 어떻게 올렸을까. 궁금증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885년에 이갑룡이라는 청년이 입산하여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30여 년 동안 돌탑들을 쌓았다고 한다. 120기를 쌓았는데
지금은 80기가 남아서 찾는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탑은 접착제 하나 사용하지 않고 주변의 천연석으로만 정교하게
쌓았다. 그 당시 무슨 도구가 있었을까. 순전히 손으로만 돌멩이 하나하나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비바람 광풍에도
넘어지지 않았다. 많은 탑마다 갖가지 이름도 붙여 있다. 오방탑, 약사탑, 월광탑, 일광탑, 흔들탑 등이다. 그 젊은이는 무슨
소원이 그리도 많아서 혼자서 오랜 세월 고락을 돌과 함께했을까 싶었다.
오늘 만난 작은 돌탑들은 마이산의 돌탑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마이산의 그것은 한 사람이 평생을 받쳐 쌓았다.
그런데 이곳의 돌탑들은 여러 사람이 오방색 같은 마음을 모아서 쌓은 것이다. 높이나 덩치에서 마이산의 그 탑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엇비슷한 마음들이 돌 틈에서 숨을 쉬고 있기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 같다.
어릴 적 하교할 때 지나던 산길에는 탑은 아니지만 돌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옆을 지날 때면 오싹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친구들 따라서 돌멩이 하나에 소원을 담아서 돌무덤 위에 얹었다. 그 소원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환하다. 그때 당시
담임 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돌멩이에 담았던 것 같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루지 못한 소원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많았을까. 그래서 내 소원은 뒤로
밀려, 아직도 신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의 욕망, 과연 그 최대치는 존재하는 것일까.
드넓은 꽃밭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은 온통 조약돌탑에게 가 있다. 오늘 빌었던 열한 살 외손자를 위한 소원은 신 앞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언젠가 한 번 다녀 오면서
마이산의 돌탑!
참 신기하게 보곤 기억을 추억해 봅니다
청송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