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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은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도둑과 공해와 뱀이다. 그리고 많은 것은 다섯이니 향나무, 바람, 물, 돌, 미인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약초는? 하고 물으니 약초와 나물은 지천이라 “많다”의 수준이 아니라 한다. 육지에서 귀하다는 나물은 여기선 하도 흔해 길거리에 있어도 누구도 캐지 않을 수준일 뿐더러 소의 먹이로 쓸 정도라 한다. 그래서 울릉도 소를 “약소”라고 부른다.
이렇듯 절해고도의 지리적 약점은 재료에 있어서는 천혜의 환경인 셈이다. 게다가 깊고 푸른 동해에서 난 싱싱한 해산물이 뒷받침 하니 밥상마다 진수성찬이고 한 수저마다 보약 한 첩이다.
울릉도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음식들은 한 끼 식사에 머물지 않는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도 있지만 울릉도여서 맛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고유의 음식도 존재한다. 그 하나하나마다 가진 맛을 글로 풀어 지면에 담기란 무엇보다 어렵다. 그래도 향후 울릉도를 찾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본다.
어떤 음식이든지 알고 먹으면 좀 더 맛있는 법이다. 1. 물회
다양한 채소와 신선한 해산물이 올려진 물회, 거기에 시원한 육수를 부어 국수를 말아먹는 그 맛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별미이다.
울릉도의 물회는 경북 포항이나 강원도 방면의 물회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일반적인 가자미 등의 회 보다 지역의 명물인 오징어가 많이 들어간다. 바닥에 깔린 참기름이 고소한 맛과 향을 더해주며 살얼음 낀 육수의 새콤달콤함은 긴 뱃시간, 멀미로 시달린 이들의 속을 단번에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투명한 오징어가 가진 단맛은 다른 회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싱싱한 해산물(생선횟감은 보통 포항에서 실어오는 편이다.)과 채소가 주는 강렬한 색채, 함부로 섞으려하다간 사장님의 황급한 제지를 받게 된다.
먼저 준비된 고추장을 넣어 잘 섞은 후 육수를 세 국자 넣으라 하신다. 이런 곳에서는 가르쳐주는대로 따라야 한다.
시원한 물회는 거짓말처럼 배를 편안하게 만든다.
기나긴 시간 동해의 너울을 헤쳐오느라 지친 몸은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산해진미도 크게 다가오지 않던 그 상태에서 접한 물회는 놀랄만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게눈 감추듯 그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한 그릇을 집어삼키고 소면을 넣어 남은 육수와 채소에 섞는다.
모름지기 인생은 이 물회처럼 확실히 말아먹어야 한다. 적어도 단맛, 신맛, 매운맛 모두 섞어 다 먹어봐야 배불러도 후회 없지 않겠는가.
2. 섭밥
홍합밥이라고도 하는 섭밥, 1996년 경향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예전엔 ‘열합밥’이라 불렸던 기록도 있다. 당신이 음식에 조예가 있다면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홍합’이 진주담치이고 ‘섭’이라 불리는 홍합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강원도 강릉이나 속초, 고성 등지에서 만나는 그 섭은 울릉도의 자랑이기도 하다. 해녀가 직접 따 올리는 그 섭을 잘게 다져 지은 섭밥은 그 자체로도 향긋한 내음에 군침이 돌 뿐만 아니라 진분홍 속살이 보기에도 좋다.
홍합밥(섭밥), 산채비빔밥, 울릉약소, 오징어, 호박엿을 울릉도의 5미라 칭하는데 그 중 이 섭밥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울릉도 제대로 못 간 것이나 다름없단다.
면면을 들여다보노라니 붉디붉은 섭 사이로 잘 말린 일반 홍합(진주담치)도 들어가 있다. 씹는 맛과 함께 향취를 더해줄 용도이다.
그렇게 섭을 다져서 멥쌀과 찹쌀 반반 섞어 지은 밥이니 밥알 하나하나마다 살아서 돌고 윤기가 가득하다. 들기름과 간장 살짝 뿌려 지으니 이미 색깔도 다르다. 이럴때엔 속되더라도 “때깔”을 써야 더 맞을 듯 싶다.
양념장에 잘 비벼 한 입 떠 넣으니 입안 가득 구수함과 감칠맛이 폭발한다.
흐물흐물 물기 가득한 홍합이 아닌 섭은 그 자체로 탄력이 있어 씹는 맛이 잘 살아있다. 거기에 조개가 가진 특유의 감칠맛이 섭살뿐만 아니라 밥에도 스며있으니 이 한 수저가 얼마나 달디달겠는가.
같이 나온 돌미역국도 아무런 것 없이 미역과 들깨가루만 살짝 넣었을 뿐인데도 깊은 풍미를 자아낸다.
“이 미역, 여기 좋은 것 쓰네요잉.”
일행 중 전남 신안의 압해도에서 온 총각이 한 마디 한다. 신안쪽이야 미역, 다시마, 전복 등 다양한 수산물의 보고인 곳 중 하나이다. 직접 배를 몰며 어업을 한다는 그 총각이 말 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3. 따개비칼국수
좁디좁은 식당, 자리잡고 앉으면 뒷편의 일행과 등을 마주댈 정도로 협소한 공간에서 받아든 칼국수 한 그릇은 놀라웠다.
“국물은 따개비 내장을 넣어 끓였어요.”
먼저 한모금 훌훌 불어 마시니 그 칼칼함 속에 눅진한 바다의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 전복으로 죽을 끓일 때에는 게우를 풀어야 비교 못 할 특유의 풍미가 되살아나는 법이다. 따개비라고 그렇지 않을쏜가.
여기에서 좀 더 말하자면 사실 따개비는 갑각류의 종류이고 이 울릉도의 따개비칼국수에 들어가는 것은 따개비가 아닌 삿갓조개의 종류, 흔히 배말로 부르는 바위에 붙어 자라는 조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개가 가진 풍미가 그득히 국물에 녹아나는 것이다.
그래도 먼 도서지방에서는 구분없이 바위에 붙은 것을 흔하게 따개비로 부르기에 지역적 방언을 토대로 말하자면야 틀린 셈은 아니다.
게우가 주는 텁텁함과 해산물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약간은 칼칼하게 끓여 낸 국물. 그렇게 속을 풀고 면을 집어 삼킨다.
토속음식이란 것이,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미식이란 것이 이리도 즐겁다. 서울 도심 어디에서 이렇게 진득하게 바다향 나는 국물을 맛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각각의 음식은 언제 먹어야 더 맛있는지는 정해져 있으니 나름 생각한 이 따개비칼국수를 최고로 맛있게 먹는 방법은 바로 전날 술을 잔뜩 마시는 것이다.
그렇게 쓰린 속을 부여잡고 숙소의 문을 열면 어느새 떠오른 태양이 잔뜩 찌푸린 눈을 더 눌러붙일 것이다. 상쾌한 바닷공기를 마시며 정신을 일깨운 후 이 따개비칼국수를 받아든다. 입 안에 들어가는 면과 진한 국물은 간밤에 마신 술을 그대로 풀어낼 것이다.
어느새 해장을 넘어 해독의 수준에 다다른다면 이마에 한 줄기 땀방울이 그릇 안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노릇이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솜씨좋게 싱싱한 나물을 무쳐서 놓는다. “전호나물”이다. 방언으로 “전어나물”이라고도 하니 자칫 울릉도에서 전어무침 주라는 말에 회무침을 떠올린다면 크게 착각하는 셈이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나물이라 하며 미나리의 향긋함을 그대로 닮은 쌉사래함이 입맛을 돋운다.
그렇게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소박하게 비워낸다.
4. 산채비빔밥
울릉도에 도착한다면 누구나 한 번은 가보게 되는 곳 중 하나가 나리분지이다.
그 독특한 지형 속에 위치한 분지마을은 평온함 가득한 곳이었다. 여행상품을 통해서든 트레킹을 통해서든 나리분지에 왔다면 모두 높은 확률로 산채비빔밥으로 식사를 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
사실 정해진 메뉴라는 것을 넘어 이 산채비빔밥은 울릉도의 산을 그대로 담은 맛이다.
부지깽이 나물과 산부추, 미역취, 고사리, 취나물 등 상 위에도 그릇 안에도 산 기운을 담은 나물이 지천이다. 삼나물과 더덕을 무친 접시는 강렬한 맛과 색으로 식욕을 돋운다.
밥 놓을 곳 비워낸 그 빈공간의 헛헛함이 식욕을 더 당긴다.
지천에 난 약초와 산나물이라 하여 맛과 향, 그 효능이 덜하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하나하나에 담긴 영양은 전국 어디에 내어놔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아니, 전국 어디의 약초와 산나물이 이런 절해고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과 그 생명력을 놓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음식으로 다스릴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했으니 이 한 수저에 몸을 맡겨보자.
고단한 여행길, 지친 트레킹 산행 중간에 만나는 이와같은 식사는 그 자체로 명약이다. 남은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잘 비빈 그 산채비빔밥 한 그릇의 힘으로 하루를 넘긴다.
그래도 무언가 속이 약간 허전하고 남은 일정에 술의 힘을 빌리고 싶다면 씨껍데기술을 추천한다.
10여가지 약재를 넣어 담근 이 동동주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상 한가득 차려진 나물, 그리고 산채비빔밥, 호기롭게 시켜 본 더덕전 등 그 무엇과도 궁합이 맞는다. 그 들척지근한 맛과 시원한 청량감, 곡주가 주는 든든함은 행군길에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다.
마주앉은 이와 그렇게 산채에 곁들인 술잔을 주고 받으니 어느새 서먹함은 가시고 길벗의 든든함이 자리한다. 그 섭밥에 딸려나온 미역의 품질을 바로 알아맞힌, 신안군 압해도에서 온 강민구씨이다.
‘한반도의 식탁’을 자부하는 남도의 까다로운 입맛에도 이 산채비빔밥과 씨껍데기술은 백점 만점에 백점이다. 그 사람좋은 미소만큼이나 말이다.
그나저나 매력있는 그 술맛에 너무 취할까 걱정이다. 씨껍데기술 때문에 달아오른 뺨은 나리분지에 내려앉은 단풍만큼이나 붉다.
어느새 저문 분지 위로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다.
by 장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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