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볼우물
발그레한
감 익혀낸 건들마 따라
산과 들
제 이름을
북돋우어 찬란한 시간
내 시도
더 붉어지라고
흔들고 깨워
가을볕 쬔다
2024년 9월, 이형남
꽃물 드는 하루
모란이 뚝뚝 떨어지는 삼백 예순 그 어느 하루
오월의 화폭 속을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 그늘 안쪽 사유의 아방궁 넘나들다 으밀아밀 언죽번죽 노닐다가 아득한 절벽 너머를 읽는 푸른 하늘, 은유인 듯 상징인 듯 못내 찬란하여 잊히지 않는 꽃잎 무게 다 받아냈을까 날 향한 한 사람이 너였으면 참 좋겠다 귀엄바치 오직 한 사람...
오롯이 당신 탐하다가 눈 맞춰 웃는 둥근 저 바람질
지구는 지금 꽃을 사랑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구멍 난 지구본의 귀엣 소리 당신이었나요
지구촌 새싹들이 두리번두립닌 갸웃갸웃 공중 나는 새들도 꽁지 들고 종종종 미세먼지 뒤덮여 콜록거려요 흰 눈 덥인 봉우리가 수신호하다 허물어지 그 소리 당신의 아우성으로 들려올 때 참고 견뎌낸 눈물 닦아 줄손길이 그리운 날에
꽃인 듯 마음을 열어 아픔을 달래주세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토끼가 귀 세운 자리 두더쥐가 굴 파고 든다
그 집 앞 지날 때면 괜스레 발걸음이 무거워져, 운동화 끈을 당겼다가 풀었다가 다시 매는 길섶 해바라기 둥근 얼굴 피보나치수열처럼 꽉 찬 돌담이 아니어서 더 좋은 울타리, 바람 숭숭 드나들어 곁눈으로도 보이는 그 애의 모습
한 눈에 다 보이는 곳 오늘도 나는 구멍을 판다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인 거야
갯버들 괭이밥풀 옹알이에 숨은 서사
아뿔사!하마터면 잘릴 뻔한 실바람이 형체 없는 꼬리를 이리저리 요리조리 살랑살랑 불어올 때 개울도 물비물 반짝반짝 절로 맑히나, 여린 봄날 소소사사 구름 한 줌 또 한 줌 날마다 꽃그늘에 피워내는 꽃다지의 저 고요 우우우 조무래기 참새 떼 끼리끼리 뭉쳐난다 화르르 이운 꽃잎 사이로
다 품은 하늘에 눈 맞추다 풍덩 빠진 한나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