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받침
조이섭
젊은이들은 부모가 옛날얘기를 하면, 또 ‘라떼는’이라며 고개를 돌리거나 ‘꼰대질’이라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작은 것 하나라도 예사로 보이지 않고, 지난 일이 겹쳐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쌍둥이 손녀가 고사리 같은 손에 연필을 쥐고 꼬무락거리는 것을 보니 기특도 하려니와 신기하기도 하다. 초등
학교 입학하려면 아직 까마득한 녀석들이 한글을 쓰려고 날갯짓을 하니 말이다. 그보다 쌍둥이가 사용하는 연필
과 공책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격세지감마저 든다.
그때는 연필이 희미하게 쓰여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세게 누르면 연필심이 툭툭 부러지거나 종이 뒷면과 그
다음 장까지 눌러 쓴 자국이 남았다. 진하게 쓴답시고 까만 심에 침을 발라서 쓰면, 갱지로 만든 허접한 공책이
찢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책받침을 사용했다. 하지만 책받침인들 제대로일까.
재질이 너무 단단해 뻑하면 부러졌다. 한참 후에야 앞면에는 여배우나 하이틴 스타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고, 뒷
면에는 구구단이나 도량형 환산표가 새겨진 부드러운 플라스틱 책받침이 나왔다.
집을 받치는 주춧돌이 애써 스스로 드러내지 않듯이, 책받침은 연필과 종이를 보호할 뿐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다만,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래로 또 아래로 물러날 뿐이다.
나도 책받침처럼 세월의 뒤안길로 한발 한발 물러서는 중이다.
세모(歲暮)는 공책 한 권을 다 쓰고 새 공책으로 바꾸는 때이다. 뒤돌아보면 올해 메꾼 공책 너머에 내가 쓴 빛
바랜 공책이 켜켜이 쌓여 있다. 보잘것없고 아름답지 못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내일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한
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접고 작은 위안으로 삼는다.
젊은이들이여, 나이 드신 부모님께서 자식들의 책받침 노릇하며 쓴 공책에서 철 지난 이야기 한 자락 꺼내 드는
것을 ‘라떼는’이라며 눈 흘기지 마시라. ‘그땐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세모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