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나해 부활3주일
사도3:12-20 / 1요한 3:1-7 / 루가 24:36-48
부활의 은총으로 먹고 용서하기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습니다. 바쁘거나 특별한 이유로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하루 세끼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기도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부분이 있는 앞부분 다음으로 나오는 우리 삶에 관한 부분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기도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먹는 것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단지 매일 먹고 있다는 것만 알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먹었고, 누구랑 먹었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생히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그 식사는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도 이러한 특별한 식사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막 시작하셨을 무렵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부터 잡히시기 직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함께 식사한 최후의 만찬, 그리고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한 식사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식사에 대한 증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몇십년이 흐른 후 복음서가 집필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언급한 식사는 제자들에게 너무도 강렬해서 세월이 흘러도 희미해지기는커녕 그 의미가 점점 깊어져 마침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도 이러한 강렬한 식사체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일 복음인 요한복음처럼 이번 주일 루가 복음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증언한 것과 같이 루가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를 있기를!”하고 인사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십자가 처형으로 인해 상처난 손과 발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선 언급되지 않은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식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갈릴리 호숫가 어부 출신 제자들이 즐겨 먹던 생선을 드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존재가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수긍하지만, 그러한 존재가 상처난 손과 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까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평소에 즐겨먹던 생선을 함께 먹었다는 것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강렬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사는 단지 육체적 허기를 채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거기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간에 즐거움과 같은 정서적 유대도 생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식사는 새로운 활동을 위한 시작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새로운 시작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 (루가24:47)”
오늘 우리가 들은 1독서 사도행전과 2독서 요한의 첫째 편지 모두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부하신 이 말씀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앉은뱅이로 구걸하던 사람을 일으켜 세운 기적을 한 후,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관하신 분을 죽게 만든 미움과 분노라는 죄에서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럴 때 앉은뱅이가 예수이름으로 다시 새 삶을 찾았듯이 여러분도 주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침내 죄의 질곡에서 벗어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해 보라고 하시면서 더 이상 죄 속에 있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십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식사를 했던 사건은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심지어 스승의 고난을 외면하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용서와 위로, 그리고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먹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 숭고한 차원으로 변화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의기도의 정신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교리시간에서 배웠듯이 우리가 자주 하는 주의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짜여 있습니다. 앞부분은 하느님에 관한 기도이고, 뒷부분은 우리에 관한 기도입니다. 이 뒷부분은 크게 3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물질적 필요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우리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의 현재를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둘째 기도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계성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이 기도입니다. 동시에 이 기도는 우리의 과거를 치유하고 해방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나는 과거에 묶여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내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과거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 기도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용서를 받고 죄에서 해방된 우리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기도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죄를 용서해주심으로써 그들의 과거를 치유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복음의 증언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현재’를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선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힌 채 살거나,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게 되어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에게 기쁜소식입니다. 부활의 은총으로 우리의 식사는 이제 기쁨의 잔치가 됩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그 기쁨으로 충만해져서 베드로 사도처럼, 그리고 요한 사도처럼 그 충만한 기쁨을 세상에 증거합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강하게 체험했던 그 사건을 지금 이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며 기념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사명을 안고서 삶의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이 예배는 이러한 주님께 감사하는 감사성찬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함께 음식을 나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