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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중앙교회 송구영신예배 설교 +
+ 제 목 : “예수님만 바라보라! 예수님만 붙잡으라!”
+ 본 문 : 마가복음 5장 25절 – 34절 (신약 61쪽)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멘!
할렐루야! 2022년 한 해를 보내고, 2023년 새해를 맞는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 “잘 살아오셨죠?”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있기를 축복합니다.”
새 달력을 걸고서도, 음력설 타령하며 버티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일이면 한 살 더,
보태야 합니다. 받아들이세요. 다행히 정부에서 한국나이가 아니라, 만 나이로 한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한 살, 어떤 사람은 두 살까지 나이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버튼 브레일리(Berton Braley)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버튼 브레일리의 “최고의 시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라는 제목의 희망의 시(詩)입니다.
“최고의 시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최상의 집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최고봉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최대의 강에 아직 다리는 놓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초조해 하지도 말라. 약한 마음을 먹지도 말라.
기회는 이제 막 도래하고 있다.
최고의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최고의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저는 이 시의 주인공이 우리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겠다는 비전을 가졌다면
지나간 2022년이라는 어제보다, 2023년이라는 새해를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은 물론 더 나은 내일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작은 머리로 작은 입으로 미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우리는 아름답고 멋진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022년을 보내는 저의 설교제목은 “예수님만 바라보라! 예수님만 붙잡으라!” 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청합니다. 자신의 12살 된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 곳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을 향해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밀어댔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무리들 가운데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부인병으로 월경 이외에 자궁 출혈, 멈추지 않고 피를 흘리는 병을 말합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기능성 자궁 출혈’ - 또는 ‘기질적 자궁 출혈’로 구분합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성들은 심한 빈혈 - 악성 빈혈과 함께 노쇠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고, 머리카락과 손톱이 빠지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물론, 유대사회에서는 종교적으로 격리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15장 19절에 보면, 오늘 본문에 소개된 여인은 율법으로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여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고, 그런 여인을 만지면 그도 저녁까지 부정합니다.
누웠던 자리, 앉은 자리, 여인의 몸이 닿았던 물건을 만지는 사람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끼어들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병이 낫는다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소망 뿐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만지면 병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 …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고 생각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이나 병을 앓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의사들을 만났으나 고침 받지 못습니다.
당시 주술사들이 의사 행세를 했고, 진료나 치료 방법도 미신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런 효험 없는 치료를 하는 의사들에게 여인은 괴로움을 받았고 재산도 허비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거의 포기상태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가슴 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내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니, 얼마나 설레었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되는 부정한 여인, 12년 동안 병을 앓아 심히 쇠약해진 여인,
그러니 예수님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가까이 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만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만 붙잡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이라야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줄 믿었기에,
여인은 수많은 무리들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예수님 뒤로 최대한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여인은 직접 만나지 못해도, 옷에 손만 닿더라도, 병이 나을 줄 믿었습니다(막 5:28, 34).
드디어 그렇게 그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에 닿자 붙잡았습니다. (막 5:27)
그러자 12년 동안 그치지 않았던 여인의 혈루증이, 즉시 그쳤습니다.(막 5:29, 눅 8:44)
예수님은 순간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강하게 느끼셨습니다. (막 5:30)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물음에 제자 중 베드로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네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내게 손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눅 8:46) -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습니다.
그 여인은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지금 되어진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 …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멘! -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붙잡음으로 구원받았고, 치유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인이, 이 놀라운 구원의 축복과 치유의 축복은 받은 것은,
“예수님을 만나리라.” “ 예수님만 바라보리라!” “예수님만 붙잡으리라!” 하는 열정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예수님을 바라보면 고침 받는다는 믿음,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열정 신앙! - 남다른 열정을 가진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 ” (막 5:27)
“큰 무리가 따라가며 예수님을 에워싸 밀더라.” 그 모든 난관을 열정신앙으로 극복했습니다.
그 당시의 율법적 제한이나, 사람들의 시선, 비판의 시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그 절실함이, 그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과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소망과 믿음을 가졌다면, 그 소망과 믿음을 이루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이 있어도 그 믿음을 지키려는 열정,
그 믿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열심, 장애가 있어도 극복해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실패했다고, 넘어졌다고, 힘들고 어렵다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2022년 지난 한 해, 비전과 열정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들, 얼마나 이루며 사셨습니까?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겠다. 술을 끊겠다. 잘못된 습관들을 고치겠다고 굳게 결심했지만,
다시 입에 대고, 여전히 잘못된 습관들을 가진 채, 살아버린 한 해의 삶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겠다고 다짐 했지만, 몇 장 읽고 다시 성경을 덮어두지는 않았습니까?
가정에서 신앙의 인정받는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일터에서 예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게 어렵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열정을 다해 교회사역을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지지부진 - 집어치우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그 옷자락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할까요?
아니 우리가 바라보고 붙잡아야 할 예수님은 어디 있을까요? 그리고 누구일까요?
마태복음 25장에, 오른편 양들로 구별된 성도들과 왼편 염소로 구별된 자들이 나옵니다.
그 구별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른 편의 축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 예수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나 예수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 예수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나 예수가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주었고,
나 예수가 병들었을 때에 돌봐주었고, 나 예수가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오른편의 양들로 구분된 성도들이 “우리가 언제요?” 하고 물었더니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 예수에게 한 것이니라.”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왼편 염소로 구별된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 예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나 예수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 예수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나 예수가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나 예수가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왼편의 염소들로 구분된 저주받은 자들도 “우리가 언제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 예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 그리고 무서운 말씀으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염소들은 영벌에, 양들인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아멘!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고 붙잡아야 할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 예전 성경으로는 소자!” 입니다. 그리고 이 지극히 작은 소자는,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모든 이웃들 - 남편, 아내, 자녀, 부모형제 자매들이고,
지금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제한된 시간에 다 예를 들어 말씀드릴 수는 없고, 가장 쉽고 재미있는 예를 들면,
부부 - 남편이라는 작은 자, 아내라는 작은 자를 예로 들어볼께요. “시도 때도 없이 밥줘!
하는 남편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물줘! 하며, 남편이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세상에서 방황하는 남편이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영접하였고, 지갑이 텅텅 비어,
지갑이 헐벗었을 때에 오만원짜리 열장으로 옷 입혀 주었고, 남편이 마음에 병들었을 때에,
돌봐주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방탕의 감옥에 갇혔을 때엔 그래도 바라봐 주는 아내“
그 아내는 지극히 작은 자 - 소자에게 한 것이 되고, 그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 됩니다.
반대로 해도 똑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밥하기 싫어 외식하자! 하는 아내가 주릴 때에 같이 외식을 해주고, 사랑에 목말라 하는 아내에게 ”사랑해!“ 사랑의 물을 마시게 해주고,
맞벌이에 지친 아내가 힘들게 들어왔을 때에는 집안 일을 다 해주고, 옷장을 열어보면서,
입을만한 옷이 없네 하고 헐벗었을 때에 예쁜 옷을 사서 입혀 주고, 아내가 아플 때에는,
병원 가주고, 우울증이라는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같이 있어주며 바라봐 주는 남편“
부부로 예를 들었습니다만, 자녀에게, 부모에게, 다른 성도들에게, 특별히 교회 안에,
상처 입은 주변의 성도들에게, 교회안의 목회자들과 모든 사역자들에게, 전도대상자들에게,
오른편 양들로 구별된 성도들처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처럼,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붙잡은 여인처럼 열정을 다하면, 그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 되어 영생에 들어갑니다.
제가 1972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입학했는데, 과목 중에 “설교연습”이 있었습니다.
5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제 평생의 설교의 내용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성한 설교본문은 여호수아 2장 15절 - 21절, 라합의 붉은 줄을 맨 사건이었습니다.
설교문을 작성하고, 제 차례가 되어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열정을 다해 설교하였습니다.
저의 열정적 설교가 끝나고, 담담교수님이신 김규당교수님께서 설교평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설교평은 딱 한마디였습니다. “너의 설교에는 예수님이 없어.” - 그리고 탈락,
예수님이 없는 설교, 그래요. 예수님이 없는 설교는 아무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저는 평생 설교문을 작성한 후, 내 설교에 예수님이 있는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기 전 “이 설교를 듣고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만 붙잡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린 후,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 후에, 똑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이 설교를 들은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만 붙잡고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나간 삶은 어떻게 살았든지, 앞으로 어떻게 사시렵니까?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붙잡고 살아가는 열정신앙으로, 하나님의 약속,
예수님의 능력을 끌어내어 나의 것으로 삼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만지는 심정이 있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내 것이 됩니다.
부끄러운 것 많고, 사람들에게 보일 만큼 당당한 것 없어도, 지금 여러분에게 방해되는 사람,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붙잡고 살아가는 열정신앙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사람, 가로막는 제자들과 군중들이 있어도,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붙잡고 살아가는 열정신앙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예수님의 기적을, 예수님의 응답을 믿기 때문에, 아픈 몸과 마음,
가지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던 여인처럼,
여러분과 예수님과의 영적인 거리가 가까워져,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치유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상태가 예수님을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주와 같이 길 가는” 발걸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는 영적 거리를 확보하며 사십시오.
그것이 승리요, 그것이 해결이요, 그것이 축복이요, 그것이 열정이요,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경만 합니다. 예배를 구경만 합니다.
성경을, 설교를 구경만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과 거리가 가깝다고 착각합니다.
여인이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 옷자락에 손대었을 때, 예수님 능력이 자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치유되었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 예수님만 바라보는 열정을 품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 예수님을 붙잡는 열정을 품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열정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열정은 예수님만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라!”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신앙열정! “예수님 만나듯이” “ 예수님 바라보듯이” “예수님 붙잡듯이 살아가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지극히 작은 사람들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열두 해를, 아니 더 많은 세월을 예수님 없이 신앙생활을 했어도,
지금 곧, 여러분의 믿음의 손을 내밀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모든 신앙의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가 예수님의 그 능력의 옷자락에,
손을 대므로, 2023년 이후, 영적 승리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열정 신앙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던 여인처럼,
우리도 언제나 예수님을 향해 손 내미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 때문이라고 핑계 대며,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방해가 된다고, 사람들이 못 가게 한다고 핑계 대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겠다는 열정신앙으로, 주님의 능력을 끌어내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