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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8월18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청주] 그저 감사하라.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판관 9, 6-15
+ 복음 마태오 20, 1-16
★ 사람들이 기드온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자,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그러나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친척들을 꾀어 수많은 형제를 모두 죽이고 자기를 임금으로
세우게 만든다. 왕정을 요구하는 것은 하느님을 임금으로 모시지
않으려는 것이다. 요탐은 이를 비난한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선한 포도밭 주인에 비유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후하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고
전함으로써 복음서 저자는 우리가 이 본문을 비유로 읽고 묵상하도록
안내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늘 나라에서는 고용주인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을
후하게 대한다는 뜻으로만 이해한다면,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에 함축되어 있는 해결의 실마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지요. 포도밭 주인에 관한 이 말씀이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라면,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가지고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으신 분, 바로
그런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의 문을 모든 이에게 후하게 열어 주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침부터 수고하여 많은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 마땅히 더 큰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결국은 하늘 나라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셈이지요. 저렇게 살고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
실제로는 이미 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쪽에 달렸던
강도는 꼴찌였다가 첫째가 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오늘 복음의 골자는 하느님의 자유이고 하늘 나라의 무상성입니다.
죄스러운 우리이지만, 그분의 후하심 덕분에 무한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에 가면 우리가 깜짝 놀라거나 당황할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지요. 반드시 와 있어야 할 사람이 안 보이고, 와서는 안
될 사람이 이미 와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늘 나라에 와 있다는 놀라운
사실 …….
복음에 나오는 일꾼들처럼 하느님께서 너무 후하신 것 아닌가 하면서
시기 질투하는 옹졸한 사람이 되어 낭패를 보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인
의미에서 바다처럼 넓으신 하느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넉넉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마태 20,12)
유교문화 바탕 위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위아래를 잘 따집니다.
나이가 더 많으면 형님이고 학교 먼저 나왔으면 선배이고
군대 먼저 들어갔으면 고참입니다.
이런 짬밥 문화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어 우리는 그게 당연한 것인양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장유유서 문화는 사람을 줄세우게 만들고 등수를 매기고
계급을 매기고 갑질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교 문화는 다릅니다.
사람은 하느님 앞에 모두 평등합니다.
일찍 신자가 되었다고 더 훌륭한 하느님의 아들딸이 아니고
돈을 많이 내는 신자라고 더 이쁨을 받지도 않고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더 많은 축복을 받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후하신 분이시니까요.
이런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분입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마태오 20, 1-16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하늘 나라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져 오셔서 가장 필요한 힘을
저마다에게 보태어 주시는 채움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의 나라입니다.
이른 아침이나 맨 나중에 온 사람이나 모두에게 변함없는 자비를
베푸시는 자비의 나라입니다.
품삯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살아있는 이시간이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 가 있지 않기에
포도밭의 시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에는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이기심에 가득찬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하는 이 순간입니다.
저마다 이순간에 충실한 우리들이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신 생명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그분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인생이라는 포도밭에서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매일 새롭게 감사하는 봉헌의 마음뿐입니다.
- 구속주 회 한 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복음의 가치
이상국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마태오 복음 20장 1-16절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복음의 가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복음의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의 결말만 보자면 인간적으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이른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부터 일한 사람들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데, 먼저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투덜댑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이 투덜거림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과 참 닮았습니다.
여러분이 이른 아침부터 일하러 온 사람이었다면 이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늦게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을 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요?
본당에서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온갖 봉사를 하고 있는데 늦게 와서
빈둥빈둥한 교우와 똑같은 대우를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웃과 비교하여 여러 상황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를
본다 싶으면 억울함을 드러냅니다.
특히 그럴 때는 무척 속이 상해 마음의 문까지 닫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은총을 청하는
데 있습니다.
○ 복음 말씀이 여러분을 진심으로 기쁘게 하는지요?
- 이상국 요셉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
◈ [수도회] 빛과 기쁨의 언덕 클레르보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빛과 기쁨의 언덕 클레르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12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그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12세기를 자신의 두 어깨에 짊어졌다.”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베르나르도의 지혜와 경륜은 하늘을 찔렀는데 당대 교황님들을 비롯해
많은 왕들이 그에게 조언과 상담을 청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라며
우러러 보았습니다. 동시에 베르나르도는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
수도생활 쇄신의 선구자, 교회 분열을 저지하는 든든한 보루, 탁월한
성서학자, 위대한 명 설교자, 그러면서도 겸손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갔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마지막 교부’ 또는 ‘꿀과 같은
혀를 가진 박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090년 프랑스 귀족 가문의 촉망받는 자녀로 태어난 베르나르도는
다정다감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2살의 나이에
시토회에 입회해서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인품과 지도력, 그리고 놀라운 언변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입회하기 전 그는 여러 형제들과 친구들을 영적으로 잘 지도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하나로 모았고
의기투합한 그들은 당시 개혁파 수도원으로 ‘뜨고 있던’ 시토회에 동반
입회를 하게 됩니다.
초기 양성 기간을 마친 베르나르도는 장상의 지시에 따라 동료 수도자
12명과 함께 그 유명한 클레르보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클레르보에 작고 소박한 수도원을 건립한 베르나르도는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한 고행과 단식, 집필과 일에 전념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숨을 쉬었으며, 또 그 결실을 형제들과
나누었습니다. 점차 클레르보는 수도생활 개혁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메마른 골짜기였던 클레르보는 점차 빛과 생명의 계곡, 기쁨과
구원의 골짜기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르나르도의
성덕에 감화를 받고 클레르보로 몰려왔습니다.
베르나르도는 가톨릭교회 쇄신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교황청의 폐단과 고위성직자들의 세속화를 신랄하게 경고했습니다.
교회당국으로 부터 공인받은 순회 설교자로서 수많은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베르나르도는 스스로에게 그 유명한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그가 남겨준 수도자로서의 모범을 바라보며 같은 수도자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는 교도권으로부터 부탁받은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는 즉시 고향집으로 달려가듯이 부지런히 클레르보로 돌아와
평범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수도원으로 돌아올 때는 절대 혼자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그의 삶에 매료된 나머지 수도생활을 선택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그저 감사하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어려서는 삼촌이나 누나에게 용돈을 얻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명절이 되면 서울의 일터로 떠난 누나를, 삼촌을 동네 어귀에서
기다렸습니다. 누나를, 삼촌을 기다렸다기보다 용돈을 기다렸습니다.
그 액수가 얼마가 되든지 상관없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용돈을 기대하게 되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용돈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어느
날 그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삼촌께서, 누님이 용돈을 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는 아닌 척 했지만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를 포도원 일꾼의 품삯에 관한 비유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아홉 시에 일을 시작한 사람이나
열두 시, 오후 3시에 그리고 다섯 시에 시작한 사람과 똑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일꾼들은 계약을 맺을 때는 그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러나 품삯을 받게 되는 시간이 되자 일찍 일을
시작한 사람은 뒤늦게 시작한 사람보다는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
기대를 채울 수 없었고 그래서 투덜대며 급기야 따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는 순간 자기의 첫 마음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그는 계약한 만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받지 못한
것처럼 느꼈습니다.
누가 용돈을 주면 주는 대로 감사히 받을 것이지 투덜댈 자격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계약대로 받았으면 족해야지 왜 따집니까? 주인은 분명 정의를
지켰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시기심
때문에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5).
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십니다(로마11,32). 주님께서는 언제나 후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선을 베풀고자 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선은 주님께서
자유로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품삯을 받기 위해 일을 한 사람과 일 자체를 고마워하며 일을 한 사람과는
분명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나라에서는
결과보다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상급은 인간이 노력해서
이룬 업적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은 감사히 기쁘게 받는 것입니다.
“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가?”(성 아우구스띠노). 포도원에서 일을 할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 한 사람은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해도 해야 될 것을
한 사람은 많이 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만 앞서거나 부산함만 피우지
마십시오”(성 요한보스코).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마태20,16). 하느님 아버지는 너그러우시고, 나는
쩨쩨하고 시기질투하며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임을 뉘우칩니다.
인력시장에 가보신 적 있으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기 위해서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매일 팔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누구도 자기를 사가지 않습니다. 종일 기다리다
허한 마음으로 쓰디쓴 하루를 마감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일찍 팔려 나갑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일을 나간 사람이 뒤늦게 일을 한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일을 한 것이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주인에게
실망해서 불평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인이 잘못한
것인가요? 실망과 좌절로 기다림에 지쳐있다 뒤 늦게 일을 한 사람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주인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사랑이 많은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쁜 소식이고 복음입니다. 만일
우리의 업적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에도 후하게 주시기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015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우연한 기회로 예전에 알던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초등학생이었고, 저는 본당 신부였습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입니다. 영화도 보고, 야구장도 함께
가고, 다음에는 고궁에도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저도 젊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생 때, 대출받은 돈을 갚아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피자집,
카페, 호프 집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신문을 돌려보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잠시 형님과
포장마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매점을 운영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신학교의 매점 운영은
재미있었습니다. 물건을 사야하기 때문에 매일 외출이 가능했습니다.
신학생들이 주로 찾는 ‘담배, 음료수, 과자, 학용품, 세면도구’와 같은
것들을 팔았습니다. 신학생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교구 신협의
일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태권도를 배우던 아이들이 이렇게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다들, 자기의 자리에서 한
몫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아픔도 있고, 갈등도 있고, 시련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꿈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며칠 전에 앨범에서 사진을 하나 보았습니다. 저의
서품 기념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에 있던 초등학생이 사제가 되어서
지금 교구청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나라에 가면 3번 놀란다고 합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온 것에
놀라고, 아니 저 사람도 왔네 하며 놀라고, 꼭 올 것 같았던 사람이 안
보여서 놀란다고 합니다. ‘천길 물길은 알아도 한길이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와 재물로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안경을 쓰고 사람들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신앙은 길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마음으로
평가 받는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수도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하느님을
알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평가하고, 비난하기 전에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먼저 충실하게 이행하여야 합니다. 평가와 비난은 하느님의 몫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그냥 가도 100점
그냥 가도 100점
사람은 탄생 때 고향 하늘로부터 유리 항아리 하나씩 받는다 생각합니다.
태어나 금방 또는 100년 넘게 살다 가건 이 항아리를 가져간다 합시다.
그런데 그 항아리에 뭘 담아서 어찌 갖고 갔나를 보고 심판한다 합시다.
하늘식(天上形) 욕심 끈기 화해 봉사 눈물 같은 걸로 가득차면 좋겠지요.
세상식(世俗形) 욕심 고집 불화 착취 발악 같은 걸로 가득하면 망할걸요?
장애로 아무 생각도 살지도 못하고 태중에 죽어 그냥 가도 100점이고요.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 마태 20,12-13)"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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