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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를 오가는 길
千年王業一朝塵 천년의 왕업이 일조에 먼지 되니
白首孤臣淚滿巾 백수의 외론 신하 수건엔 눈물 가득 묻노니
借問首陽何處是 수양산은 그 어디 있는 건가
吐含明月自相親 토함산의 밝은 달만 가까이하고 있네
―― 조흠(曺欽, 신라 말기 아간)
▶ 산행일시 : 2018년 11월 17일(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14명(영희언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상고대, 산정무한, 인치성,
향상, 신가이버, 해피, 불문,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23.7km(1부 8.4km, 2부 5.5km, 3부 9.8km)
▶ 산행시간 : 10시간 15분(아침요기, 점심과 각 이동시간 불포함)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00 -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
04 : 20 ~ 04 : 33 - 경주시 황룡동 추원마을, 산행준비, 1부 산행시작
06 : 20 - 토함산(吐含山, △745.8m)
07 : 07 - 토함산 일출
07 : 42 - 석굴암
08 : 30 - 불국사 주차장, 1부 산행종료, 아침요기, 이동
09 : 02 - 남산동 탑말, 2부 산행시작
09 : 34 - 경주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09 : 55 - 임도
10 : 18 - 금오봉(金鰲峰, △467.9m)
10 : 52 - 상선암
11 : 25 - 삼릉 주차장, 2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07 - 포석정 주차장, 3부 산행시작
12 : 55 - 오층석탑
13 : 02 - 금오정(金鰲亭)
13 : 26 - 금오봉, 임도 고갯마루
13 : 52 - 이영재, ┣자 갈림길 안부
14 : 10 - 393m봉
14 : 36 - 칠불암
15 : 07 - 고위봉(高位峰, 금오산, △495.1m)
15 : 33 - 열반재, ┳자 갈림길 안부
16 : 02 - 용장(茸長)마을, 산행종료
16 : 08 ~ 18 : 05 - 용장리, 목욕, 저녁
21 : 46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토함산 지도
1-2. 경주남산 지도
2. 고도표
▶ 토함산(吐含山, △745.8m)
눈이 밝은 게 오히려 탈이다. 백년찻집 근처에 토함산 오르는 길이 있다기에 그 주변을 맴돈
다. 백년찻집이란 간판과 표시등만이 풀숲에 보일뿐 정작 찻집은 어디 있는지 도시 가늠하기
어렵다. 차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풀숲 소로에 색 바랜 산행표지기가 보이기에 일행들을
선도한답시고 냉큼 잡았는데 일행들은 더 좋은 길을 찾으려고 아래쪽으로 간다.
어차피 이쪽으로 올 것이라 산정무한 님과 나 둘이서 헤드램프 심지 돋우며 개척하여 나아간
다. 개울 건너고 둑길을 돌아 무덤 지나고 가파른 산기슭을 오른다. 도드라지고 잡목이 성긴
데가 길일 것이라 짐작하고 연신 더킹모션해가며 엷은 능선의 마루금을 붙든다. 산정무한 님
이 일행들 오기를 기다렸다가 가자고 한다. 그들은 어쩌면 다른 능선을 잡아 우리를 앞질러
갔을지도 모를 일이니 어서 가자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은 우리 차를 타고 추령으로
이동하여 탄탄대로(?)를 따라 오르는 중이었다.
기왕의 길은 흔적이 없이 햇낙엽에 묻혔다. 가파른 오르막이기도 하여 낙엽이 아주 미끄럽
다. 아예 낙엽을 쓸어 발 디딜 데를 마련해가며 오른다. 새벽 찬 기운을 내 거친 숨으로 밀어
낸다. 가파름이 잠시 주춤한 360m봉에 오르고, 산정무한 님이 지도를 보려고 휴대전화를 꺼
내려는데 없다고 한다. 아까 된통 미끄러져 엎어질 때 흘렸나 보다.
함께 찾으러 간다. 지나온 길을 샅샅이 살피며 간다. 발소리 숨소리 죽여 가며 내 휴대전화의
수신음을 찾는다. 엎어진 곳이 여기던가 저기던가 헷갈리기까지 한다. 불과 200m 거리인데
무척 멀게 느껴진다. 어렵사리 희미하게 들리는 수신음을 포착하고 낙엽더미 속에서 갤럭시
에스나인을 건져냈다. 이때의 안도감과 기쁨은 각별한 법이다. 산정무한 님은 밤새도록 지키
고 있다가 밝아지면 낙엽을 한 장 한 장 걷어내서라도 기어이 찾으려고 했다. 물론 토함산 산
행은 조지는 것이고.
다시 박차 오르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헤드램프에 비춘 나뭇가지의 길쭉한 마지막 잎새 한
장을 선답의 산행표지기로 오인하여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지도 정치하여 가느다란 능선을
추려낸다. 야트막한 안부를 지나고 줄곧 곧추선 오르막이다. 이 곳은 잡목을 부둥켜안고 돌
고 저 곳은 갈지자로 틀어 올라야지 하면 선답도 그렇게 갔다.
억새 숲 지나고 산신단에 올라선다. 오른쪽에 넓게 자리 잡은 무덤은 아무 가릴 게 없는 조망
처다. 황룡동 마을의 가로등 불빛이 성단으로 보인다. 오른쪽 골짜기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우리 길도 풀린다. 잘난 길은 사면을 왼쪽으로 길게 돌아 오른다. 맘 같아서는 냅다 직등하고
싶은데 꾹꾹 눌러 참는다. 추령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는 대로를 간다. 일행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토함산 정상이다.
07시쯤 되어야 해가 뜰 것이니 적어도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무척 긴 시간이다. 석굴암에서
부처님의 눈으로 일출을 보자는 것을 우기고 우겨 여기서 기다리기로 한다. 넙죽이 오뎅탕
끓여 한속을 달랜다. 토함산에서 조망은 정상 표지석 앞쪽보다는 그 뒤쪽의 산불감시초소 망
루가 좋다. 동녘 반공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나니 그곳이 바다인지 해무인지 분간하지 못
하겠다.
근경의 산들조차 희끄무레한 것은 미세먼지 때문이다. 토함산만이 달덩이처럼 둥두렷한 모
습인 것은 아니다. 토함산을 옹위하는 주변의 산들이 다 그렇다. 마치 천년의 세월을 격한 왕
들의 무덤과 같다.
“흡사 신라인의 이상을 눈앞에 그려 보여주듯이, 달덩이처럼 둥두렷한 모습으로 서라벌 분지
를 거치른 동해에서부터 보호하여 감싸안고 있는 산이 토함산(745m)이다. 줄기는 태백산맥
의 남단, 영양의 일월산에서 청송의 주왕산, 영일의 내연산으로 이어오는 잔맥이 여기 이르
러 동해로 바짝 붙어 흐르면서 남으로 삼태봉(659m)과 무룡산(435m)을 거쳐 울산만 코끝
의 방어진에 가서 무릎을 꿇는다.”(김장호, 『韓國名山記』)
일출. 부상에서 튕겨져 나오는 듯 솟아오른다. 삼라만상이 숨을 멈추고 그 장려함을 엄숙히
맞이한다. 대간거사 님은 토함산(吐含山)의 ‘토함’을 ‘머금은 해를 토해낸다’로 풀이한다. 일
출의 모습을 목도하니 과연 그렇기도 하다.
3. 토함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일출을 기다리는 중
4. 토함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보이는 만호봉(漫湖峰, 522.2m)
5. 가운데가 함월산(494.2m)
6. 일출
7. 토함산 정상에서
하산. 길은 대로다. 우르르 내닫는다. 능선 마루 비켜 있는 대로 따라 내린다. 한참 내리다 보
니 성화 채화단이 있다는 나지막한 봉우리도 돌아 넘어버렸다. 뒤돌아 오른다. 바위 위에 성
화를 채화하는 촛대 모양의 석물이 있다. 다시 줄달음한다. 대로는 산허리 오른쪽으로 돌아
가고 우리는 석굴암 쪽 지능선을 잡는다. 급전직하로 쏟아져 내리기 직전 평평한 터에 ‘香
嶺’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뒤에 향령의 유래를 새겼다.
『삼국유사』 권5 「효선(孝善)」 편의 ‘대성이 전생과 이생의 부모에게 효도하다(大城孝二
世父母 神文代)’에 나오는 대목이다.
“장차 石佛을 조각하려하여 한 큰 돌을 다듬어 석굴뚜껑을 만들다가 돌이 세 토막으로 갈라
졌다. 大成이 분하여 어렴풋이 졸았더니 밤중에 天神이 내려와 만들어놓고 돌아갔다. 大成이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남쪽 산마루에 올라 향나무를 태워 天神에게 공양하였다 이로써
이곳을 香嶺이라고 하였다.”
(將彫石佛也, 欲鍊一大石爲龕盖, 石忽三裂. 憤恚而假寐, 夜中天神來降, 畢造而還. <城>方枕
起, 走跋南嶺爇木, 以供天神. 故名其地爲<香嶺>)
일행 선두는 석굴암으로 질러가고자 가파른 협곡을 쏟아져 내려 산모롱이에 다다르고 하필
불국사 경내 관리인과 정통으로 맞닥뜨렸다. 입장료(1인당 5,000원이다)를 내지 않고 월담
하여 석굴암을 관람하려는 것은 불가하다고 막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후미인 나와 향상
님은 반대편 사면을 내려 그들과는 다른 일행인양 하여 석굴암 부처님을 알현하러 간다.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미동하지 않을 것 같은 단아한 자세, 세속의 온갖 번뇌를 잊게 하는,
마침내 생과 사를 극복한 얼굴, 이 표정은 천년 세월을 두고 숱한 세인을 감복케 하였다. 공
수하고 고개 들어 그윽이 바라보니 암서 조긍섭(巖棲 曺兢燮, 1873~1933)이 읊은 「석굴암
(石窟庵)」이 진실로 그럴 듯하다.
千億如來相 천억 여래의 상이란
元來一切空 원래 일체가 공이라
形成苦不壞 형체 이룬 것 참으로 안 무너지니
枉女費人工 너 때문에 사람들 공을 허비했네
우리나라의 마조(馬祖)로 추앙 받는 고승 경허(鏡虛, 1846∼1912) 선사조차 ‘고요히 있더
라도 이미 틀린 일’이라 하였으니 나 같은 범인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석굴암 아래 수광전
(壽光殿)에 선사의 게송(偈頌)을 주련으로 걸었다.
古路非動容 옛길은 찡끗하지도 않음이여
悄然事已違 고요히 있더라도 이미 틀린 일
少林門下事 소림 문하의 일에
不意生是非 뜻밖에 시비가 생겼네
불국사 가는 길. 산굽이 돌고 돈다.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이라면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로 다녀
온 길이다. 그것도 석굴암에서 일출을 보자하고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갔던 어둑한 길이었
다. 이렇게 멀었던가, 새삼스레 의문이 든다. 산굽이 돌기가 그치자 대로의 숲 터널을 간다.
피안으로 가는 길인 듯 불국 만추의 길은 고즈넉하고 한편 화려하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 한산한 불국사 주차장 한쪽에 둘러앉아 아침 요기한다. 비록 주위에 보
는 이가 없지만 불국에서 부월초(阜越草)와 곡차라고 눈가림하여 닭강정을 펼쳐놓고 연태를
돌리자니 깨달은 바가 전혀 없다.
8. 석굴암 가는 길의 향령 표지석
9. 석굴암을 질러가려고 골짜기를 내려갔다
10. 석굴암과 불국사를 오가는 길
▶ 경주남산 금오봉(金鰲峰, △467.9m)
경주남산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경주남산을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횡종무진 누빌 것이
다. 동남산 들머리인 탑말마을로 간다. 서출지(書出池)와 이요당 정자를 흘깃 보고 금오산
관음기도 도량이라는 무량사를 지나 개울 옆 고샅길을 간다. 하늘 가린 시누대 숲속 길을 오
르고 잔솔밭 바윗길을 간다. 지능선길이 모여 번듯하더니 이정표가 안내한다.
┫자 갈림길. 삼층석탑이 왼쪽 70m 아래에 있다. 다니러간다. 뚝 떨어져 내린다. 국사곡 제4
사지. 절집은 간 곳이 없고 석탑만이 우뚝하다. 일견하여 육중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이 드는
석탑이다. 이곳은 전망이 탁 트이는 명당이었다. 첩첩산중 경주남산의 양웅인 금오봉과 고위
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대로 탑돌이하고서 뒤돌아간다.
다시 능선에 들어 경주하듯이 줄달음한다. 283m봉을 넘고 너른 임도와 만난다. 임도 따라간
다. 임도 바로 옆 상사바위 전망대에 들려 흐릿한 원경 속 고위봉을 가늠한다. 쉬어가기 좋은
곳마다 음주 등 무질서한 행위를 삼가라고 큰 글씨의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마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술은커녕 물도 안 마시고 막 간다.
헬기장 지나고 잠깐 오르면 금오봉 턱밑이다. 테크계단을 올라 주릉이 이르고 왼쪽으로 50m
쯤 더 가면 널찍한 공터의 금오봉 정상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정상 표지석을 배경
한 기념사진 찍느라 표지석을 온전히 보기가 힘들다. 표지석의 ‘金鰲山’ 글자가 멋지다. 표지
석 뒷면에는 서예가인 남령 최병익(南嶺 崔炳翼)이 짓고 쓴 한시 「詠金鰲山(금오산을 노래
함)」을 새겼다.
高高靈靈金鰲山 높고도 신령스러운 금오산이여
千歲王都雄輝抱 천년왕도 웅혼한 광채 품고 있구나
待人歷年復千載 주인 기다리며 보낸 세월 다시 천년 되었으니
今日誰在能受氣 오늘 누가 있어 능히 이 기운 받을런가?
하산. 삼릉을 향한다. 금오봉을 오르기가 삼릉이 가장 가까운지 오가는 남녀노소 등산객이
꽤 많다. 대부분 간편한 차림이다. 금송정이 있었다는 암봉을 돌아내리면 그 암봉 남벽에 삼
릉계곡에서 가장 큰 불상인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들어가지 못하게 금줄을 둘렀지만 살
짝 넘고 돌계단을 숨 가쁘게 오른다. 석가여래좌상. 햇빛에 눈이 부신 듯 반쯤 감았다. 연꽃
대좌에 결가부좌한 근엄한(?) 모습이다.
가파른 내리막은 상선암 절집에서 주춤하고부터 한풀 꺾인다. 돌길이다. 깊고 긴 삼릉계곡
여러 곳의 석벽에 마애불이 있다. 절터는 11개소이고 불상은 15구가 있다고 한다. 길에서 가
까운 불상에는 알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기꺼이 양보해준다. 아무리 그러한들 삼릉계곡의
명물은 삼릉 주변의 노송 숲이다. 저마다 승천하려고 용틀임하는 모습은 언제 어느 때 보아
도 장관이다.
농로 따라 노송 숲을 빠져나와서 차도 건너면 삼릉 주차장이다. 따스한 햇볕 받으며 둘러앉
아 점심밥 먹는다. 천고오비(天高吾肥)의 계절인 줄 알고 먹고 마신다. 차장 관리인은 버너
불 피워 라면 끓이는 우리가 불안했는지 다가오더니 뒷정리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한다. 대간
거사 님의 공손한 대답, 우리가 오기 전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해놓고 가리다.
11. 탑말 서출지 주변, 오른쪽 멀리가 금오봉이다
12. 탑말 고샅길에서
13. 경주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14. 왼쪽 멀리가 고위봉, 상사바위 전망대에서
15. 왼쪽 멀리는 고위봉, 맨 오른쪽은 금오봉
16. 금오봉 정상, 정상 표지석의 글씨가 멋지다
17. 금송정 가는 길의 전망대에서
18.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19.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20. 삼릉 노송 숲
21. 삼릉 노송 숲
22. 삼릉 노송 숲
23. 삼릉 노송 숲
24. 삼릉 노송
▶ 고위봉(高位峰, 금오산, △495.1m)
3부 산행. 경주남산을 북에서 남으로 간다. 이번에는 삼릉에서 가까운 포석정이 들머리다.
포석정 주차장 입구에서 차에 내려 농로를 약간 걸으면 산속 소로가 이어진다. 골짜기를 거
슬러 오른다. 우리가 계류 반석에서 한 차례 휴식해야 하는 되게 긴 골짜기다. 포석정과 포석
정지 원수인 계류는 재잘대며 흐른다. 계류를 벗어나 사면을 오르고 절집 같지 아니한 부흥
사를 지날 때였다.
이 고장의 홀로 등산객인 여성분이 오층석탑을 보려면 길 따라 가지 말고 사면을 곧장 오르
라고 한다. 하여 부득이 금줄을 넘는다. 한 피치 가파르게 오르면 숭숭 솟아난 바위 한 가운
데 날렵한 오층석탑이 경주 들판을 굽어보고 그 옆은 절터다. 오층석탑 기대 아래 바위들이
영락없는 연꽃의 모양인데 함께 어울려 보기에 좋다.
가파른 오르막은 계속된다. 구슬땀 한 줄금 쏟고 주릉이 가까워서야 하늘이 열리는 너른 반
석지대다. 굳이 금오정 정자에 오르지 않아도 주변이 다 경점이다. 소나무 그늘에 들어 휴식
한다. 아까 탑말에서 오를 때 만났던 임도와 다시 만나고 함께 간다. 상사바위 전망대에 또
들려 그새 경치가 달라졌는지 들여다본다. 미세먼지가 여전히 심하다.
이번에는 금오봉은 오르지 않는다. 임도는 금오봉 아래 고갯마루를 넘어 산굽이굽이 돌아간
다. 삼화령(三花領) 돌아갈 때 골 건너가 드문 가경이다. 삼화령은 고위봉, 금오봉과 두 봉우
리 사이인 이 봉우리를 말한다. 임도는 주릉 안부에서 왼쪽 산허리 돌아 통일전주차장(2.7k
m)으로 가고 우리는 직진하여 소로의 산길로 고위봉(2.5km)을 향한다.
나지막한 봉우리 넘고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이영재다. 다시 산을 간다. 가파른 오르
막길이다. 바윗길도 지난다. 멀리서 준봉이던 393.4m봉이 가까이서는 더욱 그렇다. 헬기가
칠불암 위쪽 암릉에서 조난객 구조 훈련한다고 요란하게 푸다닥거린다. 그 훈련이 끝나니 천
지가 조용하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그만큼 오르고 ┫자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은 보물이
라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과 국보라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있다.
알현하러 간다. 더구나 보물과 국보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오른쪽 사면을 약간 내린
산중턱 석벽에 있고,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신선암에서 뒤돌아 올라 바윗길을 데크계단으로
한참 내려가야 한다. 땀 뺀다. 칠불이나 알현했으니 내 발걸음은 넘치는 희열로 가벼워야 할
법한데 그와는 정반대로 무겁다 못해 쥐가 날 지경이다. 불국의 길은 때로 멀고도 험한 법.
고위봉 가는 길. 사뭇 부드럽다. 야트막한 안부인 백운재를 지나고 0.5km를 완만하게 오르면
고위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금오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경주남산의 최고봉이
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경주 27, 1988 재설. 고위봉 서릉 쪽으로 살짝 다가가면 멋있
는 조망이 펼쳐진다. 금오봉의 당찬 모습이며, 이무기능선의 꿈틀대는 장중한 모습이며, 형
산강 너머로는 금실산, 오리발산, 보갓산, 성부산, 탈바꿈산의 둥실한 모습이 왕들의 무덤으
로 보인다.
뚝 떨어져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인 열반재다. 황발봉(361.6m)은 그만 놓아준다. 오른쪽
사면을 쭉쭉 내려 관음사를 지나고 울창한 소나무 숲속 차도를 간다. 이윽고 용장(茸長)마을
에 이르고 불국여행을 마치려고 하니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이 설잠(雪岑)시절에 이곳 금오산 아래 용장사에 머물러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저술하
였다는데 그 흔적을 찾아보지 못한 것이다.
매산 홍직필(梅山 洪直弼, 1776~1852)이 그곳을 방문하여 남긴 시를 읊는 것으로 대신
한다.
金鰲山北汶川西 금오산 북쪽 문천의 서쪽
淸士祠堂卽古棲 깨끗한 선비의 사당은 바로 예전에 살던 곳이라오
斷髮形傳吳伯仲 머리 자른 모습은 오나라의 태백과 중옹을 전하고
採薇心苦殷夷齊 고사리 캐먹던 마음은 은나라 백이와 숙제와 같이 괴로웠네
剛風振谷松能勁 거센 바람 골짝을 진동해도 소나무는 꿋꿋하고
嚴雪封山竹不迷 큰 눈 산을 덮어도 대나무는 변치 않는다오
更有寒梅餘獨樹 다시 차가운 매화가 한 그루 남아 있어
夜來孤月影凄凄 밤이 되자 외로운 달그림자 처량하구나
25. 부흥사 근처 오층석탑
26. 부흥사 근처 오층석탑, 경주 들판을 굽어보고 있다
27. 금오봉 가는 길
28. 삼화령 아래 임도에서 전망, 왼쪽이 고위봉, 오른쪽이 황발봉
29. 앞은 태봉능선의 태봉(355m)
30. 암릉 뒤쪽에 신선암과 칠불암이 있다
31.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32.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33. 형산강 건너편 산들
34. 고위봉 정상에서
35. 앞은 고위봉 이무기능선, 뒤는 금오봉
36. 형산강 건너편 산들
37. 관음사 지나 용장마을 가는 길
첫댓글 경주는 모두에게 '마음의 고향'이겠죠?
옛 추억을 꺼내 다시 재정립하는 시간이었겠습니다.어째든 시끌벅적한 오지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제 깨닫고 자숙하여 모두들 조용하오니 부디 돌아오시길.
@악수 행님은
오지의 모범이시자 등대이시니 자숙하실 필요 없습니다.늘 오늘처럼 오지에서 건재하십시요.
늘 좋았던 것들이였는데 갑자기
하나의 느낌(도떼기시장에서 돌아온 느낌:
어디까지나 제 문제)이 제 마음에서 일어나서요.
제가 원하는 것을 보고 찾은 것입니다.
가끔은 떠들고 싶을때는 언제나 가겠습니다.
천년고도에 다녀오니 산행기에서도 천년의 향기가 나는 듯. 이번 산행에서 재미있는 부분이라면 하필이면 관리인 정면으로 내려간 것, 잘한 부분이라면 토함산 정상에서 일출을 본 게 되겠네요. 그래야 과연 진정한 토함산이라 할 수 있을 듯.
형님의 동행으로 그 어두운 낙엽 속에서 한방에 기적처럼 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심 홀로 날밝기 기다렸다가 낙엽 뒤지며 하산. 오전 산행 접을 생각이었는데. .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번 산행의 백미는 정상석 앞에서 개떨듯. 넙쭉이와 함께한 일출이 모두의 수확이라 공감 할 것입니다.
그런데 2번 사진 고도표 모양새가 어찌 거시기 합니다. 내 눈에만 그런가!
한시가 우리가 둘러본 곳을 소재해서 그런지 느낌이 착착 붙네요. 수광전 주련은 무슨 뜻인가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갔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토함산에서의 하산길은 막바지 단풍이 멋드러진 길이었습니다...천년 고도라 그런지 토요산행중 가장 많은 인파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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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