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대로, 이곳은 내게도 개뼈다귀 같은 고향이다. 너도, 너의 아버지도, 그리고 시진 사람 대부분이 다 마찬가지야. 털고 일어서 봤자 미련이라곤 없는 누더기 같은 사람들이거든. 그렇지만 말이다, 남한테 천대받고 버림받는 땅이라고 그냥 내던져도 되겠니? 천대받는 아버지라고, 천대받는 자신이라고 그냥 팽개쳐도 괜찮겠어? 나는,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개뼈다귀 같은 나, 너, 우리, 그래그래, 시진읍은 말이야, 곧 무시받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물러날 수 없다 그 말이다⋯”[소설 ‘시진읍’ 중에서]
1978년 초간한 작가 박범신의 중단편집 ‘토끼와 잠수함’에 실린 소설 ‘시진읍’은 문학 작품에 투영된 우리 근대화의 이면을 아프게 그려냈다. 소설의 무대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충남 논산 강경읍. 조선왕조 이래 600년간 충청과 호남의 교역 중심지로 조선 3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던 강경이 1889년 군산항 개항,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으로 쇠락하기 시작해 해방 후에는 군청을 비롯한 강경 주재 공공기관들이 야반도주하듯 논산으로 옮겨가던 시절이 배경이다. 마지막 남은 경찰서를 지키기 위한 강경 토착민들의 투쟁을 배경으로 전개된 이 소설은 배우 최진실의 TV드라마 데뷔작으로도 만들어졌다.
그렇게 쇠락하던 강경읍은 2000년대 들어 활기를 띤 지방축제 붐에 힘입어 젓갈축제로 되살아났다. 젓갈처럼 곰삭은 근대문화의 유산들이 100년간의 침체기 덕분에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엄청난 관광 자산이 됐다. 전화위복이다. 대전광역시가 확장되고 계룡시, 세종시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대전권 교외 전원주택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강경이 지난 100여년간 겪었던 부침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땅은 결코 무생물이 아니라 그 옛날 강경포구를 먹여 살렸던 서해의 싱싱한 활어처럼 펄떡 살아 있는 생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국의 신개발지를 답사하러 다니면서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모두가 버린 땅이 보란 듯이 되살아나는 현장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땅에 대한 투자는 최소한 한 세대(30년)는 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터는 대물림을 생각하고 골라야 한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긴 두 세대를 관통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필자의 체험이 교과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생활 초년시절에 삼형제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약 1000평의 임야를 사둔 적이 있다. 30여년전 일이다. 두세달치 월급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먼지 풀풀 나는 새마을도로였지만, 길에 붙어 있고 앞에 개울이 있는 남향받이 땅이라는 것이 구입을 결정한 단순한 이유였다. 나중에 삼형제가 모두 은퇴하면 같이 모여 살만한 땅으로 안성맞춤이란 생각이었다. 애당초 시세차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지만 땅을 사둔 지 10년이 지나도 땅값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는 가족들의 원망도 꽤 받았다.
그렇게 애물단지 취급받던 땅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근처에 리조트가 개발되고 새마을도로는 2차로 포장도로로 말끔하게 정비됐다. 30년 세월의 기다림은 약 30배의 땅값으로 위로받았지만, 어차피 노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지라 돈으로 계산할 마음도 없다. ‘긴 호흡으로 투자하라’고 밥 먹듯이 얘기했던 나 자신의 말을 지킨 물증으로 더 애착이 갈 뿐이다.
서울 명동에서 출발한 시내버스 종점이 말죽거리(양재동)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의 얘기를 더 보탠다. 그 시절 명동에 본사가 있던 어떤 대기업의 입사동기 열댓명이 월급날이면 월급봉투를 들고-그 시절에는 통장 입금이 아니라 누런 봉투에 월급을 현금으로 담아 주었다-명동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무조건 종점까지 회식을 하러 갔다. 종점 근처 허름한 식당에 자리 잡으면 월급의 10%를 판돈으로 걸어 놓고 한 사람이 판돈을 쓸어갈 때까지 고스톱을 쳤다. 그날의 승자는 회식비를 지불하고 남는 돈으로 근처 땅을 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같이 간 동료들의 훈수와 평가, 식당 주인의 귀띔이 구매 기준이었다. 월급명세서라는게 없던 시절이었으니 집에는 월급을 10% 깎아서 얘기하고 저지른 범행(?)이었다. 그렇게 사놓은 땅이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요즘 세상에 그런 우화같은 일이 가능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세월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땅, 즉 집터를 장만하는 것은 어쩌면 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이 품고 있는 세월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끈기있는 사람은 앞으로 품을 세월을 사는 것이고 성질 급한 사람은 이미 품은 세월을 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세월을 바라보는 직관은 필요하다.
집나간 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 명절이다. ‘개뼈다귀 같은 고향’이라고 외면했던 내 고향에 세월을 기다리는 숨은 보물단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집터를 찾지 말고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좋은 집터를 장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발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그곳에 심어야 하는 법,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