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의 맛집 소개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고, 일류 셰프들의 현란한 요리 대결과 소박한 집밥 열풍이 여전한 가운데, 이제는 들에서 직접 먹거리를 수확하고 채집해서 먹는 이른바 와일드푸드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 신토불이, 웰빙, 유기농에 이어 먹거리 트렌드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다. 손톱만 한 올갱이 하나로 10여 년간 마을축제를 일구며 방문객들에게 시원한 체험과 푸근한 추억을 선사하는 괴산 둔율올갱이마을에서 와일드푸드를 체험한다.
올갱이마을 앞을 흐르는 달천. 전국에서 유일하게 올갱이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먹으려면 먼저 수확을 해야지!
그 이름부터 오지의 느낌 충만한 곳 괴산! 하지만 서울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괴산은 조령, 그러니까 새재를 넘어 영남으로 들어가는 충청도의 마지막 관문이다. '둔율'이라는 이 마을의 이름은 유서가 깊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이자 근거지였던 괴산-충주 지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수시로 그 주인이 바뀌었는데, 삼국통일 후에 이곳에 밤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그 모습이 마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둔율'이라고 했다. 삼국통일 때 유래한 마을 이름이 천년을 넘게 이어져오는 것이다.
[왼쪽/오른쪽]옥수수밭으로 투입 / "크고 실한 옥수수를 골라 비틀어서 잡아당기면 돼요." [왼쪽/오른쪽]"저도 옥수수 한 개 땄어요." / 체험 10분이면 한 봉지를 충분히 딸 수 있다.
오늘 체험 가족의 미션은 올갱이마을에서 와일드푸드 체험하기! 가족은 SBS-TV <정글의 법칙>의 출연자들처럼 우선 주변의 먹거리 채집과 수확에 나선다. 7월의 올갱이마을 수확 품종은 옥수수. 먼저 다녀간 가족들에 의해 옥수수밭은 이미 2/3가 수확된 상태였지만, 다행히 밭 끝자락에 늦깎이 체험족을 위한 옥수수가 남아 있다. 수확의 기쁨과 미션 성공을 위하여 뙤약볕을 마다 않고 옥수수밭으로 들어간다. 옥수수 수확의 핵심 포인트는 터프함이다. 옥수수는 한해살이 식물이니 옥수수 줄기가 다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크고 실한 옥수수를 골라 비틀고 잡아당겨서 따기만 하면 된다. 여덟 살, 네 살짜리 꼬마 자매도 10분 만에 수확 봉지를 가득 채운다. 뙤약볕을 무릅쓰고 밭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억센 옥수수 잎에 피부가 쓸려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수확 체험은 계절 체험이다. 옥수수 따기는 7월 체험이고, 6월에는 감자 캐기, 8월에는 고추 따기를 할 수 있다. 가을에는 대추 따기와 벼 베기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세심한 주부들에 한해 인삼체험도 할 수 있다.
올갱이 잡기와 물놀이를 동시에
[왼쪽/오른쪽]올갱이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잡는 게 쉽지 않다. / 돌을 들어 올리면 바닥에 올갱이가 붙어 있다. "요게 올갱이에요. 깨끗한 물에 살고 영양분이 많죠."
옥수수 수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이 마을의 테마이자 자랑인 올갱이를 잡으러 마을 앞 달천으로 나간다. 달천은 남한강의 지류로 1급수를 자랑한다. 괴산 사람들은 괴강이라 부른다. '올갱이, 그까짓 거 뭐 대충 강바닥에 있는 것 주워오면 되지 않겠어?' 어림없는 소리다. 올갱이 잡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큼지막한 수경 밑으로 강바닥을 샅샅이 훑어보지만 올갱이님 뵙기가 쉽지 않다. '아니, 올갱이마을이라면서?' 마음속에서 마을 이름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지만, 올갱이가 잡히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갱이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밤에는 바위 위에 올라와 있는 올갱이를 쓸어 담을 수 있지만, 낮에는 돌 밑이나 강바닥 속에 들어가 있어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저녁밥상에서 구수한 올갱이국과 쫄깃한 올갱이전을 맛보려면 올갱이를 잡아야 한다. '꼭 잡고야 말리라!' 두 눈을 부릅뜨고 수경 아래로 다시 시선을 고정한다. 몇 개의 돌을 들췄을까? 심봤다! 드디어 돌바닥에 붙어 있는 올갱이 하나를 잡았다. 귀하신 몸, 낮 올갱이 되시겠다. 올갱이 담는 바구니가 가벼워 민망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라. 그런 당신을 위해 어젯밤 마을 분들이 올갱이를 미리 섭외해 냉장고에 잘 모셔 두었다.
달천의 풍경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시골 하천의 모습 그대로다. 멀리 산 능선이 그림처럼 흐르고, 상류 쪽에는 낮은 보가 있어 보 위의 물은 잔잔한 호수와 같다. 보 밑으로 떨어진 물은 상쾌한 소리를 내며 하류로 흐르고 하류에는 마을로 들어오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상류 어디쯤엔가 돌다리가 하나 있을 법한데, 달천이 그렇게 작은 하천은 아니다. 다리가 물에 잠기면 나룻배를 이용해 오가야 하고, 마을에서 1km정도 떨어진 상류에는 비록 작은 규모지만 1957년 우리나라 기술로 처음 건설한 수력발전소인 괴산수력발전소가 있다. 제주 올레 부럽지 않은 산막이옛길도 거기서 시작된다.
달천은 물이 얕고 바닥이 평평해 아이들과 물장구치며 놀기에 적합하다.
달천은 어린 자녀들과 물놀이하기에 좋다. 깨끗한 1급수 수질은 기본, 큰 바위가 있거나 수심이 깊지 않고 강바닥도 평평하다. 천변 쪽 수심은 아이들 무릎 정도다. 보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의 수심은 어른 허리 정도이니 튜브를 타고 놀기에도 적당하다. 그리고 사람도 붐비지 않는다. 안목 높은 캠핑객 두어 가족이 천변에 텐트를 치고 극성수기의 달천을 다 가졌다. 올갱이 잡기는 잠시 미루고, 아이들과 물장구치며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본다.
먹어볼까? 대학찰옥수수, 올갱이국, 올갱이전
[왼쪽/오른쪽]괴산 대학찰옥수수 / "뜨거워도 맛있어요~."
물놀이를 한참 하고 마을로 들어온다. 마을회관 앞에 샤워시설도 완비되어 있으니 물놀이 후 여벌옷으로 갈아입고 체험관에서 오늘의 수확물을 맛본다. 김이 모락모락,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대학찰옥수수가 나온다. 고소하면서도 대학찰옥수수 특유의 단내가 이미 시각과 후각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 유명한 '대학찰옥수수'의 고향이 이곳 괴산이라는 건 아시는지? 충남대학교 최호봉 교수가 괴산군 장연면에서 미국 옥수수를 찰진 맛으로 개량한 것이 대학찰옥수수다. '대학'이라는 거창한 말은 그래서 붙었다. 대학찰옥수수는 외국산 초당옥수수에 비하면 단맛은 덜하지만, 찰옥수수 고유의 쫀득한 식감은 단연 최고다. 옥수수 잎에 손을 쓸려가며 직접 따온 옥수수를 쪄 먹는 이 맛! 와일드푸드의 행복과 건강이 여기에 있다. 올갱이마을의 7월 수확 체험은 옥수수, 8월부터는 아삭아삭 싱싱한 고추가 체험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두부 만들기와 인절미 만들기도 인기가 많다. 특히 "둔율마을의 콩으로 직접 만드는 두부의 맛은 다른 두부와 비교할 수 없다"는 올갱이마을 박종숙 사무장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왼쪽/오른쪽]소박하지만 건강한 올갱이 시골밥상 / 올갱이국엄마랑 함께 맛있는 올갱이전도 만들어보아요.쫄깃한 올갱이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올갱이전 올갱이 삶은 육수와 데친 올갱이를 넣어 발효시킨 올갱이청국장
이제 오늘의 메인! '해장국의 왕' 올갱이국을 먹을 차례다. 고단백 식품 올갱이는 '물속의 웅담'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소가 풍부하다. 간에 특효라고 하는데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따르면 "올갱이는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리고 눈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고, 숙취 해소와 당뇨, 변비에 좋다"고 한다. 구수한 된장과 보드라운 아욱, 쫄깃한 식감의 올갱이가 어우러진 올갱이국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다. 그 구수한 맛에 있어서는 국제적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어디 미소된장국에 비교하랴! 구수한 올갱이국이 입에 맞았다면, 올갱이를 이용한 가공식품 '올갱이 청국장'은 어떤가? 칼슘이 풍부한 올갱이 삶은 육수와 데친 올갱이를 넣어 청국장으로 발효시킨 것이다. 콩의 더운 성질을 올갱이가 균형을 맞춘 건강식품이다. 부침반죽에 데친 올갱이를 듬뿍 넣어 부쳐낸 올갱이전도 일품이다. 올갱이를 데치고 이쑤시개로 올갱이 속살을 뽑는 정성이 더해져서 그런지 전의 맛이 일품이다. 취향에 따라 반죽에 넣지 않고 고명으로 올려서 부쳐도 좋다.
둔율마을이 '올갱이마을'로 자리매김한 것은 2007년 정보화마을 사업 때부터다. 올갱이마을로 다시 태어난 지 10주년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면, '올갱이'라는 마을 콘셉트와 네이밍은 실로 신의 한 수였다. 사실 올갱이는 1급수의 맑은 강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잡을 수 있는 '물고둥' 중 하나다.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인 '올갱이'를 마을의 콘셉트로 삼으면서 마을의 청정 이미지를 부각하고 차별화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올갱이'를 콘셉트로 축제와 체험활동을 펼치는 곳은 이곳 괴산 둔율올갱이마을뿐이다.
여행정보
제9회 둔율올갱이축제
기간 : 2016년 7월 29~31일
장소 : 괴산군 칠성면 둔율강변 일원(올갱이마을 입구)
주요행사 : 황금올갱이를 잡아라, 올갱이전 만들기, 올갱이 까먹기대회, 메기 잡아 구워먹기 체험, 반딧불이 체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