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 이야기] 歸順(귀순)
허신 <설문해자>서 '歸=追+婦'… 시집가는 여인 의미
10월 2일 밤, 북한군 병사 한 명이 군사분계선 철책을 넘어 강원도 22사단으로 귀순했다. 귀순(歸順)은 적에게 귀의하여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순은 우리 쪽 입장에선 별 나쁠 게 없다. 그런데 귀순 과정에서 우리 군의 여러 약점과 허위가 드러나 軍은 불신과 함께 매우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했다.
歸(돌아갈 귀)는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설명한 것처럼 본래 여인이 시집가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였다. 복잡하게 보이는 歸(귀)자는 왼쪽이 追(쫓을, 뒤따를 추)자이고 오른쪽은 婦(며느리, 아내 부)자의 생략형이다.
고대의 혼인 풍습은 신랑이 말을 타고 저녁 무렵 신부 집에 도착을 하는 것이었다. 신부 집에 당도한 신랑은 며칠 또는 몇 년을 신부 집에서 보낸다. 이른바 시한부 데릴사위다. 그렇게 일정 기일이 지나면 아내(婦)는 비로소 지아비를 좇아(追) 여인의 진정한 본가인 시집으로 갔다. 시댁에로의 도착은 남편 입장에선 '돌아옴'이요, 아내 입장에선 '돌아감'이다. 이런 까닭에 歸는 '돌아오다, 돌아가다'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우리 군에 귀순한 왜군을 조정에선 '투항한 왜군'의 준말인 '항왜(降倭)'라 불렀다. 수많은 항왜들은 때론 골칫거리이기도 했지만, 역사상 잊을 수 없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1597년 지금 이맘때쯤 명량해전이 벌어졌다. 적장은 휘하의 배 두 척을 지휘하여 거제현령 안위의 배에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안위의 배를 구하기 위해 적선을 향해 포탄을 빗발치듯 쏘아댔다. 적선은 파괴됐고 그 시체들은 바다 위에 즐비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의 옆에 있던 귀순병 '준사(俊沙)'가 떠다니는 시체들을 살피다가 "저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馬多時)'다"고 소리쳤다. 갈고리로 잡아당겨 끌어올린 시체를 보고 준사는 펄쩍펄쩍 뛰며, "마다시다. 마다시다"하고 외쳐댔다. 이에 이순신은 적장을 토막으로 잘라 내거니 적의 사기가 크게 꺾였고 이는 급속한 왜군의 패퇴로 이어졌다.
이번에 22사단 최전방 GOP 소초에 북의 특수부대가 아닌 귀순병이 온 것은 한편으론 천행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군은 명량해전 시 이순신 장군의 "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말씀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거듭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