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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우리가 평지로 만들어야 할 큰 산은 무엇인가?/ 스가랴 4: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BjR20iIUBBA
본문의 내용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의 일부입니다. 스가랴는 환상 중에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를 봤습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이때 천사가 그 유명한 스가랴 4:6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리고 본문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이어서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했습니다. 9절입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스가랴가 본 일곱 순금 등잔대는 온 세상에 참 빛을 주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10절에서는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라고 했는데, 요한계시록 4:5에 보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했습니다. 등불 일곱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이 일곱 분이라는 말이 아니라 완전하신 성령을 말한 것입니다.
스가랴 당시 스룹바벨이 성전 재건을 하려고 했습니다. 스룹바벨은 유다 왕위의 계승자였습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537년경 고레스의 허락 하에 유대인들의 지도자로서 최초의 귀환하는 포로 대열을 인도하였습니다. 그가 포로에서 돌아오고 1년 후에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으나 기초가 완성된 직후에 곧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16년 후인 주전 520년에 학개와 스가랴가 설교를 통해서 성전을 재건할 것을 촉구하였고, 스룹바벨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다시 성전 재건을 시작하여 주전 515년 초엽에 완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의 이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성전을 건축하는데 방해 요소가 많았는데,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능력으로는 극복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성전 재건에 대한 반대를 큰 산으로 묘사습니다. 여기서 ‘큰 산’을 몇 가지 의미로 봅니다. ➀과거 성전재건을 실패했던 역사들 ➁성전 재건을 작은 일로 치부해 버리는 영적 망각 ➂그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 제국 ➃성전 건축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입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큰 문제였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에 보면 산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➀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➁피난처입니다. 소돔이 멸망할 때 천사들은 롯에게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➂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산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합니다.
그 당시 성전을 건축할 때 여러 가지 방해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큰 산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많은 방해요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큰 산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스룹바벨 시절에 성전을 건축하다가 중단 된 것처럼 많은 성도들의 신앙성장이 멈춰있습니다. 아니 후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큰 산을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때로는 우리의 신앙을 후퇴시키며 우리의 인생을 생명이 충만한 인생이 아니라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큰 산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큰 산이 평지가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본문 바로 앞 절인 슥 4:6을 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전 건축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우리가 현세천국을 누리는 것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본문에 보면 성령 충만한 스룹바벨 앞에서 큰 산이 평지가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머릿돌을 내려놓을 때에 무리가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은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성장하고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며 생명이 더욱 충만해지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 성장을 가로막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는 큰 산을 평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큰 산은 많겠지만 오늘은 시간 관계상 두 가지만 다루겠습니다.
1. 악한 영들이 큰 산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인 C. S. 루이스는 현대인들이 귀신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귀신을 지나치게 믿는 것이고, 둘째는 아예 안 믿는 것입니다. 귀신을 지나치게 믿으면 그 두려움을 통해서 귀신이 지배하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 반대로 귀신을 안 믿으면 그야말로 귀신이 공격하기에 아주 좋은 대상이 되는데, 이들은 귀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귀신이 이들의 사고와 생각을 더 잘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C.S.루이스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무신론자였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의 회심은 세계 지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루이스 박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열 명이 술좌석에서 웃고 떠들고 있다면 그때 웃음소리는 열 한명이 웃는 소리일 것이다. 바로 열한 번째 목소리는 마귀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그 뒤에서 마귀는 팔짱을 끼고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어 온 세상이 마귀의 손아래 있다는 영적진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악한 영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닙니다. 고전 12:2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여기서 ‘이방인으로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때를 말합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우상에게로 끌려 다녔습니다. 여러분! 우상이 뭡니까? 아무 능력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이 사람을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우상을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우상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사람이 그것들을 만들어놓고서 그 앞에 절합니다. 우상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기도에 응답도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상한 것은 우상숭배자들 가운데는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최고의 커리어를 쌓아 명망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귀신이 그들을 우상에게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장악하고 사망으로 끌고 가는 마귀와 귀신들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요 13:2을 보겠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려고 가룟 유다를 선택하고,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습니다. 요 13:27입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마귀가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자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하여 행동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 다녔던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불신자만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조정을 받고 살아갑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미혹되어 마귀의 조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써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주님이 죽으셔야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 되고, 주님이 부활하셔야 우리가 새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더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막아섰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3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처럼, 마귀가 베드로의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로막는 생각을 하게 하였고, 베드로는 마귀의 역사를 모르고 마귀가 끄는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마귀에게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만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가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벧전 5:8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가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적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용수 목사님이 설교 중에 어느 도시의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심각하게 편찮으시니 집안 어른들이 어머니의 묘지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분은 어머니께서 떠나가실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끊임없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꿈속에서 기도하다가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 가슴에 귀신이 올라앉아서 어머니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 귀신을 쫓아주세요.”하고 막 부르짖었더니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귀신을 쫓아주시더랍니다. 귀신이 급하게 도망가다가 문을 떨어뜨려서 그 문을 달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꾸 부르더랍니다. 깨어 보니 어머니께서 부르고 계셨습니다. “얘야, 일어나 봐라. 이제 시원하다. 살 것만 같다.” 그때 어머니의 병이 나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능력입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니, 저와 여러분은 시험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한국 사람은 특히 감정적이기 때문에 마귀가 감정을 건드리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누구나 감정에 매여서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일생에 큰 실수를 세 번 했습니다. 그 실수들은 아주 치명적이었습니다. 첫째는 살인죄입니다. 그는 자기 동족이 애굽사람에게 괴롭힘을 받는 것을 보고는 성질을 참지 못해서 사람을 때려죽였습니다. 둘째는 십계명돌판을 깬 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십계명돌판을 받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에게 절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모세는 분이 나서 십계명 돌판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록해주신 십계명 돌판이 깨졌습니다. 셋째는 반석을 지팡이로 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때문에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행하신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반응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흥분한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했습니다. 그 일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이 세 사건은 모두 모세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 특히 감정이 상한 경우에 감정으로 반응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내 감정을 상하게 한 그 문제를 올려드리며 성령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여 악한 영의 큰 산을 평지로 만들기 바랍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피영민목사님이 설교 중에 한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권사님은 늘 교회에 대하여 불평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트집 잡고, 장로님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좋지 않은 소문만 말했습니다. 날마다 감사는 없고 불평과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몸에 도저히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암이 발생했습니다. 인생의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자 권사님이 드디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나는 죄들을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지 못한 부분들을 하나둘씩 고쳐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권사님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감사가 없고 불만과 불평이 많은 것입니다. 권사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서 100가지의 감사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날마다 그 감사의 조건들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몸속에서 무엇인가 쑤욱~ 빠져 나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동안 권사님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귀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 후에 권사님이 병원에서 재검을 받았는데 암이 완치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회개와 기도 그리고 감사로 자기 속에 자리 잡은 큰 산 같은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며 성령과 말씀의 조명을 통해서 나에게 역사하는 큰 산 같은 귀신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와 기도와 감사로 큰 산을 평지로 만들기를 축복합니다.
2. 사람들이 큰 산이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시고 주리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했습니다. 그 이후 마귀는 예수님을 사람을 통해서 시험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큰 산처럼 예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인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산에서 철야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람으로 인하여 찾아오는 큰 산 같은 시험을 기도로 이겨냅시다.
예수님께서 비로써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역시 사람으로 인한 시험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의 공격도 사람으로 인한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거짓 참소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큰 산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시험을 받으셨으나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모든 산들을 평지로 만드셨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시험 받을 때 하와는 마귀에게 미혹되었고, 아담은 하와에게 미혹되었습니다. 하와에게는 마귀가 큰 산이었고, 아담에게는 하와가 큰 산이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니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독처하는 것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사회적 집단으로부터 인류라는 거대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인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20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는 심는 대로 거둡니다. 마 7:12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앞의 내용을 볼 때 하나님과의 관계로 풀어야 맞습니다만 대인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대인관계는 심는 대로 거둡니다.
한 젊은 농부가 어떤 농부와 나란히 이웃하여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이웃 농부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독을 당했습니다. 아주 분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하려고 존슨쵸라고 하는 잡초 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그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가 이웃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장인은 신랑이 잡초 씨를 뿌린 그 밭을 사위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위는 자기가 뿌린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대인관계는 심는 대로 거둡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파란만장했던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 잃었고 그런 과정에서 육체적인 고생과 맘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대인관계의 지혜가 있습니다.
➀사람보다 하나님께 더 집중하라. 야곱은 평생 사람에게 집착했습니다. 그것이 야곱에게는 아픔이었습니다. 먼저 어머니에게 집착하다가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대로 했다가 아버지를 속이고 형과 원수가 되어서 20년 간 죽도록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죽이려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공포에 떨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다음에 라헬에게 집착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14년간 외삼촌 밑에서 노예 아닌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 당했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을 잃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야곱이 집착했던 라헬은 아버지의 우상 드라빔을 훔쳤고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객사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잃고는 요셉에게 집착했습니다. 야곱의 요셉 편애는 아주 심했습니다.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형제들이 양을 칠 때 야곱은 요셉을 자기 곁에서 편히 지내게 했습니다. 지나친 야곱의 편애가 형제간에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요셉을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발라서 야곱에게 주며 요셉이 짐승에게 먹힌 것으로 믿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잃은 야곱은 베냐민에게 집착했습니다. 후에 야곱은 근동지역에 큰 가뭄이 들어서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면서 베냐민만은 자기 곁에 있게 했습니다. 창세기 44장에 보면 유다가 요셉에게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고 할 정도로 야곱은 베냐민에게 집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잠간이지만 요셉을 통해서 베냐민마저 야곱에게서 빼앗아버리셨습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베냐민을 보내야 했습니다. 믿는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더 집중해야 합니다.
➁인간적인 방법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라. 야곱은 쌍둥이 중에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사모해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한 결과는 야곱의 인생을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로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야곱은 도망쳐야 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 섰을 때에 자기는 조상들보다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했는데, 그의 인생의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 밑에서 고생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꿈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외삼촌에게 이상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그 거래는 인간적으로는 야곱을 실패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거래였습니다. 야곱이 앞으로 자기가 양떼를 돌보는데 아롱지거나 점 있는 것은 자기 것이 되고 검거나 흰 것은 외삼촌의 것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라반의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이나 염소는 대부분 희거나 검은 색이지 아롱지거나 점 있는 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거래를 수용했습니다. 라반은 잔머리가 뛰어나기에 염소와 양 중에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려서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양이나 염소가 아롱지거나 점 있는 것을 낳을 수 없게 됩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미련한 방법이었으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창 30:43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인간적인 방법에 능했던 야곱이 20년간의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매우 번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➂기도로 문제를 풀어라. 야곱은 자기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이끌고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달려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식솔을 앞서 보내고 얍복강에 홀로 남아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마치 씨름 하듯이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셨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보자 그 마음의 분노가 사라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원수였던 형제는 화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바꾸신 것입니다. 형의 마음을 녹인 것은 야곱이 아니라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자기가 풀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모든 문제의 답을 가지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➃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말라.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서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치다가 벧엘에서 하룻밤 묵었습니다. 그는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땅과 후손의 약속을 주셨고 또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깬 후에 감사하여 돌베개를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붙고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자기가 여호와를 섬기고 자기가 기둥으로 세운 그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 서원하였습니다. 그 말은 자기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 벧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숙곳에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은 것입니다.
이후에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그 땅 백성들과 화친을 조건으로 할례를 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남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울 제 삼일에 칼로 쳐서 다 죽였습니다. 야곱은 그것이 화가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한 것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야곱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지킬 수 없다면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➄사람을 이용하지 말고 축복하라. 야곱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섰습니다. 그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습니다. 야곱이 평생 만난 사람들 중에 바로가 가장 이용가치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 앞에서 그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창세기 47:10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늙어서는 고상한 노인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인격도 성장했고 신앙도 성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신앙성장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데 방해가 되는 큰 산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늘 영적으로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고 큰 산을 평지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하시고 축복하셔서 큰 산을 평지로 만드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