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수호성인 성녀 모니카
성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로 더욱 잘 알려진 성녀 모니카(Monica, 332-387)sms 332sus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조그만 마을 타가스테(Tagaste)에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성녀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 나온다. 아들 성 아우구스티노의 글에 따르면, 성녀 모니카는 그리스도인 어머니의 귀감이 될 만한 여인이었다.
성녀는 22살에 부모님이 골라준 이교도인 남편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결혼했다. 성녀의 남편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처했는데도 난폭하고 방탕한 기질에 상당히 권위적이기까지 했으며, 게다가 성녀의 시어머니는 까다로운 성격에 경건한 책보다는 독한 술을 더 좋아했다. 그럼에도 성녀는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 부도덕하고 난폭한 행실을 일삼는 남편과 음주벽이 심한 시어머니를 한결같은 정성으로 모셨다. 성녀는 오랜 기간의 인내와 헌신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회개시키고 370년경 신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 남편을 잃게 된다. 그 이후 성녀는 별 어려움 없이 2남 1녀 자녀 중 두 명을 개종시켰다. 하지만 성녀는 장남 아우구스티노 때문에 언제나 노심초사였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노는 성실한 다른 두 동생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신자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또한 성녀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던 중에 이단인 마니교에 빠져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아들 아우구스티노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항상 아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던 성녀 모니카에게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는 “용기를 내십시오. 그토록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으니, 그는 절대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위로했다고 한다. 성인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성녀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성녀의 기나긴 기도와 희생으로 아들 아우구스티노는 모든 이단과 그릇된 세속적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오에게 세례를 받았다.
화가들은 이러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주로 그렸으며, 성녀 모니카는 베네치아 화가가 그린 것처럼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났다. 천상과 지상으로 나누어진 제단화를 보면, 천상에는 성인들이 금빛 찬란한 천상의 영광 속에 줄지어 선 채, 성부를 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흰 턱수염이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성부는 양팔을 벌려 자비롭게 성인들을 환대하고 있다. 지상에는 성 모자(母子)를 중심으로 성녀 모니카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서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주교복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교회의 학자임을 상징하는 책을 들고 있다. 미술에서 성녀 모니카의 상징은 십자가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검은 수도복이다. 검은 수도복을 입은 성녀는 한 손에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에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저술한 수도 규칙서를 들고 있다.
성녀 모니카는 아내요, 며느리요, 어머니로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눈물의 기도로써 주님께 의지하며 인내했고, 아들 아우구스티노가 은총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와 늘 동반했다. 성녀는 평소에 죽으면 남편과 함께 묻히기를 원한다고 했으며 “내 몸뚱이야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다오.”(「고백록」 8권 11장)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로마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