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막국수 / 정용섭
내 고향 춘천은 막국수의 고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가지의 어귀 길목에는 영락없이 막국수 관련 식당 상호가 유난히도 많아 보인다. 물론 막국수의 절묘한 맛과 문학이 어우러진 향토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고 싶은 곳으로는 역시 가산(可山)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평창군의 봉평면을 빼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옛날부터 강원북부지역의 산간벽지(山間僻地)를 화전(火田)으로 개간하여 생산된 메밀이 춘천에 모여져 유통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춘천이 대표적인 막국수 고장으로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의 원산지는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국 동북부지역 또는 러시아 바이칼호 인근 지역으로서 7세기경에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메밀은 서늘한 온대지방의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며 생육기간이 3개월 정도로 짧다보니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 대신 먹을 수 있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주로 강원도 지방에서 널리 재배되어 왔다. 특히 메밀은 잎이 파랗고, 꽃은 희며, 줄기가 붉고, 열매는 검으며, 뿌리가 노랗기 때문에 5색을 갖춘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라 하여 한방에서는 귀하게 여겨져 왔던 작물 중의 하나다.
중국의 대표적인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메밀은 기를 내리고, 장(臟)을 좋게 하여 체한 것을 내리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부증(浮症)도 내리게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막국수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어 혈관의 저항력을 강화시키는 ‘루틴’이라는 성분을 갖고 있어 고혈압과 뇌출혈 예방효과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하여 막국수는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으로서 비만과 변비증세가 있는 사람들에게 식이요법을 위한 음식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는 데다가 여인네가 막국수를 많이 먹으면 속살이 예뻐지는 등 미용식으로도 좋다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메밀을 원료로 한 대표적인 음식에는 바로 냉면과 막국수가 있다. 냉면과 막국수의 근본적인 차이는 냉면은 양반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인 반면, 막국수는 서민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이다. 그래서인지 냉면은 껍질을 벗겨 곱게 빻은 메밀가루를 사용한 반면, 막국수는 거친 껍데기 채 그대로 빻아 만든 메밀가루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막국수는 냉면과 달리 거친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마구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 해서 그 이름이 ‘막국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지면서 양반가에서만 먹던 냉면도 진즉 대중화된 음식이 되었고, 막국수 역시 건강음식으로 사랑받게 되면서 이웃사촌이 되었지만 애시 당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막국수에 보다 정감이 가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내가 막국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담백한 막국수 맛과 더불어 국수가 나오기 전에 먹을 수 있는 수육이나 감자 부침개, 빈대떡, 총떡 등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이 깃든 별미들이 입맛을 끌게 하는 데도 있다. 기호와 식성에 따라 골라 먹는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막국숫집을 자주 찾는다.
막국수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육수는 막국수의 맛을 가늠해 보는 배로미터(barometer)이자 식사를 마치면서 입안을 청결히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육수의 주원료로는 주로 소고기, 닭고기, 멸치 등이 사용되는데 추가적인 재료 여부에 따라 그 맛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대개는 육수를 적당히 붓고 식성에 따라 겨자와 설탕과 식초를 골고루 넣어 잘 버무려 먹는 맛도 좋지만 원래는 시원한 동치미국물에 말아먹어야 제격이다. 이 삼복더위에 막국수 타령을 하는 것은 동지섣달 긴긴밤 골목길 언저리에서 ‘메밀묵 사려!’라고 메아리처럼 들려오던 메밀장수의 정겨운 목소리를 연상하면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막국수를 말아 먹으면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다. 오늘은 일찌감치 동치미 막국숫집이나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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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춘천막국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젓가락 나누어 주시지 않으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