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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긍정적 생각과 "행복"🙏
가끔씩 웃음과 유머 치료교실에 오시는 80대 할머니가
언제나 환 한 얼굴로 싱글벙글이다.
부럽기도 하고 또 그 비결이 궁금해서 말을 붙였다.
“할머니 요즘 건강하시죠?"
그러자 할머니 씩씩하게 대답하신다.
”응... 아주아주 건강해... 말기 위암 빼고는 다 좋아..“
그 대답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백만볼트 전기로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할머니는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나서 집도 있고, 남편도 있고 자식들도 5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암이 몸에 들어와서 예정된 시간에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냐는 것이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지 알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를 만나면서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마음의 평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행복은 끝없이 몰아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암에 걸렸을지라도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암 치유율은38%에 그치지만,
점 하나 붙여서 고칠병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암의 치유율은 70%까지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다.
똑같은 암이지만 죽을 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암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분들도 많다.
암을 죽음으로 연결하느냐, 암을 삶으로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긍정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이러한 긍정의 힘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재임 시 알래스카를 구소련으로부터 구입했다.
그는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열 살에 양복점에 들어가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벌고 결혼한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에 존슨은 정치에 뛰어들어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에 16대 대통령인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된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미국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만 상대편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당한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이 한마디에 상황을 역전시킨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긍정적인 생각 없이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서는,
밝음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행복은 없지만, 누구의 가슴에도 행복은 있다“는 말이 있다.
결국 마음의 행 복을 끄집어내는 데 긍정적인 해석밖에 없다는 의미다.
좋게 생각하자.
그것이 자신을 즐겁게 바라보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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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論介)에 대한 오해
논개의 본명은 '주논개'입니다.
조선시대 1574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선비였던
부친 '주달문'과 모친인 허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양반가의 여식이었습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숙부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몸을 의탁하고 지냈는데
어린 나이지만 용모가 출중하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시문에도 능했다고 전해집니다.
평소, 이를 눈여겨 보아왔던 장수 고을 어느 부호가 논개를 어여삐 여겨 민며느리로 삼고자 그에 대한 댓가로 그녀의 숙부에게 쌀 50석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논개 모녀는 이를 거부하고 모친의 고향인 경상도 땅으로 도주해 어느 지인의 가택에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소문해 추적해 온 고을 부호에게 발각되어 장수현감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고을 현감으로 충의공 최경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넉넉하고도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논개 모녀의
억울하고도 딱한 처지를 소문으로 듣고 있던 터였기에
무죄석방하였으며, 오갈 데 없는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자신의 관저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고 합니다.
논개가 성인이 되면서 아리따운 처자가 되어갈 무렵 장수현감 최경회는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몸이 된 외로운 처지였습니다.
평소 아름답게 보아온 논개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현감 최경회는
넌지시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알렸고,
논개의 승낙을 받아내자 곧바로 자신의 후부인(후처)으로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그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현감 최경회는 전라도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모집해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훗날 조정에서는 최경회의 공로를 인정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종2품)에 봉하고
경상도 지역 병권을 줌으로써 왜구와 맞서게 했으나 격전지에서 그만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잃고 비통해 하던 논개는 애국과 남편의 복수를
동시에 실현할 방법으로 왜장을 죽일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왜군 장수들이 승전에 도취되어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있을 때 논개는
자신의 눈부신 용모를 기생으로 분장하여 가파른 바위끝에 서서 왜군의 장수를 유혹했던 것입니다.
모두들 겁을 먹고 절벽에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지만 적장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용기를 과시라도 하듯 논개에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논개는 자신의 계획대로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채
적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를 그렇게 조국에 바쳤습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변영노 시인의 '논개'라는 시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보았습니다.
논개가 기생이었다는 잘못된 현장기록 때문에 그녀의 존재가 안타깝게도 정사에는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논개는 분명 해주 최씨인 경상도 병마절도사(종2품의 벼슬) 최경회의 엄연한 후부인이며,
선비 주달문과 모친인 허씨 사이에서 태어난 양반가의 여식입니다.
또한 열녀이자 뜨거운 애국충정 열사인 것이죠.
여기, 그녀의 충열을 기린 변영노 시인의 멋진 시가 있어 올려드리오니 함께 감상해 보세요.
1.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2.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븕은 그 마음 흘러라.
3. 푸르른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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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팬티 누가 찢었나?
조선의 중종시대
황해도 개성땅에
미모의 기생 황진이가 있었다.
그는 기생이지만
양반과 사대부를
깔고 뭉겠으며
남자에게
노리개 감이 아니라
반대로
유명한 남자를 노리개 감으로 만든
기개 높은
멋진 여인이였다
기생으로 살면서
항상 남자를
가지고 노는
시인이며, 기개가
곧은 여인 이였다
그는
아버지 황진사와 종 어머니 천민의 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진사가 길을 가다,
빨래하는 여인을 자빠뜨려 건드려 생긴게 황진이다.
황진이는 실록에
기록 된것은 없고
야사로
전해지는 것이다
어릴적에
천자문을 떼고 열살 때 부터
漢詩를 썼다.
황진사가 경제적으로
도와준 것
옆집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자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황진이가
소복 차림으로 슬피울고 속치마를
관에 덮어주자
비로서
상여가 떠나갔다
이후로 황진이는
기생이 된다
세종의
증손자 벽계수가
황진이를 무시하고
앞 만 보고 가는데,
황진이가 시기하여
詩 한수를 읆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즉
청산에 흐르는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는데
한번 바다에 닿으면
다시는 못 온다.
명월은
황진이를 말함.
'나와 함께
놀다 가면 어떠하리!'
라는 詩를 노래한다
이에 벽계수가
황진이를
쳐다 보다가
말에서 떨어 졌다고 한다
이에
황진이는
별 볼일 없는 남자라
생각하고 돌아섰다고 함
삼십년간 道를 닦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하여
파계승을 만들고,
천하의 학자 서경덕을 유혹 하였으나
실패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래서
개경의 삼절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라 한다
그는
기생 이였기에 유명한 사내들이 꼬셨다
허나
그의 기개를
어떤 사대부도
꺽지 못했다.
황진이가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아랫 도리와
모든 것을 주고, 안주는건
황진이
마음 이였다.
사대부 집안 선전관 이었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 결혼을 한다
황진이 집에서 삼년을 살고,
삼년은
심산유곡을 찾아 멋진
유람생활을 한다.
그리고 깨끗이
헤어 지면서
詩 한수를 남긴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로 내어
춘풍
이불속에
서리 서리 넣었다가
그리운 님
오시는 날 밤에 굽이 굽이 펴리라!🍒
그후
사대부 앙반만을 갖고 놀다가
말년에
대제학을 지낸 소세양이
내가 황진이를
딱 한 달만 데리고 놀다
헤어 진다며,
그러지 못하면
내 인간이 아니다 라고
친구들에게
맹세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세양은 황진이와
한 달간
동거한 후
헤어 지는데,
황진이가
詩 한수를 읆는다
🍁달빛아래
오동잎 모두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여 있구나!
다락은
높고높아
하늘 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 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 향기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 그린
연모의 정 물거품이 되네!
이 詩를 들은 소세양은
며칠을
더 머무르는데
친구들은
소세양을
사람이 아니라고 놀려댔다고 함
이후
황진이는
사십대 초반에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유언에
깊은 산중에 묻으면 외로우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묻어 달라 한다,
그래서 길가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다
훗날
한양의 한량 임백호가
평양감사가 되어 부임하던 길에 황진이
묘를 지나다,
묘에 술잔을 재배하며
황진이를 그리며 詩 한수를 읆는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은 어디두고
(너의
미모는 어델가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이 없으니
(너와
한잔 술을 못하니)
이를 설워 (슬퍼)
하노라!
이 詩를 문제삼아 임백호는
파직 당한다
훗날
암행어사 이덕형이
'송도기' 라는 책에
''황진이는
아리따운 외모를 지닌 선녀였고
천재 시인이였고 절창 이였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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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포일낙 (季布一諾)
1311년 프랑스 필립왕은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2일 안에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사형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2일 안에 자기 집이나 가구나 논밭을
도저히 팔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사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급히 떠나기에 바빴습니다. 만일 귀금속이나 돈이
있어도 가지고 가다 들키면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사형이었습니다.
맨 몸으로 도망치듯이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때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좋은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모든 보석을 맡기자.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이다.
그는 매우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는 자기 보석가게에 있는 보석들을
모두 그 기독교인에게 맡겼습니다.
기독교인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반드시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필립 왕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도 완화됐습니다.
그 때 떠났던 유대인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보석상인도 돌아오는 대열에 끼어 있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보물을 맡겼던 이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이미 다 늙은 노인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보았습니다.
그 노인은 전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사업이 안 되어 집도 팔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입니다.
절망이었습니다. 자기가 맡긴 보물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추적하여 보았습니다.
드디어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가서 보고는 더 절망스러웠습니다.
가난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몰골이 마치 해골과도 같았습니다.
다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하여져서 죽음 직전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송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무상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들어서자 그는 알아보고 놀라면서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당신의 보물이 있소. 소중히 간직하여 왔지요.”
예상하지 못하였던 일에 유대인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내 보물을 보관하였습니까?
당신 재산은 다 잃어버리면서 내 보물을
어떻게 이 상자에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까?”
그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내 것이 아닌 데 어떻게 손을 댈 수 있겠소?
여러 번 삶에 절망하여 회의를 느끼며 자살하고 싶었었지요.
죽고 싶어도 당신에게 이 보물을 돌려 드려야 하기에
죽지 못 하였소.
내가 이 보물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잊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느라고
죽지 않았소. 자! 받으시오.”
그는 깔고 앉아 있던 보물 상자를 내밀었습나다.
유대인은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과거를 잊으십시오. 이제 축복만 남았습니다.
이 보물의 반은 할아버지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 식구입니다.
이 보물을 같이 쓰며 같이 살 식구입니다.
아팠던 과거를 잊으십시오.
지금부터 나와 행복한 미래만 있을 것입니다.”
그 후 오래도록 식구로 같이 살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약속은 잊지 말고 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려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내 것 처럼이 아니라,
내 것보다 더 소중히 하는 사람,
삶의 가치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고 약속을 하면 꼭 지키는 사람,
못 지키면 책임을 지는 사람,
계포일낙 (季布一諾) 계포의 약속,
즉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자세,
바로 이것이 인격입니다.
약속은 지킬 때 아름답습니다.
- 퍼온 내용으로 재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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