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집사의 영성
우리는 생명의 관리자다. 주인이 아니다. 주인이라면 이 세상에서 계속 살 수 있었을 거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났던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출을 내주어야 하는 거처럼 우리는 생명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린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이 주인이 무서워 땅에 묻어두었다가 다시 그대로 달랑 한 탈렌트만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한 탈렌트를 더 벌어 돌려드린다.(마태 25,25-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집사에 비유하신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주인의 집과 재산뿐만 아니라 그 식솔들도 잘 돌보는 사람이다. 자기가 기분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한결같이 1년, 10년을 하루 같이 자신에게 맡겨진 재산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루카 12,42-43) 그런 이들에게는 주인이 오든 말든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게 그의 삶이고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게으른 종은 주인이 오는 때를 못 맞춘 게 아니라 그렇게 살면 자기가 집사라는 걸 망각하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집사의 영성을 살아간다. 나의 생명만이 아니라 이웃의 생명 그리고 말 못하는 다른 피조물까지 보살핀다. 그러라고 주인인 하느님이 우리에게 탈렌트, 재능을 주셨다. 누구는 다섯 탈렌트, 누구는 두 개, 한 개를 주셨다. 다섯이든 하나이든 그것은 우리에게 우열이 아니라, 그저 다름일 뿐이다. 그 재능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이웃을 돌보는 게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바오로 사도는 다른 열한 사도들과 달리 예수님을 뵌 적이 없다. 그는 계시로 복음의 신비를 알게 됐다.(에페 3,3) 그게 얼마나 좋고 신비로웠는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었다. 회개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그)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그)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에페 3,6-7) 우리도 예수님을 뵌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처럼 예수님을 안다고 여긴다. 추억이나 세뇌가 아니라 세례성사로 받은 은총으로 성령님이 내 안에서 바오로 사도처럼 복음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시는 거다. 그 신비를 깨달을수록 우리 집사의 영성은 더 깊어진다.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 좋은 부모가 주님이 말씀하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인 거 같습니다. 제 피를 나눠 준 자식은 없지만 제가 위로하고 보살피고 도와줄 영혼은 아주 많습니다. 제게 주신 재능만큼, 그리고 그 집사 일을 하면서 더 벌어들인 탈렌트로 주님의 식솔들을 더 잘 돌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웃을 잘 섬기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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