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도작盗作 또는 도용盗用이라고 한다. 속어 ‘파쿠리ぱくり(덥석, 빠끔히, 들치기)’로 직접적인 도둑질을 가리키는 단어로 메이지 시대부터 은어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영어로 ‘Plagiarism’이라고 하는 이 말은 라틴어 ‘Plagium’인 '유괴', '납치'를 뜻한다. 박사가 흔치 않던 1920년대 신문을 보면 누구의 ‘박사 학위 논문 통과’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곤 했다.
요즘도 시골 마을에서는 박사 학위 취득자가 나오면 펼침막을 걸어두고 잔치를 하는 곳도 더러 있다.
박사는 원래 고대에 전문 학자나 기술자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다. 백제에는 오경박사五經博士(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에 능통한 사람), 의박사醫博士, 역박사易博士(음양도에 관한 전문가), 역박사曆博士(천문과 역법 전문가), 노반박사露盤博士(불탑 주조 기술자), 와박사瓦博士(기와 기술자)와 같은 다양한 박사가 있었다. 이들은 고대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의미가 변질되어 박사 제조법이 나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거머쥐려고 하는 것을 보면 입맛이 씁쓰레하다.
박사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나 문학에서 표절로 문제가 발생한다. 표절剽竊은 ‘빠를 표剽’에 ‘훔칠 절竊’을 써 어떤 학문을 '노략질하다', '도둑질하다'라는 뜻을 갖은 단어다. 현대에는 의미가 축소되어 시나 글, 노래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베끼는 행위를 뜻한다. 한국 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 타인의 아이디어나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닌 것들을 자신의 저작물처럼 표출하는 것을 뜻 한다. '남의 글을 훔치어 제가 지은 것처럼 발표하는 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어떤 문인은 좋은 글귀를 보면 ‘나도 훔치고 싶다’고 웃으갯 말을 했다. 잘된 문장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도 표절 작품들로 왈가왈부한다. 심지어 저작권법에 저촉되어 곤혹을 치르는 것을 보면 표절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알 수 있다. 타인의 창작물을 마치 자신의 창작품인 양 자랑을 하고 명성을 얻거나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면 그것은 이중적이고 중첩된 도둑질이다. 요즘 표절이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모든 곳에서 전 방위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다.
표절은 박사 논문뿐만 아니라 문학을 비롯해서 음악, 모바일게임, 만화 등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표절'에 대한 검증은 경계가 막연하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건 예사고, 아예 닭이 어떻게 생겼냐고 되묻는 데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표절의 법적 기준은 아이디어와 표현을 따진다. 저작물에는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부분과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이 공존하는 데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를 저작권으로 보호하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은 없다. 오히려 창작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아이디어는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고, 오직 표현만이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별이 애매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법적으로 표절 여부를 따질 때에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아이디어의 영역이냐, 표현의 영역이냐를 골라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아이디어에 있다면 법적인 의미의 표절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부분이 표현에 해당된다면 법적인 의미의 표절에 해당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다음에는 주관적 요건인 의거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갑이라는 작가가 갑이라는 작품을 창조할 때, 을이라는 작가의 을이라는 작품을 참고한 사실이 있느냐다.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갑이라는 작품에 을이라는 작품을 참고한 사실이 있는지, 설령 존재조차 몰랐다 하더라도 사전 조사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선행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유사한 작품이 탄생한 경우에 표절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을의 작품을 접하고 세월이 흘러 까맣게 잊어버린 후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낸 경우라도 표절로 간주한다.
특히 아이디어나 표현의 유사성이 발견되고 토씨 하나까지 똑같이 사용된 것이 발견되면 이런 경우에 의거성이 추정된다. 그리고 객관적 요건인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실질적 유사성은 문헌적 또는 부분적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포괄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바로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의 여부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원칙은 저작물을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나누는 중에서 표현에서 창작성을 가진 표현만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절은 절도 행위로 남의 생각을 베끼는 것은 그의 지적 재산을 훔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이 적발된 대부분의 경우 마땅한 처벌 없이 몇 마디의 사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연구적 윤리를 가르쳐야할 대학 교수마저 표절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표절을 한다. 놀라운 것은 표절을 적발당한 교수들 중에 여전히 교단에 있는 교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반면교사가 돼 나쁜 본보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인의 창작물을 보호해 줄 수 있어야 자신의 창작물도 보호받을 수 있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없다는 상투적인 말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도록 학계에서는 보다 엄격한 감시 체제와 처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창조 없는 모방에 대한 너그러움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표절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양심과 품위문제이기도 하다. 남의 글을 차용할 때는 반드시 각주를 붙여 누구의 책 몇 쪽에서 인용했다고 밝혀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각주를 달지 않고 남의 글을 도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스승이 제자의 글을 쓰면서도 자신의 글인 양 시치미를 뗀다.
덕망 높은 박사나 내로라는 문인 또는 명문대 교수도 표절시비가 붙으면 한결같이 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할 뿐이다. 솔직한 반성이 없는 데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정신적‧경제적 고통으로부터 일궈낸 창작물을 자기 것 인양 사용한 만큼 표절에 대한 죄의 대가도 만만찮다. 한번 걸려들면 평생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불명예라는 꼬리표가 영원히 붙어 다닌다. 거기에 물적 배상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매장 당한다. 이제 표절은 저작권법이 형성되기 이전처럼 관대하지 않다. 더구나 정보화시대인 요즘에는 안테나를 높이 세운 누리꾼들에게 감지되는 날이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표절의 근본적 방지를 위해서는 의식을 바꿔주는 사전 교육과 정직한 글쓰기에 있다. 또한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성인으로 바른 양심을 갖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달콤한 유혹의 마력을 지닌 표절을 근절하기 위한 최선책은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