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은 30년이 넘게 롱런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그는 30년 이상을 가수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승철이 데뷔할 당시에는 거의 30세가 되면 가수로서의 삶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30년 이상 가수생활을 끌어온 힘은 진부하지만, "팬의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1990년 대마초 사건으로 5년간 방송출연 징계를 받고, 전국 공연을 했는데 이 때의 팬들이 30년 이상을 한자리에서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승철은 전화를 하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받는데, 30년 이상 가수생활을 하면서도 매니저를 따로 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일정을 관리한답니다. 또한 평소 지하철도 혼자 스스럼 타고 다니며 알아보는 팬들과 악수도 하고, 원하면 사인도 해 준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기에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도 합니다. 외출할 때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승철은 "유명해지려고 연예인이 된 것 아닌가. 오히려 그 불편함을 즐겨야 된다. 기질상 그게 힘들면 훈련이라도 받아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댓글은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듣고 나서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독도를 지킨다는 사람이 신호를 안지키면 되겠나는 생각을 하며 더욱 조심하고, 어느 날 수입차에서 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져 자동차도 국산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혹시 강철멘탈?"이냐는 물음에, 자신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상처를 받으면 계속 머리 속에서 되감는 스타일이기에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B형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A형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소심한 A형이 아니라 배려형 A형이라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결혼 후 자신만의 영적인 체험을 하고 됙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수많은 봉사활동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짓는 일에 나서기도 하고, 차드에서 알게된 소녀를 자신의 집에서 돌보며 치료해주기도 하고, 6.25 참전 프랑스 노병을 돕는 일, 탈북청소년들과 독도 합창다큐멘터리 제작 등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에는 목함지뢰로 다친 장병들에게 성금을 내러 가기도 하였습니다.
이승철은 노래도 대단하지만, 골프실력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PGA 우승경력이 있는 양용은의 일일캐디를 하기도 하였고, 2019년에는 뉴질랜드 오픈에서 프로와 아마가 팀을 이루어 출전하는 프로암대회에서 양용은과 팀을 이루어 출전하여 5언더파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아 아 아
나도 알지못한 날 굳이
알려고 들진마
보여줄수 없는 내 마음만
안타까울뿐
이런 내 습관에 젖은
여자들은 많았지만
차츰 내 주위를 보며
후회를 시작했어
하루 종일 찾아 헤매도
판에 박혀있는 모습뿐
그런 내 모습에 축축히
젖어드는 기억이
오늘도 난 혼자라는 사실을
잊은채로 잠들겠지만
오늘도 난 기억속의 네게
의미없는 후횔하며 지내겠지
예 예 No No No No 아 아
늘 혼자인척 하지는 않겠다고
말하지마
너 떠난 후 빈 곳은 항상
남겨둬 있어
난 너와 마주칠 기회 언제나
준비해주지
네 품에 다시 안기길
기대하고 있어
하루종일 찾아 헤매도 판에
박혀있는 모습뿐
그런 내 모습에 축축히
젖어드는 기억이
오늘도 난 혼자라는 사실을
잊은채로 잠들겠지만
오늘도 난 기억속의 네게
의미없는 후횔하며 지내겠지
오늘도 난 혼자라는 사실을
잊은채로 잠들겠지만
오늘도 난 기억속의 네게
의미없는 후횔하며 지내겠지
오 예 오 No No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