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설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나는 호기심과 함께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익숙하다’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그리고 ‘낯설다’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두 가지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나에게 ‘거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는 나와 대상 간의 거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리감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는 이 거리감을 통해 내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그중에서도 익숙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멀어진 순간들이 떠올랐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물건들. 처음 만나는 모든 것은 나에게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그 대상을 내 경험의 범주에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와의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점점 많은 것을 공유하고 교류함에 따라 그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결국 그들이 나의 일상으로 스며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들이 ‘익숙하다’고 느끼게 된다. 익숙함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주는 거리감의 변화는 우리를 더 깊은 성찰로 이끌기도 한다. 익숙함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그 편안함이 주는 거리감의 미세한 변화는 때때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감정은 언제 떠오를까? 나는 이를 “대상과 나의 거리”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문득 떠오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대상과 나의 거리가 가까운 상태에서 일순간, 큰 간격으로 벌어진 것.” 이는 우리가 친밀함을 느끼던 대상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담고 있다. 그 거리감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은 한순간에 일어나며, 그 경험은 우리의 내면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이런 경험이 언제 있었을까?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이별의 순간이다. 이별은 단순히 관계의 끝이 아니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확연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친구, 연인과 같은 가까운 존재가 이별의 순간을 기점으로 '남'이 되어버리는 이 경험은 내게 깊은 상실감을 안겼다. 이별 후에 느낀 거리감은 그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나의 일상에서 더 강하게 느껴졌다. 즉, 이별 이후 나는 그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거리감보다는 나와 그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에서 그들의 부재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나의 일상 그 자체였고, 그가 없다는 사실은 내 삶의 여러 면에서 큰 변화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이 멀어질 때, 나는 그들이 얼마나 익숙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함께 걸었던 하굣길, 시험이 끝난 후 함께 갔던 분식집, 그리고 웃고 떠들던 그 모든 시간들은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이 모든 추억 속에서는 친구들이 여전히 ‘익숙한’ 존재로 남아 있지만, 그 추억의 끝자락, 그들의 빈자리에서 오는 공허함은 너무도 낯설었다. 그 순간의 공허함은 내가 경험했던 가장 큰 낯설음 중 하나였다. 익숙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 자리를 알 수 없는 정적이 대신 채우는 순간은 정말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감정의 잔상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라는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이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나를 깊은 사유로 이끌었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익숙함 속에서 소홀히 여겼던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이들은 내 삶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감정과 기억에 깊이 뿌리박혀 지금의 나를 이루게 해준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별의 경험은 단순한 잃어버림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익숙함과 낯설음은 단순히 감정의 스펙트럼을 넘어, 나의 존재 방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삶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고, 익숙한 것들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도 낯선 것들을 발견하는 기회를 잊지 않으려 한다.
첫댓글 우리의 인식은 새로운 것과 마주할 때 낯설다는 느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과거 익숙했던 어떤 것과 같고 다른 점을 찾아내 정리하게 되고, 그래서 익숙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익숙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 어느 순간엔가 불일치하는 상황이 되면 다시 낯설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자세히 보기 시작합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라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경험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하다고 느낀 것이 결국은 나라는 점, 모든 것은 내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변화의 과정 중에 있으며,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변화에 따라서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철학하기입니다.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고자 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나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