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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구회원 경복궁 나들이
오늘 토구회 경복궁 나들이 후 나주곰탕집에서 석식을 파하고 일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9시 10분이다. 기분이 좋아 친구 윤양원이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5잔이나 하다 보니 기분이 매우 즐거웠다. 나는 대전 공전 친구를 너무도 사랑한다. 나의 마지막 학교이고 5년을 동고한 인연으로 나의처지에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 자판기에 앉아 경복궁 나들이 관람기를 써내려간다. 이글은 후에 내가 회고하고자 쓰는 글이기에 같이 공유코자 전송할 수도 있다. 오늘 박의서가 집필한 ‘’기록 따라 떠나는 한국고전 여행‘ 이라는 책은 나에게는 관심이 깊은 내용으로 수고와 감사함을 전합니다.
토구회 경복궁 나들이하는 오늘 가을이 진하게 내려앉은 인왕산 줄기 아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3시 30분경이다. 만난 지 50년 되는 대전공전 토목과 9회 졸업생들이 정유년 가을 오늘 2017년 10월 29일 경복궁을 관람키로 결정한 바에 따라 모였다. 만나는 장소로 이곳이 여의치 않은 친구는 곧바로 경복궁에서 만나면 된다. 비록 몸은 삭았지만 만나면 즐거움에 마음은 20대를 달린다. 만나는 시각을 오후3시50분경으로 늦게 잡은 것은 나이에 걸맞게 오랜 시간동안 보행에 지치는 것을 삼가고 1시간 정도 유람하고 편히 앉아 담소하는 시간에 중점을 둔 것 같다. 나는 옛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경복궁역에서 5번 출구를 나가보니 친구는 없고 박물관내에 들어서니 정병희를 만났다. 시간은 다 되었어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아 총장 성도용에게 카톡을 날리니 경복궁 매표소에 있단다. 그곳에서 친구 박의서 이송직을 만날 수 있었다.
결국 오늘 참석자는 박내윤부부, 성도용부부, 이석범부부, 김용언부부, 이송직부부, 정병희부부, 홍종설부부, 박의서 윤양원 유재철, 이권행 모두 18명이다. 좀 조촐한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한때에는 젊음의 기백으로 아름다운 몸으로 부인도 감동시켰지만 어쩌다 가을서리에 고구마 줄기 시들 듯이 이 모양이 됐는지 알 수가 없어 가끔은 서럽고, 출세의 가도를 내달리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는 뜬 구름 같은 아득한 이야기 같고, 말술에 꼭지가 뒤틀려도 죽어도 바른말하는 기상도 시들었다. 기억력과 총명하던 머리는 어지러운 귀신에 씌여 머리와 입이 따로 놀고 게다가 손발도 어깃장을 논다. 우리들의 춘추가 65세를 넘었으니 과욕은 금물이나 남아로 태어나 이루어놓은 거 없는 나 같은 이들은 머리만 희어지고 눈도 침침하며 이빨도 인프란트 신세를 지고 기억력마저 가물어가니 정말로 애통한 일이다. 그러나 수없이 어지러운 경박함을 어찌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사직동 사직공원의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인왕산이 가을 채색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높고 파란 하늘가에 아름다운 흰 구름이 흘러가고 도심 속의 가을의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심신을 즐겁게 한다. 오늘도 집회소식을 전하는 총장의 카톡 소식에 친구들의 동선이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념갈등과 투쟁과 촛불로 심난하던 광화문 거리가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집 높은 분들의 심기를 안 건드리는 게 서울 경찰의 임무다. 어제도 민노총 집회로 서울의 가을 하늘은 시끄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하다. 울분과 분통을 터트리고 거품을 품고 바락바락 악을 써야 심기가 가라않은 사람들 일명 광분자들의 광기해소용으로 제공되는 광화문 광장은 근사하게 집회라는 단어로 격상되어 정부로부터 대접을 받는다. 민주화 탈은 쓴 종북 좌파들이 이곳을 거쳐 드디어 청와대를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 이맘때 청와대 주인이었던 보수의 아이콘 박근혜는 감옥에 있다. 우리들은 바로 그 청와대 입구를 지나 경복궁으로 간다. 경복궁은 조선 시대 청와대다. 조선의 정치사도 지금 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시련과 실패, 혼란과 갈등, 모함과 질투, 증오와 분노 등과 같은 일상의 모습이 예나이제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오늘도 고궁을 방문하는 이유는 인생의 출발점보다는 종착점이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고 누구나 같이할 수 없는 인생의 외로움을 삭이며 세월을 보낸다. 가까운 인생의 종착점을 향하여 신속히 달리는 세월을 한탄하며 무의식중에 어쩌다 인생 출발점을 향하여 돌아보면 향수 짙은 그리움에 가슴이 짠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외로운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시감 같은 것을 느끼고 보면서 위로를 받고자 고궁을 방문하는 이유라면 이유다.
인생이 외로운 것은 평생을 두고 읽을 고전한권 없기 때문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이 생각나는 고궁여행이다.
토구회 30여 명 중에 오늘 참석률은 18명으로 저조했지만 이는 택일이 단풍철과 겹쳐져 다른 일정에 한 몸을 둘로 나눌 수 없기 때문이기에 만나는 의미는 깊다. 그래도 50여년을 만나고 헤어진 옛 친구들이기에 적은 인원이지만 부부간에 참석한 이들도 있어 분위기는 행복했다. 우리 같은 이 나이에 왜 고궁 나들이인가. 경복궁은 한반도 500년의 역사를 품어왔던 산 증인이기에 가을이 무르익는 정유년 10월이 되면 한 많은 500년 조상의 역사의 뒤안길도 궁금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국립 박물관 안에서 정병희와 조우하고 경복궁 매표소 성도용 사무총장을 만나 박의서 이송직 과 같이 홍례문안으로 입장하여 경복궁 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했다.
누구나 경복궁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경복궁의 내력을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고 또한 조선의 역사는 한자와 한문으로 말과 글이 달라서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경복궁은 정문이 광화문이고 정전이 근정전이며 편전은 사정전이고 침전은 강녕전이며 왕비의 침전은 교태전이다. 이 침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왕비는 교태전에서 왕대비는 자경전에서 생활한다. 이 문장은 한자로 써야하나 현시대 모두가 읽기가 불편하여 한글로 기록한다. 해설사의 해설은 뒤로하고 내가 아는 경복궁의 내력을 피력코자 한다.
경복궁의 역사는 조선 태조시대로 흘러간다. 국초국말의 엄중한 변혁의 시대에 고려의 문란한 부동산 정책이 고려를 망치게 했다.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농장과 토지를 강을 경계로 소유하게 되자 토지문제는 더욱 악화 되었다. 고려 말 토지문제해결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위화도회군이다. 이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일파는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드디어 1392년 조선의 왕으로 태조로 등극한다. 그리고 무학대사의 점지한 곳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다. 이 한양부는 수 천 년 간 성황당의 옛터였다. 경복궁은 이성계에 의해서 세워진 첫 궁궐로 조선왕조의 법궁이다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 주아(周雅)편의 기취이주 기포이덕(旣醉以酒 旣飽以德) ‘만년군자개이경복(萬年君子介爾慶福)’ 이란 구절에서 경복궁이란 이름을 정하게 했다고 전한다. 이 국역은 이미 술로써 취하고 이미 덕으로써 배부르니 만년 군자(평민)들의 각자 큰 복이로다. 하여 경복을 차용하였다. 이성계 일파는 성황당의 옛터인 한양부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구신들의 뜻을 같이하는 대신들을 색출하여 진퇴를 확실히 하였다.
퇴거당하는 대표가 정몽주다. 태조 둘째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하여가를 읊는다. (此亦何如 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이시를 그 내용에 성황당 후원으로 퇴락(한양도읍지로 같이 가자. 라는 뜻)한들 어떠하냐. 라고 넌지시 의중을 물어보는 하여가라는 시가 있다. 이시의 내용을 요즘처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라고 해동악부(海東樂府)는 적고 있다. 이 시는 포은집(圃隱集)에 실려 있다. 위 시의 내용은 원본과 다르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의 직설적인 시의 뜻을 우회하여 실었다.
‘이 또한 어떠하며 저 또한 어떠한가. 성황당후원(한양)으로 퇴락(내려간)한들 어떠하며 우리들도 이같이 죽지 않게 된다한들 어떠하리. 이 말뜻은 죽지 않고 우리무리들과 한양으로 같이 가자는 뜻이었다. 태종의 왕의 직설적인 뜻을 신료들이 완곡하게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라고 의역했다. 지엄하신 왕권의 권위에 흠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그리고 단심가는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혼백이 있든 없든 고려왕을 향한 일편단심이 아무리 그 같은 이유로 고쳐지겠는가.’ 라는 시다. 서로가 직설적인 의중 타진이었다.
한양천도는 피 비린내 나는 살육으로 역성혁명을 성공시켰다. 이 같은 역사를 품고 있는 현장이 경복궁이다. 오늘 경복궁 나들이는 해설사와 같이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경복궁은 조선조의 법궁이며 역사의 증인이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 장자(長子)로 왕위에 오른 사람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7명뿐이다. 그렇다면 이외의 왕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태조 · 태종 · 세조 · 중종 · 인조는 반정이나 찬탈로 왕이 되었고, 정종 · 세종 · 예종 · 명종 · 광해군 · 효종 · 정조 · 순조 · 헌종 · 순종은 장자 대신 왕이 되었다. 성종 · 선조 · 영조 · 철종 · 고종은 이전 왕이 후사가 없어 추대되었다. 이렇게 조선의 역사는 순탄하지 못했다. 경복궁에서 눈여겨 볼 궁궐은 강녕전과 교태전이다. 이 전각은 용마루가 없다. 왕의 위에 높은 것이 없다는 이유로 용마루를 제거했다. 오늘도 해설사는 이 중요한 사료를 해설치 아니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 해지는 6시경에는 초겨울 날씨를 경험했다. 근정전을 필두로 사정전을 거쳐 강녕전 교태전 경회루 자경전과 동궁, 향원정과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건창궁 집옥재 등등을 관람하고 사무총장이 예약한 종로구 자하문로 적선동 98번지에 소재한 나주곰탕 집에서 다 같이 저녁을 함께했다. 우선 추운 몸을 잠재우려 막걸리는 시켜 한잔을 하니 오늘따라 도연명의 잡시가 떠오른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어
경복궁 길 위에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것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이것이 이미 무상한 몸이라.
땅위에 태아나면 모두가 형제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만을 따지랴.
기쁜 일이 생기면 마땅히 즐겨야만 하는 것이니. 한말의 술이라도 받아놓고 친구를 모은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있기 어려운 것. 때를 놓치지 말고 마땅히 힘써야만 하는 것이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시를 생각하니 오늘 따라 마음이 흡족하다.
저녁자리에 친구박의서가 집필한 기록 따라 떠나는 한국고전 기행 책을 선물 받았다. 책의 구성이 좋고 내용이 실하다. 한편을 소개하면 제목이 중국인이 쓴 왕오천축국전이란 제목으로 통일신라시대 혜초의 향수를 달래는 시가 소개되었다. 혜초는 신라인이 맞다 단 그가 중국에 오래 거주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제목이 중국인이란 물음표는 잘못 된 것 같다. 왕오천축국전에 실린 혜초의 오언시는 향수를 달래는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시로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책의 국역이 아니고 내가 직접 국역하여 기록한다.
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緘書忝去便
風急不廳廻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뜬구름 바람 따라 돌아가는데
가는 편에 서신을 봉하여 바람 따라 보냈지만
바람이 거세여 회답이 들리지 않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언덕 북쪽이고
타향 지방은 땅 모퉁이 서쪽에 있네.
해 비추는 남녘엔 소식 전하는 기러기 없으니
그 누가 계림으로 향하는 자 되어 날아갈까.
* 有雁 : 발목에 서신을 묶어 보내는 기러기를 말함.
향수에 젖은 타국의 혜초가 그리운 마음 간절하게 읊조린 서정시 한편이 나주 곰탕집의 막걸리를 깨게 한다.
이어서 대전 정병희부부의 인사와 영동 홍종설부부의 인사가 있었다. 정병희는 일요일에 원장으로서 바쁜 와중에 친구들 모임을 소중히 생각하여 상경했다는 우정 깊은 소감을 밝혔고 종설이는 포도와인 제조에 취미를 가져 판매허가가 진행 중이고 부인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자영업은 함부로 할 일이 못된다고 역설했다.
이어지는 토구회 회의결과는 내년 3월 31일 토구회 날짜를 확정하고 그날 전원이 참석토록 모임 2개월 전에 공지하고 다시 1개월 전에 공지하고 1주일 전에 알려주어 모두가 잊지 않고 참석토록 하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멀리 춘천에서 온 박의서가 먼저 자리를 뜨고 이어서 모두가 헤어졌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에 갇히지 마라. 가슴과 직감은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다. 그 외 모든 것은 다음 문제다.
이 말은 남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스트브 잡스의 말이다. 토구회는 가슴과 직감으로 다 같이 우정이 빛나기를 바란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후에 내가 다시 회고해 보고자 쓴 글입니다.
2017년 10월 29일 오후 11시 50분
율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