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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 나타난 철학-<죽음에 관하여>, <내일>을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2023103201 김수영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죽음에 관하여> 2. <내일> Ⅲ. 결론 |
Ⅰ. 서론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 여행」이라는 수업을 듣자마자, 나의 어린 시절을 책임지고 오늘날 나의 일상의 작은 파편이 되는 여러 작품들이 생각났다. 그중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 여행」에 포함되는 애니메이션들도 몇몇 존재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해당 저서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을 다루어볼까 한다.
처음에는 해당 저서와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작품을 다루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루고자 했던 작품은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되었던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이라는 SF 만화였다. 당시 독서 토론 방과 후 담당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을 소개해 주셨는데, 처음에는 너무 옛날 그림체에 SF 만화라서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이었던 사이보그 여전사 ‘갈리’를 보며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지?’라는 신선한 의문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성과 기계성 문제부터 자아 정체성, 자유 의지, 디스토피아적인 사회구조 등 한 만화책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인문학적 소양을 보며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때문에 이번 주제는 ‘총몽’에 대해 다루고자 하였으나, ‘총몽’이라는 고전 명작에 대해 이미 논문이 나와 있었다. 물론 해당 논문을 바탕으로 글을 써도 충분히 신뢰성 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오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쓰지 않은 작품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한국 만화, 웹툰 시장에도 이만큼 좋은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아쉽지만, 이번에는 ‘총몽’을 놓아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만화 산업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한 일본에서 무려 3대 SF 명작으로 손꼽히는 ‘총몽’을 놓아주고 선택한 작품은 무엇일까? 이번에 내가 선택한 작품은 네이버 웹툰의 ‘죽음에 관하여’와 ‘내일’이라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종이 만화에서 인터넷 만화로 넘어간 지금 ‘웹툰’이라는 장르는 현재 굉장히 각광받고 있는 만화 장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네이버 웹툰이라는 플랫폼을 선택함으로써 보다 많은 공감을 얻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해당 작품의 담긴 내용의 무게와 의미가 굉장히 철학적이라는 점이다.‘총몽’에서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사이보그 여전사를 통해 철학적 의미를 담아냈다면,‘죽음에 관하여’와‘내일’에서는 일종의‘신’혹은‘전지적 존재’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연결 짓는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실제 우리 주변에 존재할 것 같은 삶, 현대 사회의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하기에 ‘총몽’에 비해 이해하기 쉽다는 점 역시 크게 작용하였다. 게다가 ‘죽음에 관하여’에서는‘방관자’로서의 신이,‘내일’에서는‘참여자’로서의 신이 등장한다. 이 두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큰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그 안에서의 ‘신’의 역할에 대해 상반되면서도 공통된 의견을 공유한다. 이러한 이유로 본고에서는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고 두 작품이 갖는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Ⅱ. 본론
1. <죽음에 관하여>
네이버 웹툰에서 2012년 8월 30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연재된 시니/혀노 작가님의 ‘죽음에 관하여’는 옴니버스 형식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일명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죽음이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닌 일상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작품에서는 주로 흑백으로 죽음을, 컬러로 삶을 표현하여 그 대비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삶의 ‘찬란함’과 죽음의 ‘아무것도 아님’을 표현했다.
웹툰은 이 ‘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가사 상태에 빠져 의식의 세계에 온 사람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과 그들이 겪는 감정, 선택, 후회 등이 묘사된다. 특히, 신은 살인을 저지른 이에게 살해당한 이들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살인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살인마에게 지옥이나 사형과 같은 벌보다 더 큰 고통을 주며 진심 어린 반성과 뉘우침을 겪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은 끊임없이 절대적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신은 인간의 삶의 ‘방관자’로 존재한다. 신은 자살을 하려고 한 이들에게 그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괴로움을 탄환으로 바꾸어 반성하게 하거나, 위로를 주는 등 자살을 선택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깨달음을 준다. 그러나 신은 죽음에 예외를 두거나 현실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모습이나 크기를 바꾸는 등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 ‘방관자’인 셈이다. 그가 어떤 이를 '현실'로 되돌려 보내주는 것 같은 연출은 실제로는 신이 한 일이 아니라 현실 속 누군가가 저지른 일의 결과인 것이다. 신은 단지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그에 맞는 연출을 하는 것으로, 그 스스로도 "신이라고 해서… 누굴 살리고 그럴 순 없어. 난 누구에게나 동등하지. 널 살리는 건 성공적으로 수술을 집도한 의사거나, 썩은 밧줄이지 내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토대로 이 작품은 ‘신’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오로지 방관자로만 존재하며 그에 대한 맞는 처우를 내린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신’마저도 사실은 신의 힘을 빌린 사망자였던 것으로 스페셜 엔딩을 낸다. 즉,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이며 그 선택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반드시 따라온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의 신의 모습은‘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이야기 한 공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말을 통해 공자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한 선행의 대가를 생각할 시간에 현재에 집중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즉, 내 삶과 현실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웹툰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등장인물들은 죽음 직전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다시금 성찰하며, 무엇이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었는지를 고민한다. 이에 작품은 삶이 유한하기에,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결국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탈출은 될 수 있어도 ‘탈출구’는 될 수 없으며, ‘신’ 역시도 전지할 수는 있으나 전능할 수는 없는 존재인 것이다.
2. <내일>
네이버 웹툰의 ‘내일’은 2017년 5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연재중인 라마 작가님의 작품으로, 2022년 4월 1일부터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작품이다. 작품은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일명 ‘위기관리팀’이 나서는 내용이다. 웹툰에서 주인공 최준웅은 노숙자를 구하려다 한강에 빠져 혼수상태가 되고 난 후, 저승사자 구련의 제안으로 저승의 독점기업 주마등의 ‘위기관리팀’ 비정규직 사원으로 첫 직장을 다니게 된다.
가사상태의 주인공이 다니게 된 위기관리팀은 저승독점기업 ‘주마등’의 저승사자들 중 일부가 만든 팀으로, 자살을 행하는 이들을 나약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기존의 저승사자들에 대항하는 위기관리팀의 모습을 묘사한다. 특히 이 위기관리팀의 사자들 모두 각각의 이유로 ‘자살’을 하게 된 저승사자라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묘사된다. 또한 저승사자들이 인간에게 물리적인 폭행이나 벌을 가하거나, 현실에 개입하는 등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자살 위험이 있는 이들을 구해낸다. 그러면서도 명품에 집착하거나 이미 죽어버린 이들을 돕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적이고 전지전능하지 못한 존재인 모습 역시 보인다.
이처럼 인간적이고 전지전능하지 못한 ‘신’이자 심지어 과거에는‘인간’이었던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여러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그들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구하면서도, 그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도움만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들은 단순한 해결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로 묘사된다. 이는 인간적인 저승사자들의 모습을 통해 개인적인 고통의 보편성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보편적인 감정, 연대의 힘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을 통해 삶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각 인물들이 삶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이유는 다양하지만, 저승사자들은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와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옥황’이라는 존재를 통해서도 묘사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웹툰 내일은 ‘왕따', '6.25 참전용사’, ‘위안부’, ‘외모지상주의’ 등 현대 사회에서 이야기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사자들의 도움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고통과 삶의 의미,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저승사자들의 이야기와 엮어내며,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하고 재평가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Ⅲ. 결론
네이버 웹툰 ‘내일’과 ‘죽음에 관하여’는 크게 본다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각각의 고유한 접근 방식과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 두 작품은 특히 죽음과 자살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
‘죽음에 관하여’는 음을 맞이한 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며, 그들의 삶과 선택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반면 ‘내일’은 저승사자들이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로, 고통 받는 인물들에게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죽음에 관하여’에서는 신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모호하며, 신의 개입보다 각 인물의 개인적 선택과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중시하며,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그러나 ‘내일’에서는 저승사자들이 주된 역할을 하며, 그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들은 고통 받는 인물들을 돕고, 그들의 자살을 막으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희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차이점 역시 지니고 있다. 또한, 두 웹툰은 각각 구원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죽음에 관하여‘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보다 복잡하게 다루어 독자에게 감정적 여운을 남기지만, ’내일‘은 인물들이 구원받고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긍정적인 결말을 지향한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은 인간의 고통, 삶의 의미,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내일’은 자살 방지의 중요성, 삶의 존귀함 등을 강조하고, ‘죽음에 관하여’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한계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한 논의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두 작품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독자에게 삶을 재고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관련 논문 및 저서가 존재하지 않아서 오로지 웹툰 내용만 보고 작성한 글로, 따로 참고문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은 각주로 달린 부가적인 내용들이 존재하는데 제가 이 글에 다는 법을 몰라서, 송구스럽지만 파일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첫댓글 각자가 가진 종교에 따라서 신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근대 이후로 인간은 신이 인간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종교를 믿는 것은 아직 우매한 신화에 매달린 부질없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기 반영이 신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의 역할과 필요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 탑의 신화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타인의 신앙에 대해서 비판하고, 인간 이성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소개한 웹툰과 작품에서 소재로 삼고 있듯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 삶의 의미를 죽음과 연결하여 묻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묻는 이유는 인간이 그저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있게 생존하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해답을 신에게서 찾든지, 자기 자신에게서 찾든지,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추구해 나가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치 있게 사는 삶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