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펑샤오강 감독의 [대지진]은 재난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fter Shock], 원제는 [唐山大地震]이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3시 42분.
중국 당산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24만명이 사망하고 43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영화의 발단이기는 하지만
지진보다는 지진 이후의 충격과 상처, 그 상처 치유의 과정을 영화는 담고 있기 때문에
영어 제목이 영화의 내용과 가장 근접하다고 볼 수 있다.
1976년부터 2008년까지 32년 동안의 세월이 흘러가는 [대지진]은
중국 당산의 한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는 팡떵과 팡다 가족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7살 쌍동이 남매인 팡떵과 팡다. 아버지 팡다창은 트럭을 운전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를 사온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해주고
아이들을 피해 트럭 뒤의 빈 화물칸에서 아내와 부부관계를 갖는다.
천지를 뒤흔드는 진도 7.8의 대지진은 그때부터 23초에 불과했지만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며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팡떵의 아버지는 아내를 밀쳐내고 자신이 깔려 죽는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 잔해로 달려가는데
커다란 콘크리트 기둥의 양쪽 끝에 아들과 딸이 각각 깔려 있다.
한쪽을 꺼내면 다른 쪽은 눌려 죽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울부짖는다. 두 아이를 다 살려내라고.
하지만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두 아이 모두 잃을 수 있다.
어머니가 결정을 못하자 구조대원들은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한다.
어머니는 구조대원의 바지를 붙잡고 힘없이 말한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 말을 들은 딸은
무너진 건물 밑에서 눈물을 흘린다.
구조된 아들은 팔 한쪽이 잘려졌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죽은줄 알았던 딸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깨어난다.
그 딸은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구조대원으로 일하던 인민해방군 부부를 만나 그 가정에 입양된다.
[대지진]은 지진 그 자체보다는
지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현대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은 어떻게 해체되어 가는지,
또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는 상처는
그 뿌리를 찾아야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펑 샤오강 감독은 영리하게
가장 흥미로운 소재를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공략하면서
감정선을 얄미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중국 인민들이 재난을 극복하고
오늘의 현대화 된 중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는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다.
국가 사회주의 정책에 위반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재난 현장에서 사력을 다해 일하는 인민해방군과 인민들.
그 역경을 딛고 오늘날의 현대화 된 중국으로 거듭난 놀라운 경제성장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자부심을 키워주면서
한 편의 감동드라마를 만든 펑 샤오강 감독의 연출력은 얄미울 정도다.
각각 다른 길로 전개되던 팡떵과 팡다의 이야기가 만나는 부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발생한 사천성 문천의 지진 현장이다.
진도 8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미혼모로 딸과 함께 살다가 캐나다인을 만나 결혼해서 캐나다에서 살던 팡떵은
지진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달려와 구조대원으로 합류한다.
팡다 역시 여행업체 사장으로 성공한 삶을 살다가
지진 소식을 듣고 구호품을 들고 재난현장을 찾아 구조대원으로 일한다.
그들이 구조대 사이에서 32년만에 다시 제회하는 장면도,
결정적인 부분은 생략하고 보여주지 않는다.
상투적일 수 있는 부분을 생략하고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대치하는 이런 기법은
이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과감한 생략이 영화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대중적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천박한 감성적 아류로 빠트리지도 않는다.
지진으로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고 무덤까지 있던 딸이
32년만에 살아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할 때도
상투적인 눈물씬이 아니라
감정의 칼날을 무섭게 조절하여 억제함으로써
놀라운 균형감을 찾는다.
자연재해를 소재로 한 인간 드라마인 [대지진]은
잘 다듬어진 이야기와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펑 샤오강 감독의 연출이 조화를 빚으면서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 그것을 치유하는 놀라운 영화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