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제2회 길거리탁구 전국대회가 열렸다. 국민생활체육 전국 탁구연합회가 본격적인 주체로 나선 동 대회는 작년 1회 때와 달리 시・도단체전을 제외하고 트리플복식과 포어핸드 릴레이 등 새로운 방식의 경기들을 추가해 흥미를 배가시켰다. 최초로 인터넷으로 참가신청을 받은 일반단식도 흥미를 끌었다. 무거운 주제를 배제하고 온전히 길거리탁구만을 위한 대회로 승화시킨 셈. 지나가다 이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행인처럼 그 현장을 지켜봤다.
두 번째 길거리탁구 전국대회가 지난 달 17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 광장에서 열렸다. 99년 10월 말 같은 장소에서 첫 발을 내딛으며 새로운 놀이문화의 탄생을 선포했던 길거리탁구는 정확히 1년 뒤인 작년 10월 말, ‘한반도 길거리탁구대회’라는 이름으로 한 해동안의 결산잔치를 임진각에서 치른 바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던 이날, 200여명의 참가선수와 관객 등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애초의 출발지이자 본거지인 종로에서 새삼 뜻깊은 결산무대를 가진 것이다.
한국마사회가 공식 스폰서를 자처해준 까닭으로 ‘한국마사회가 후원하는’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번 제2회 길거리탁구 전국대회는 작년 대회와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선은 국내 생활탁구를 총괄하는 국민생활체육 전국 탁구연합회(회장 박두만)가 행사의 주체로 나서면서 보다 안정된 체계를 갖췄다. 그에 따라 길거리탁구 최초기획자 최진구 씨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회진행에 신명을 더하는 모습이었다.
‘남북통일 염원’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끌어안으려 했던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길거리탁구만을 위한 행사로 꾸며진 것도 달라진 점. 주최측은 각종 의전행사로 본말이 전도될 수 있었던 우려를 떨쳐내는 한편 잘 짜여진 행사로 새롭게 자리를 굳히고 있는 길거리탁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신경을 썼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주말 10연승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청경기(왕중왕전) 외에도 국내 대회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출전신청을 받은 일반단식, 현장에서 즉석으로 참가신청을 받은 트리플복식과 포어핸드 릴레이 등은 길거리탁구에서만 볼 수 있는 ‘참신한 충격’들이었다. 작년 대회의 시・도단체전을 제외한 대신 추가한 이벤트성의 경기들은 길거리탁구만의 특성을 살려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왕중왕전・일반단식
오전 10시, 주말마다의 행사에서 10연승을 거뒀던 실력자들을 초청해 벌인 왕중왕전으로 문을 열었다. 한 해의 결산이라는 점에서 보면 왕중왕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 이 부문에는 특히 얼마 전 새로 길거리탁구의 열기가 전파된 강원도 춘천의 실력자들도 가세하여 흥미를 끌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인 신광호 씨가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우승자는 SMK 코리아오픈을 기념하여 잠실에서 열렸던 대회 연승자인 부천출신 임교륜 씨에게 돌아갔다. 임교륜 씨는 여성답지 않은 매서운 솜씨를 과시하며 4강에 오른 박미영 씨와의 성대결을 승리로 이끈 뒤 결승에서 신광호 씨를 가볍게 물리쳐 2대 왕중왕에 올랐다.
뒤이어 펼쳐진 일반단식에서는 생활탁구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종로구청 소속의 선수들이 상위를 휩쓸어 부러움을 샀다. 우승 유재일 씨, 준우승 이은재 씨. 길거리탁구의 본거지가 종로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선전이 우연만은 아닌 듯. 이 부문에서는 성적보다도 생활탁구인들에게는 아직 활성화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인터넷을 통해 출전신청을 받은
최초의 시도였다는데 더 많은 의의가 있는 경기였다.
트리플복식.포어핸드릴레이
“게임에 졌다고 해서 바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트리플복식과 포어핸드릴레이가 있습니다. 중복출전 신청도 가능합니다. 함께 하십시오.” 단식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를 통해 쉴 새없이 울려퍼진 최진구 씨의 목소리. 그리고 오후에는 실제로 공식 실내경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안한(?) 경기가 진행되었다.
세 명이 한 조를 꾸려 복식경기를 펼친 트리플복식과, 네명이 한 조를 꾸려 기록대결을 벌인 포어핸드릴레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늘어난 한 명으로 인해 오히려 숨가쁜 풋-워크가 요구된 트리플 복식, 3분 동안 한 명이 공을 받아주고 세 명이 돌아가면서 공을 넘기는 횟수로 순위를 정한 포어핸드 릴레이는 길거리에서 탁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해했던 행인들의 시선을 더더욱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벤트 중의 이벤트였다.
대회를 주관한 연합회 관계자들조차 좀더 연구검토를 거쳐 실내경기에 도입해도 괜찮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 두 부문의 새로운 게임도 모두 종로구청 선수들이 휩쓸어 갔다는 점. 일반단식 우승자 유재일 씨는 이로써 1등 상품으로 주어진 쌀만 세 가마!
의전행사
길거리탁구 탄생의 애초 목적은 탁구홍보. 그런 면에서 각종 길거리 경기도 경기였지만 도중에 열린 다채로운 행사도 수많은 새로운 탁구팬들을 만들어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오후 1시 40분 경에는 길거리탁구 댄싱팀으로 나선 MaR의 식전 축하공연이 있었고, 이어진 개회식에서는 한국마사회 탁구단의 맏언니 한광선과 막내 윤지혜가 시범경기를 통해 각종 다이나믹한 탁구묘기를 선보였다. 직후에는 또한 ‘스타’ 현정화 코치의 팬사인회로 행사장을 찾은 이들을 즐겁게 했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뉴라운드로 타격을 받고 있는 우리 농가의 시련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농산물들로 이날의 부상을 수상했다는 점. 1등 상품에는 쌀 20kg 한 가마, 2등 상품은 갓김치, 3등 상품은 배추김치가 각각의 수상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밖에 (주)참피온에서 최고급 러버와 라켓케이스를 순위에 관계없이 전 입상자에게 상품으로 내걸기도 했으며, 작년 대회 스폰서였던 박정어학원에서도 협찬품을 보내왔다.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과 시류를 놓치지 않는 상품들, 이 모두는 역시 정해진 규칙과 관습에만 얽매이지 않는 길거리탁구의 발랄함과 도전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광경들이었다. 이는 또한 이날도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닌 최진구 씨의 기획력을 제도권의 많은 탁구인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길거리탁구가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15분 경까지 성황리에 치러진 이날의 경기였지만 몇 가지 개선점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같은 날 별도의 결산대회를 치러 함께 하지 못한 대구의 길거리 탁구에서 보듯 보다 철저한 기획과 실천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전국의 길거리탁구를 응집해내야 한다는 점과 인터넷 이용에 있어 아직은 뚜렷이 드러난 한계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든 매니아들이 자유롭게 참가를 고려할 수 있도록 일정조정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많은 참가자들의 지적사항.
하기야 시행착오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이번 대회가 작년 대회에 비해 한결 안정되고 짜임새있게 펼쳐진 것처럼, 새롭게 드러난 문제들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와 개선이 이뤄질 때 길거리탁구는 그 독특함에 한층 무게감을 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발전해가는 길거리탁구는 또한 한국탁구가 굳건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튼실한 보약이 되어줄 것이다. 한국 탁구계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길거리탁구가 있다!
동 대회는 한국마사회,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고 (주)참피온, 월간탁구, 디자인포럼이 협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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