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멀고 지루한 길,
그러나 흐뭇한 뒷 얘기
/梅谷堂 김 경숙
*일시: '11.3/19, 24;20 신갈 출발
*날씨: 새벽 짙은 안개, 그 후 맑음
(04:06) 도래기재(770m) 도착
(04:13) 산행 시작
(05:20) 헬기장
(05;40) 정자가 있는 쉼터
(06;32) ▲구룡산(1,345.7Km, 헬기장), 도래기재 5.54Km/ 태백산 14.2Km
(06;58) 고직령(1,231m), 곰넘이재 3.65Km/ 구룡산 1.35Km/ 행여동 2Km
(07;36) 곰넘이재(참새골 입구)
(07;43) 방화선 오름길 다시 시작(구룡산에서 내려오며 시작되었던 방화선이
곰넘이재를 지나 계단길 올라선 후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남)
(07;56) 헬기장
(08;06) 방화선 끝나는 지점, 신선봉 올려다 보며..
(08;11) 산죽군락 오름길
(08;20) 로프 오름길
(08;21) 구조목 현위치 No. 5-19
(08;28) ▲신선봉(1,280m, 정상에 경주손씨 묘1기)-점심식사(30여분간 휴식겸)
(09;23) 신선봉 지나 첫번째 봉우리, 우람한 소나무 몇그루
(09;50) 1,141m봉
(09;55) ▲차돌배기, 태백산 10Km/ 참새골입구(곰넘이재) 6Km/ 석문동 6Km
(10;10) 동북으로 돌아 신선봉과 마주하는 지점 이정표, 태백산 8Km
/차돌배기 4Km(이정표 거리측정 ?)
(10;15) 겨우살이 군락지(일행 겨우살이 채취장소)
(10;43) 1,174m봉, 나무소개푯말 여러개 꽂힌 쉼터, 벤치 두개
(10;45) 겨우살이 대단위 군락지
(11;01) 우람한 참나무 몇그루 있는 중간 봉우리, 진달래 군락지로 이어짐
(11;30) ▲깃대배기봉 1(1,370m, 태백시 산악회 표지석),
부쇠봉 3,26Km/ 차돌배기 3.6Km/ 두리봉 0.5Km
(11;42) ▲깃대배기봉 2(1,368m, 산림청 표지석)
(11;46) 나무데크(깃대배기봉숲 안내판)
(12;26) 산죽 군락
(12;44) 이정표, 부쇠봉 0.4Km, 백천계곡 5Km/ 태백산 1.3Km
(12;51) 부쇠봉. 천제단 갈림길, 부쇠봉 0.2Km/ 천제단 1.0Km
/ 봉화백천계곡 3.7Km/ 청옥산 14.9Km
(12;53) 부쇠봉 전망대(문수봉, 진바위봉, 청옥산 조망)
(12;57) ▲부쇠봉(1,546.5m, 부소봉), 헬기장
(13;14) 문수봉갈림길(1,546m) 이정표, 천제단 0.8Km/ 문수봉 2.2Km
(13;24) 천제단(하제단)
(13;33) ▲태백산 정상(1,560.6m), 천제단과 태백산 표지석
(13;41) ▲장군봉(1,566.7Km, 장군제단)- 실질적 태백산 정상
(14;12) 유일사 갈림길
(14;21) 유일사 능선갈림길, 사길령매표소 2.5Km/ 천제단 2.1Km
/ 유일사 450m
(14;24) 유일사쉼터 갈림길, 사길령매표소 1.9Km/ 유일사 쉼터 ?
구조목 No. 2
(14;44) ▲1,174m봉, 사길령 마지막 오름길
(14;51) 사길치(1,002m, 새길치), 사길령매표소 0.5Km/ 유일사 쉼터 19Km
/ 천제단 3.6Km-태백산 산령각
(15;01) 사길령 매표소
(15;14) 화방재(950m) 도착
(17;00) 영월 한반도지형 선암마을 방문(1시간 관광)
이야기는 늘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은 때로는 위
험 부담을 안고 다가서기도 하지만, 대체로 찐한 애정을 낳고 좋은 경험이 되어 아
름다운 뒷 얘기를 남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가슴에 담아만 둔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세상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지만, 그래도 가슴에 묻어두고 내놓지 못해 사라지고마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고운 사람의 가슴에서 체험되고 잉태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여러사람이 함께 느끼고 즐거워 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이 아니겠는가? 나 또한 행복했던 순간순간의 특별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의 삶에
밑거름이 된다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에, 산뜻한 봄하
늘을 나비가 날 듯 경쾌한 마음으로 또 다시 한 구간의 글산을 이어보고자 한다.
<사진;산샤2님/ 영월 한반도지형, 선암마을에서>
낮에는 지인님을 만나 쭈꾸미 먹으러 서해안을 다녀와 잠 한숨 못이룬 채 무박 산
행길에 올랐다. 쭈꾸미 사주시며 '눈길 미끄러지지 말고 쭈꾸미처럼 찐득찐득 산등
성이 잘 붙어 다니다 오라' 하신다.ㅎㅎ.. 돌아와 생각 해보니 쭈꾸미 먹은 힘으로
그 역경 용케 견디어냈는가 보다. 정말이다. 내겐 피할 수 없는 역경이었다. 하필이
면 왜 컨디션은 또 장날을 택하였기에..? 늘 그러하였듯 큰 산행 있는 날은 고난에
고난을 안겨주신다. 그래도 이 나이에 그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신혼 첫날
밤을 맞이하듯 하얀 태백의 품에 신선하고도 붉디붉은 열정의 발자국을 인연의 증
표로 남기고 돌아왔다.^^
두주만에 도래기재에 다시 선 시간 04;06이다. 앞서 다녀갔기에 어둠속에서도 궁금
증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리는 오르막들을 어둠속에서 어찌 치고나가
야 할지 그것만이 미지수다. 하루의 무사함을 마음속으로 빌며 도래기재에서의 인증
샷을 남긴 후 서서히 어둠과 친숙해지는 훈련길에 올랐다. 지난 구간 산행 종료시에
얼핏 보았건만 무심히 다가서는 어둠속에서 계단길이 앞을 가로막아 서며 긴 오르막
을 예고한다. 한참을 오른다. 정말 생각보다 훨씬 더 길게 목재계단길로 숨가뿐 산행
이 시작 되었다.
* 산행코스 ; 도래기재-<5.54Km>-구룡산-<4.96Km>-신선봉-<5.7Km>-
깃대배기봉-<2.8Km>-부쇠봉-<0.7Km>-태백산정상-<4.5Km>
사길령-<0.6Km>-화방재
* 산행거리 : 대간거리 24.8km/접속거리 0km/실거리 24.8km(11시간)
경상북도와 강원도에 걸쳐 있는 도래기재~화방재(어평제) 구간은 백두대간에서도
최고 오지에 속하는 산줄기다. 특히 이 구간은 구룡산, 신선봉, 깃대배기 등 봉우리가
여럿 솟아있지만, 천재단이 있는 태백산을 제외하고는 등산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들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능선의 굴곡이 심하고, 방향의 뒤틀림이 심한 곳이 많아 독도에 능숙하지 않
은 사람은 헤매기 딱 좋은 구간이다. 능선길에서 민가까지 보통 반 나절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일단 대간길에 오르면 중도에 포기하는 것보다 왠만하면 끝까지 주파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 특히 북서쪽은 군사통제구역이므로 절대 그쪽 방향으로는 하산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비행기 굉음과 총소리에 놀라 당황하는 일이 없어야 되겠다. 홀로
산행길에 들었을 때에는 마음 가짐을 든든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되면서..
도래기재에서 화방재까지의 산행거리는 약 24.8Km이다. 아무런 사고 없이 줄곧 걷
는다면 10~12시간은 잡아야 한다. 하기에 당일 산행코스로는 어렵고 무박이나 1박2
일로 나누어 산행하는 것이 좋다.
도래기재에는 일제 때 고개 북서쪽에 위치한 금정광산에서 캐낸 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간을 뚫어 만든 금정터널이 있다. 지금은 터널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998번 지
방도(2차선 포장도로)가 대간을 가로지른다. 금정굴 입구에는 정자와 장승이 서있다.
터널 위 왼쪽에 표지기가 있는 급사면으로 15분 정도 올라서면 묘가 나타나고, 낙엽
이 발목을 덮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철탑을 만난다. 철탑에서 15분쯤
능선길을 따르면 대간을 가로지르는 임도에 닿는다(도래기재에서 40분 거리).
임도를 가로질러 920m봉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싸리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봉우
리 두개를 오르내리며 진달래나무가 유난히 많은 곳을 지나면, 임도를 떠난지 35분
쯤 뒤에 헬기장 두곳을 만나게 된다.
두번째 헬기장에서 날등 왼쪽길을 따르면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헬기장을
떠난지 20분만에 다시 헬기장과 임도에 닿는다. 첫번째 임도에서 1시간쯤 걸린다.
<사진;박잎푸른님>
어둠속이라 그런가. 일행들이 쉼터가 있어도 머무르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다. 상야
님께선 얼른 터지지 않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시며 한군데도 놓치지 않고 담으시려
애를 쓰신다. 그렇잖아도 초장부터 늦어진 걸음인지라 왠만하면 날이 밝거든 사진을
찍자 말씀 드려본다. 일행들은 저만큼 어둠속에 불빛조차 남기워주지 않고 훌쩍 떠
나버리곤 한다. 가다보면 만나질 일인데도 짙은 어둠속에 을씨년스런 바람소리 때문
이었을까. 자꾸 마음이 조급하여진다. 어둠에 바람소리에 거친 숨소리가 처량하게
섞인다. 때론 내 입에서 토해낸 입김이 귀신의 치맛자락이 되어 언뜻 눈앞을 스치다
가 거센 바람에 흩어져버린다. 아~ 이 길이 혼자 가는 길이라면 난 어찌할뻔 하였는
가. 뒤쫓아주시는 상야님과 윤대장님이 한없이 고맙기만한 밤의 대간길, 임도 쉼터엔
'구룡산 숲안내'와 '산행안내도'가 나란이 서있다. 여기까지 1시간 25분정도 걸렸다.
(05;40)
두번째 임도에서는 임도 건너면 절개지로 곧장 올라야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멘 사람
에게는 힘이 무척 드는 구간이다. 오늘따라 등에 진 짐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거친 바
람에도 쉬이 날아가지 않는 땀방울이 진액이 되어 몸안에서 끈적인다. 진달래나무가
얼굴을 때리는 급사면을 힘들게 30분 정도 올라가니 구룡산 남서쪽 1.5Km 전에 위치
한 1,256m봉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1,256m봉을 우회하여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나아가니 구룡산
(1,346m) 서쪽 1Km 지점의 안부다. 안부에서 동쪽 구룡산 정상을 향해 오르자 집채
만한 바위가 나타나고, 계속 오름길 옆으로 생김새가 비슷한 바위 세개 정도를 스치
며 15분쯤 걸으니 다시 바위와 고사목이 나타난다. 희끄무레한 산의 친구들을 위로
삼아 겨우겨우 어둠을 헤쳐나가는가 했는데, 어둠이 벗겨지며 보니 짙은 안개가 어
둠을 덧칠하고 있었다. 밤의 대간길에 뒤쳐진 내게 이 밤이 왜 그리도 혼탁하였는지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야 어림짐작을 해본다. 음습한 구간이라 하더니 정말 아
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밤의 그림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더라면 어찌
할뻔 하였을까, 섬뜩한 생각에 온몸이 오싹하여 왔다.
그 후 다음 헬기장이 있는 구룡산 정상에 닿은 시간은 두번째 임도에서 55분 지난
06;32이다. 도래기재에서 출발하여 2시간 20분 걸렸다.
구룡산 정상은 나무 한 그루 없이 사방 막힘이 없는 곳이다. 동쪽 가까이로 신선봉
이 보이고, 그 북동쪽으로 깃대배기봉과 태백산을 지나 함백산까지 길게 뻗어 오른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그러나 어둠과 안개가 가시지 않은 이 시각에
구룡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아무것도 없다.
늘 그러하듯 무박의 묘미가 일출광경을 목격하는 일인데, 오늘은 애시당초 짙은 안
개로 꿈조차 꾸지 않기로 한다. 조망이 없으니 구룡산에서도 인증샷을 날린 후 쉼 없
는 전진이 계속되었다.
구룡산 정상에서 곰너미재로 내려설 때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헬기장 오른쪽
(남동쪽) 모서리로 내려서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방화선이 나온다. 흙과 돌이 뒤
섞인 급사면을 20분쯤 내려서면 방화선이 누그러들면서 구조목 No.5-27을 지나치게
되고, 이내 고직령 삼거리에 내려선다.
고직령에 닿기 바로전부터 자작나무의 자태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핀란드식 사
우나탕에서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로 팔·다리·어깨를 두드린단다. 이는 혈액순
환을 좋게 한다고 하며, 나무의 즙(汁)은 자양강장과 피부병에 쓰이지만 도시 공해
에는 매우 약하다. 이 나무는 무리지어 있는 것이 멋있는데, 백두산 원시림의 자작나
무 숲은 흰색의 수피로 장관을 이룬다. 한국에서 자라는 같은 속(屬) 식물로는 좀자
작나무(B. fruticosa)· 박달나무(B. schmidtii)· 고채목(B.ermanii var. communis)·
거제수나무(B. costata), 사스레나무를 비롯한 10여 종(種)이 있는데 모두 비슷한
용도로 쓸 수 있다.
자작나무 잎에서 추출한 원료로는 자일리톨 껌을 만드는데 쓰인다. 그리고 자작나
무에서는 자작나무 겨우살이, 자작나무 상황버섯, 말굽버섯, 차가버섯등 좋은 약재
가 많이 자라기도 한다. 산에 가보면 2월-4월에 자작나무 수액을 뽑기위해 나무에
가는 관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만큼 우리몸에 좋은 나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눈처럼 하얀 껍질과 시원스럽게 뻗은 키가 인상적이고 서양에서는 '숲속의
여왕'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나무다. 그런데 이곳의 자작나무들 껍질은 자갈색을
띄고 있는데, 어린 나무의 가지가 자갈색을 띈다 하더니 아직 어려서인가 아니면 다
른 종류의 자작나무인가? 옳거니, 생김새로 보나 색으로 보아 이네들은 거제수나무
로구나.
거제수나무의 가지는 대체로 자갈색을 띄는데, 어린 나무는 오래 자란 나무에 비해
어두운 색(회갈색)을 띄다가 왠만큼 자라게 되면 수피가 벗겨지면서 붉은 빛(자갈색)
을 띄게 된다. 초기의 어두운 수피가 벗겨지면 차츰 밝은 빛을 띄게 된다.
그리고 박달나무의 수피는 암회색을 띄며 단단하기로도 아주 유명하다. 방망이나
홍두깨, 방아와 절구의 공이를 만든다는 박달나무는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거워서
예전엔 수레바퀴나 바퀴살을 만들기도 했다. 살림살이 만드는 데도 쓸모가 많아서 떡
살판과 다식판도 만들고, 다듬이질 방망이, 머리빗으로도.. 그러고 보니 어느 시인
말마따나 사람보다 더 낫다라는 말이 타당성 있는 말이렷다. 그려그려 나보다 너희들
이 훨씬 낫구만이라!
산정무한의 저자인 정비석선생은 자작나무를 여인의 흰 속살로 표현해서 유명세
를 더하였다 하는데..?
삼거리 오른쪽으로 100m쯤 내려가면 산령각이 있다. 이 산령각은 옛 보부상들이
호환[戶還 ;조선 후기 환곡의 분배방식의 하나로 가호(家戶)를 기준으로 환곡을 분
급하고 징수하는 것을 말하며, 오가작통(五家作統)법으로 가호를 편성한 통을 단위
로 해서 분배된다 하여 통환(統還)이라고도 함]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지은 곳인데,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4일에 제를 올린다.
고직령(1,231m)에 닿은 시간 06;58이다. 이정표, 곰넘이재 3.65Km
/ 구룡산 1.35Km/ 행여동 2Km
이곳도 역시 자작나무과인 거제수나무에 표지판이 부착되어 있다. 재앙을 쫓는다
하여 거제수라 불리우는 이 나무는 고로쇠나무와 같이 수액을 채취하여 약으로도 쓰
인다. 위장병에 효험이 있으며, 잘 자란 나무줄기는 건축재, 조각재등 특수용재로 쓰
인다. "고로쇠약수 다음으로 거제수약수"란 말이 있듯 고로쇠약수가 거제수 약수보
다 많이 알려져 있으나, 거제수 약수가 고로쇠 약수보다 당도가 조금 떨어지고 약간
씁쓸한 맛이 있어 인기는 좀 떨어지지만 오히려 약효가 뛰어나다고 소문났다.(박꽃
향기가 마셔본 바로는 거제수 약수가 고로쇠 수액보다 농도가 낮은 듯한 느낌이 들
었음. 이는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됨.)
마르나 젖으나 불에 넣으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원래 태생이 추운 북쪽이라 남쪽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나무이나 거제수는 지리산
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겐 고로쇠 수액이 끝날 무렵이면 거제수 수액
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눈처럼 하얀 껍질이 비늘처럼 벗겨지고 신비감을 주는 자작나무
는 하늘을 향해 시원스럽게 뻗으며 훌쩍한 키가 인상적이고 미끈한 나무이다. 그러나
주로 태백 윗쪽 지방에 사는 호리호리한 나무라 가냘픈 체구로 어찌 시베리아의 혹한
을 견뎌내는가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인간의 지혜가 지금 같지 않았던 먼 옛날, 자작나무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神木
으로 무당(shaman)의 상징이었다. 예사로운 나무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혼례를 일컬어 흔히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말한다. 그 글자를 풀어보면 자작나무
(樺-華) 껍질에 불을 붙여(燭)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자작나무의 신비로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로부터 민간요법
과 한방에서도 무병장수의 다양한 약재로 사용되는데 그 효능은 끝이 없다.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라는 거다.
실제로 러시아나 핀란드 같은 추운 나라에서는 이 나무의 수액과 추출물, 껍질들이
다양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한다. 목재가 워낙 단단하여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이 나무
에 새겨졌고, 천년 세월을 이겨낸 신라 천마총의 벽화도 바탕재료는 자작나무이다.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자작나무 껍질이 그 신비로움의 원천이다. 요즘 우리가
흔히 씹고 있는 기능성 껌인 자일리톨도 자작나무 추출물이라는 것을 아시는가?
또한 러시아에서 멋쟁이로 통하려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명함을 가져야 한단다.
자작나무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와 함께 해온 나무라는 증거이다.
화(樺) 또는 백화(白樺)라고 부르는 자작나무는 암수 한그루로서 꽃은 4월에 피며,
암꽃은 위로 향하고 수컷은 아래로 늘어진다. 열매는 9월에 익고 아래로 처져 매달
린다.
어찌한다? 갈길은 먼데 자작나무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저 먼 길을 언제
다 갈거나? 에라 모르겠다. 언젠간 끝날 일이니 이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 하고
실컷 놀다가나 가야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문화속에서도 박달나무는 존재하였다. 한국에서는 단군이 처음
신단수 아래에 고조선을 열었다고 하는데, 그 신단수가 박달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단군’의 ‘단(檀)’은 박달나무라는 뜻의 한자이다. 《규원사화》<단군기〉에 ‘東語
謂檀曰朴達, 或曰白達’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단(檀)’을 ‘박달(朴達)’ 혹은 ‘백달(白
達)’이라고 불렀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박달나무를 베려고 도끼로 찍으면 오히려
도끼날이 부러질 정도로 단단하다고 하여 ‘도끼날이 부러지는 자작나무’란 뜻으로
'斧折樺(부절화)' 즉,‘オノオレカンバ’라고 부른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야겠다. 가다가 흰 자작나무도 만나봐야
하니께..^^
곰넘이재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그대로 방화선을 따라 직진한다. 밋밋한 1,231m봉
을 지나 산돼지가 파헤친 흔적과 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 능선길을 따라 약 25분
쯤 더 가면 흰 바위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돌아 나가면 움막터가 있는 곰넘이재가
나온다. 곰넘이재에 닿기전 구조목 No. 5-23 방화선 언저리엔 온통 거제수나무가 군
락을 이루고 있다. 혼자는 외로워 심심산중에 군락을 이룬다 하더니..
곰넘이재 오른쪽(남쪽)으로는 실두동 ,진조동쪽으로 하산길이 잘 나 있다. 구룡산
정상에서 45분쯤 걸린다. 곰넘이재 움막터가 야영하기에 좋다. 우측으로 빠지면 참
새골로 내려서게 된다. 탈출할 기회는 이곳이 적합한데 이곳을 지나면 어쨋거나 화
방재까지 이어서 가야한다.
곰넘이재(참새골 입구)에 내려서니 왕손님이 메고오신 딸기를 내놓는다. 아카시아
꿀에 재어서 가져왔다 하면서.. 어둠속에서 먹는 달콤한 딸기 맛, 그것이야말로 참말
꿀딸기 맛이로구나. 얼른 한술 떠서 입안에 넣고는 한발 앞서 계단길을 오른다.
멈출 수도 쉬어갈 수도 없는 길, 무조건 가고 보는기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속엔
오로지 좋은 생각만을 품은 채 눈위에 펼쳐놓은 산의 풍경과 나무들을 벗삼고, 가끔
씩 하늘이 열리는 곳엔 파란 하늘 한자락쯤 눈자위에 걸쳐넣으면, 세상은 모두 내편
이 된다. 중간중간 보아왔던 구조목 No.5-27 이 No.5-0 이 될 때까지..(사실 구조목
No.5-0 이 되는 지점이 부쇠봉이 될 것이라 짐작을 하고 걸었다. 그런데 생각했던대
로 그 번호는 부쇠봉에서 끝이 난다. No.5-0 이 아닌 No.5-1로..)
곰넘이재를 지나면서 방화선이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올라서고 보니 방화선은 뚜
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방화선이라고 해야 겨우 2m정도 폭의 오솔길이어서, 만일
산불이 난다해도 불길을 막는데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다. 대간길 가는 사람들
에게는 도움이 되려는가 모르지만..
뜻밖에도 편안한 길을 만나고 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도 생기는 듯 발
걸음이 가벼워진다. 이 길도 산돼지가 파헤쳐 놓은 흔적으로 눈이 덮여 있기는 하나
움푹움푹 패인 곳이 많이 보이는 능선이다. 돌로 쌓은 헬기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올
라서면 지금까지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던 방화선이 북쪽으로 꺾인다.
곰넘이재에서 18분만에 돌로 쌓은 헬기장에 닿고, 헬기장 오르기 전부터 겨우살이
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이후 방화선을 따라 구조목 No.5-21 있는 지점(벤치가 놓여있다)에 올랐다가 안부
를 거쳐 10분가량 1,300m 정도 높이의 신선봉을 바라보며 진행하면, 방화선이 끝나
면서 묘 1기가 나타난다(곰넘이재에서 30분거리).
구룡산 정상에서 신선봉 남쪽 아래에 있는 묘까지는 방향이 자주 바뀐다. 안개가
끼어 시야가 나쁘더라도 방화선을 따르다보면, 방화선은 묘에서 끝이난다. 방화선이
끝나는 곳에서 야영이 가능하다.
이제부터 신선봉 정상까지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푸른 산죽길을 오르고 나니 누
렇게 져버린 산죽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후 얼마간 로프가 쳐진 급경사길을 오르다
구조목 No.5-19를 지나면서 20여분만에 신선봉 정상이다.
가뿐 숨 몰아쉬며 겨우 신선봉 정상(1,280m)에 올라서니 앞서 오른 일행들이 아
침식사를 끓이고 있다. "이그 숨차!!" (08;29)
신선봉 정상에는 정남향을 약간 비켜서 경주 손씨 묘가 있다.(사진;산샤2님)
두분(산샤2님, 주교동님 ) 화려한 패션의 파란 빛이 좋아 가운데 비집고 서보았다.
대간 2기팀에는 멋쟁이들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베스트드레서(the best dresser)
를 뽑으라면? 난 절대로 못 뽑제~! 늘 멋진 모습들에 감사하고..^^
상야님께서 수고해 주신 덕분에 나누는 기쁨까지도? 주교동님 예쁜 포즈 취해주
셔서 감사~ㅎㅎ..^^
신선봉 이정표는 바닥에..?
아직도 대간길은 안개속에 묻혀 있고 신선봉에서의 조망은 없다. 앞서 오른 일행
들이 떠나고 난 후, 서둘러 아침식사를 끝내고는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신선봉에
서의 내림길은 급경사길이다.
태백산쪽은 묘를 바라보고 서서 오른쪽(남동쪽)으로 향해야 한다. 산죽군락 급
경사를 한동안 내려선 다음 신선봉 정상에서 15분이 지나면서 첫번째 봉우리에
닿게 되는데, 힘들게 올라선 봉우리엔 크게 자란 소나무 몇그루가 우뚝 서있다.
(09;23)
그후 계속하여 산죽길을 따라 4개의 봉을 더 지난다. 신선봉에서 1시간 정도 거
리에서 만나는 날등이 좁은 능선에는 잡목을 제거하여 텐트를 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 1,141m봉이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10분 가량 내려서면 춘시리골 상류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야영터에서 10분쯤 올라가면 산죽군락 속의 빈터에 갈림길이 보이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왼쪽 산죽숲으로 꺾어 1분 정도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잘 보
면 다섯개의 갈림길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인 곳이다.
09;55분에 도착한 곳 차돌배기이다 .(1,277m, 석문동갈림길),
이정표, 태백산 10Km/ 참새골 입구 6Km/ 석문동 6Km..
사거리에서 앞에 보이는 밋밋한 봉에 올라 왼쪽으로 꺾은(방위각 30도 방향) 다
음 내려선다. 왼쪽 사면으로 돌아 진행하면 지름길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은 태백산 사고터가 있는 각화산(1,177m)으로 가는 산줄기다.
차돌배기에서의 석문동방향은 위급시에 탈출로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탈출로
라고는 하나 6Km를 내려가야 하고, 수해 등으로 하여 계곡길이 무너지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등 길이 거칠어서 그리 수월한 길은 아닌 듯 하다. 석문동까지
는 2시간 남짓 걸리며 우기 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석문동에는 몇년전
(2008년 8월)에 수해로 인하여 인명피해를 입는 등 가슴 아픈 사연도 전해진다.
사거리 이후로는 길이 수월하다. 주릉의 자그마한 봉들을 왼쪽 사면으로 나가다
대간을 넘어 오른쪽 사면으로 나간다. 사거리에서 15분정도 진행하면 이정표가 서
있다. 태백산 8Km/ 차돌배기 4Km라 표시되어 있는데 잘못 되었다. 누군가 숫자를
긁어놓았다. 거리표시가 잘못 된 것을 알고 그리한 듯.. 차돌배기 이정표에 태백산
까지 10Km라 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태백산과 차돌배기 거리의 합이 10Km라야 맞
는다. 태백산까지 6Km로 보고 진행을 한다. 이 지점에서는 좌측 건너편으로 신선
봉이 마주보인다.(10;10)
이곳부터 1,174m봉까지는 왼쪽, 오른쪽으로 6번을 반복하여 진행하여야 한다.
신선봉이 마주보이는 이정표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 사면으로 돌다 왼쪽으로 진행
후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좌측으로 진행하려는데, 참나무 군락지에서 우리 일행들
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에 올라가 겨우살이를 채취하고 있었다. 인사 한마디 건네니 먼저 따놓은 겨
우살이를 건네주신다. 챙겨서 먼저 자리를 떠나 이곳부터는 잠시 홀로 진행을 한다.
상야님께서 금방 쫓아오시려니 하고 진행을 하는데 오시지를 않아 뒤 돌아보기를
수차례, 얼마 후에야 뒤를 쫓는 소리가 들려 안심을 하고서..ㅎㅎ
미끄러운 눈길을 한참 내리고 1,174m봉에 닿은 후 내려가면 산죽군락이 끝나고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에 버티고 서 있는 노송 한 그루를 만난다. 선돌골과 장바위
골 안부로, 야영하기에 좋다. 왼쪽 선돌골로 내려서면 물을 구할 수 있다(차돌배기
에서 약 1시간 거리, 지도상에 고갯길이라 표시된 곳).
이곳부터는 참나무군락지로 겨우살이가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다. 참새가 방앗
간을 그냥 못지나친다고 우리 일행들이 이곳을 그냥 지났을리는 없고, 잘은 모르
지만 낮은 곳에 있는 것은 채취하여 가지고 갔을 것으로 미뤄 짐작을 한다. 욕심
은 났지만 얻은 것만으로도 배낭을 꽉꽉 채웠더니 꽤나 무게가 느껴졌다. 혹여
저것들을 채취한다 해도 메고 갈 능력이 없으니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한번 가까
운 곳으로 올라보리라.
안부에서 깃대배기봉(1,370m)까지는 주릉을 따르는 길과 주릉 왼쪽 사면을 빙
돌아 깃대배기 첫번째 봉과 두 번째 봉 사이의 안부로 이르는 코스가 있다. 주릉
선상에서는 팔뚝 굵기의 철쭉나무가 들어차 있다. 철쭉나무 군락이 시작되는 곳
에 막 올라서면 굵직굵직한 참나무가 몇그루 서있다. 선돌골 안부에서 50분 걸린
다.
이후 오래된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
깃대배기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능선과 능선자락 사이의 작은 골짜기의 길을 따
라 오른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서 쌓였던 눈이 제법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마알갛
게 녹아내리는 눈길을 조심스럽게 디딘다는 것이 그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엎어지
고 말았다. 타박상으로 잠시 오른쪽 무릎의 통증을 감지하나, 잠시 후 진정을 하고
일어서 진행을 한다. 내리막길이 아니어서 넘어져도 큰 부상은 입지 않아 좋다. 엎
어지면서 코나 안깨지면 다행한 일이고..ㅎㅎ
조심스럽게 디디는 눈길이나 한번 넘어져보고는 더욱 신경을 써가며 진행을 한
다. 깃대배기봉은 산죽으로 덮여 있는 넓은 구릉지대이므로 쉽게 찾을 수 있으나
반대로 종주할 경우에는 독도에 신경써야 한다. 이곳부터는 태백산을 한눈에 바라
보면서 산행할 수 있어 지루한 감이 덜하다. 대간 길에서는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흔적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차돌배기에서 1시간 35분만에 깃대배기봉에 서서..(11;30)
이정표, 부쇠봉 3.26Km/ 두리봉 0.5Km/ 차돌배기 3.6Km.. 아직까지도 부쇠봉까
지는 까마득한 거리다. 그것도 계속 오르막을 쳐야 하는 길이고..
깃대배기봉(1,370m)에서 상야님과 사과 반쪽씩 나눠 먹고 진행하다 보니 또 다
른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있다. 정상석이 두개라는 소리는 들어 알고 왔지만, 다시
한번 인증샷을 날린다. 이곳의 정상석에는 1,368m라 새겨져 있고 산림청에서 세운
것이다.
두개의 깃대배기봉 정상석을 거쳐 4분 진행후 '깃대배기봉 숲' 안내판에 이른다.
깃대배기봉을 지나면서 두번째의 나무데크가 놓여있는 구간이다. 낮은 지대인데
다 눈의 깊이가 꽤 되다보니 나무데크가 눈속에 묻혀 잘 보이질 않는다.
이 일대는 흰 자작나무 군락지이다. 지나는 길옆에 신비롭게도 껍질을 벗은 채
반기는 자작나무가 있기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벗겨진 껍질로 무엇을 할까나?
첫사랑께 편지를 쓸까나, 아니면 나도 이것으로 명함이나 만들어 휴대하고 다닐
까나? 쓰임새가 많을 것 같은 자작나무 껍질이다. 생김새로 보나 껍질 벗는 거로 봐
선 자작나무 중에서도 사스레나무인 듯..(사스레나무와 사스레피나무를 같은 나무
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스레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며 사스레피
나무는 차나무과(茶―科 Theaceae)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우리 나라 남부 해변의
산기슭에 자생하고, 관상수로 흔히 심는다. 특징은 상록교목이며 높이는 1~3m 이고,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갈색이다. 사스레피나무를 제주도에서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앞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태백산 일대에는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겨울자작나무
무리를 이루고도 속에서 터져나오는 외로움
너는 누구냐
명치 끝으로부터 농익은 멍이 배어난다.
도대체 죄많은 중생처럼 늘어서서
자작나무의 이름으로 사할 죄가 무어길래
저리도 흰 빛으로 속을 터뜨려 놓는 걸까
세상이 쏟아놓는 색과
희망 섞인 노래 모두 배제하고
뼈만 솟아 쇤 기침 하는 자태여!
오로지 넌 해와 달과 별을 벗삼고
하늘을 우러러
언땅에 비껴 드리우는 그림자
소슬히 부추겨 일으키며
찬바람도 거쳐갈 곳 없이
신경줄에 헝크린 마음 가야금 연주 되어
울먹이다 아픔으로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대체 너의 죄가 뭐길래
저리도 큰 울음이 되어
태백의 바람소릴 끌어안고
속으로 속으론 검은 숯덩이가 되어 간다.
그러나 만면엔 흰 빛을 토하고
까치 한마리 배회케 하며
(11.03.19)
자작나무 숲에서
자작나무 솟은 숲은
외할머니 참빗살처럼 곧고 윤기가 난다.
동백기름에 흰 머리 빗어내리듯
매끄럽게도 바람을 갈라내어
휘바람소릴 쫓게한다.
바람이 산등성일 달릴 때
눈발은 그 뒤를 쫓고
새집둥지에 숨으려던 눈마저
사정없이 몰아가면
세월을 못이겨 허리굽힌 할머니처럼
한동안 바람결에 굽힐만도 하련만
곧추세운 자작나무 가지엔
마른 기침만 쿨럭일 뿐
외할머니 어깨같은 가지는
쪽진 머리 길게 풀어헤쳐 빗어내리는
참빗살처럼
우는 바람도 잘도 가른다.
품 떠나간 외손녀를 그리워하듯
자작나무 꼭대기에 둥지하나 틀어놓고
이제나 저제나 내 새끼 찾아들날
끼니마다 부뚜막에 밥그릇 숫자세워
까치를 날려 짖게 한다.
언제가 되려나 기별 올 날
자작나무 잎 무성하도록
찬바람 불어 그 잎 다 지도록
그렇게 둥지에 새끼를 품듯
가슴에 외손녀를 품고
바람에 서걱이는 갈잎 되도록
세월에 흰 머리 다 흩어지도록
먼 하늘 올려다 보며
내세를 그리듯 봄을 그리워 하다
외할머니 젖가슴엔
겨울 자작나무 숲처럼
찬바람만 휑 하였다.
자작나무 숲에 외할머니 영혼이 머물듯
그후에도 바람소리 가르는 마른 가지에선
휘바람소리가 난다.
함께 정을 나누던 사람도
외할머니처럼 세상을 떠고나면
겨울자작나무에 바람이 새듯
싸늘한 가슴엔 그리움만 인다.
(11.03,19)
흰 자작나무 군락을 지나 부드러운 길을 따르다가 1,346m봉에서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나아가면 처음으로 주목이 나타난다. 태백산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부쇠봉 오르는 길 이정표 있는 지점이다. 주위는 오래된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이정표, 부쇠봉 0.4Km, 백천계곡 5Km / 태백산 1.3Km/ (12;44)
그후 7분 후엔 부쇠봉(1,546.5m) 오르기 전 안부에 닿게 된다. 주릉을 올라가는
길과 부쇠봉 왼쪽 사면으로 돌아 나가는 길이 있다. 부소봉으로 불리웠던 부쇠봉은
단군의 아들인 부소왕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이곳까지 오르는데는 엄청
난 인내력을 요구한다. 이제는 안아프던 허리까지 뻐근하여 온다. 어이쿠 허리야!
이정표, 부쇠봉 0.2Km/ 천제단 1.0Km
/ 봉화백천계곡 3.7Km/ 청옥산 14.9Km
2분후 부쇠봉 전망대에 닿게 되는데, 전망대에서는 가슴 트이는 대간능선을 관
망할 수 있다. 좌로부터 문수봉, 진바위봉, 멀리 청옥산이 조망된다.(12;53)
전망대에서의 조망이다.
3분후 부쇠봉 정상에서..(12;57)
주릉을 따르다 헬기장에 내려서니 은빛대장님 깔아놓은 유도지가 깔려 있다. 헬
기장 좌측길은 늘 다니던 길이기에 다시 정상을 거쳐 부쇠봉 안부로 되돌아 내렸
다. 안부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부쇠봉 오르기전 뒤
쳐졌던 일행들이 부쇠봉을 거쳐가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벌써 천제단으로 오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유도지를 따라 완만한 능선으로 내릴 걸 하고 후회를 해본다. 안부에서 내리는
길이 가파르고 눈이 녹아내리고 있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애쓴 후에 겨
우 사고없이 천제단으로 향하는 안부에 닿아 걱정을 내려 놓는다. 깃대배기봉에서
1시간 40분정도 걸렸다.(13;17)
'문수봉, 백두대간' 안내푯말서부터는 길이 넓어진다. 태백산의 세개 제단 가운데
하나인 하단을 왼쪽에 끼고 경사길을 올라서면 태백산 천제단(1,560.6m)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백산 표지석 오른쪽으로 300m 거리에 있는 망경사에는 식수와 먹거리,
공중전화 등이 있다. 6월의 망경사 앞에 야생화가 흐드러졌었는데, 당골 내리는 오
솔길에 고광나무꽃(산매화)은 여전히 피고 질테지? 여름의 태백산이 그립구나!
세개의 천제단중 하나인 하단을 지나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어찌나 힘이 들던지? 늘상 이 곳을 거꾸로 내려 쉽게만 지
나다니던 생각에 오늘의 대간길이 눈물겹다. 정말 한발 한발 어렵게 올라야 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중에 뒤돌아 본 조망이다. 힘겹게 오르던 긴 오르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많은 오르막들을 내발로 올랐던가 생각 하니 대견한 생각도 들고..
태백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다. 자연석 편마암으로 이뤄
져 있고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원형제단이며 이 천제단은 중요민속자료 제
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천제를 올리는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고, 강원도민 체육대회 성화 채화도 이곳에서 한다. 천제단은 북쪽 장군봉에
도 이와 비슷한 장군단이 있고, 천제단 남쪽 주릉 아래에도 하제단이 있다.
토요일임에도 태백산 정상은 한가 했다. 일행들도 모두 떠나고 없기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 두분이 있기에 부탁을 하여 상야님과 함께 한 컷
남기운다.
천제단에서..
천제단을 떠나 장군봉으로 향하는 길..
장군봉에서 조망된 문수봉이다.
태백산 정상 부근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生千死千)'이라는 주목이 4.000여
그루 자생하고 있고, 단종대왕의 혼령을 모신 사당과 천제 때 제수로 사용하는 용
정이 있다.
이외에도 태백산 일원에는 명소가 많이 있는데, 당골 광장에 위치한 태백산 석탄
박물관, 금대봉 북동쪽에 위치한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용소, 화지동 중심가의 낙
동강 발원지인 황지못, 산줄기를 뚫고 흐르는 구무소, 화전동의 용연동굴, 혈리굴,
비와야폭포, 미인폭포, 너래폭포, 망경사, 처원사, 백단사, 유일사, 만덕사 등 명소
와 사찰이 많이 있다.
태백에는 제일로 치는 것이 많이 있는데,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물뿌리가 여기
있다. 높은 추전역, 긴 정암터널, 높은 만항재, 수많은 광산터, 희귀식물 등이 그것
이다. 또한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고, 여름철에는 기온이 서늘하여 모기와 열대야
가 없는 쾌적한 곳으로, 최근 태백시는 석탄산업의 퇴조로 형편없이 나빠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원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태백산 정상에서 부소봉을 거쳐 깃대배기봉으로 가는 대간 길을 신라시대에는
하늘고개라는 뜻인 천령이라 불렀다. 그후 고직령과 연결되는 새길치(신로령)가
생기면서 천령으로 사람의 왕래가 뜸해졌다.
천제단에 올라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사방을 둘러보면 장관이 벌어진다. 지금까
지 걸어온 백두대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소백산까지 조망된다. 북쪽으로
는 앞으로 가야 할 함백산과 매봉산을 지나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로 이어지는
대간이 힘차게 뻗어 있다.
다시 천제단 뒤로 이어지는 300m 거리에 20m, 높이 2m 가량 되는 제단에 이르게
되는데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6.7m)이다. 이곳은 6월 중순경에 털진달래와 철
쭉꽃이 만개하며 태백시 산악협회에서 매년 6월초에 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다. 실질
적인 태백산 정상 장군봉에서는 천제단과 모양이 비슷한 장군단이 있다.
마지막으로 장군제단에 들러 무사히 잘 다녀감을 고하고서..
주목군락지에 이르러 뒤돌아본 장군봉의 모습이다.
장군봉 이후는 주목 군락지를 지나 계속 내리막이다.
주목군락지에서 북쪽으로 조망된 함백산과 대간능선..
유일사 갈림길로 내리는 길 경사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보호수 앞에서..
주목군락지에서 경사면을 내리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눈길인데다 푸근한 날씨로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기에, 눈녹은 물이 흘러내리듯 그렇게 정신없이 미끄러지며
뛰어내려야 했다. 14;12, 유일사 갈림길 안부에서..
이정표,'유일사 0.15Km/ 매표소 2.3Km/ 천제단 1.7Km'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태백산도립공원 매표소에서 이곳까지는 사륜구동차가 다
닐 수 있다. 가까운 유일사 앞마당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대간 길은 능선을 따
라 계속 직진한다.
대간을 따르면 약 10분 후에 사거리가 나타난다. 오른쪽은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왼쪽은 조금 전에 지나온 유일사로 가는 옛길이다. 다시 주릉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또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고, 이곳부터 길이 좋아진다.
3분후 유일사쉼터 안부 갈림길에서.. 이정표, 사길령매표소 1.9Km/ 유일사쉼터?
어렵게 한고개 한고개 넘기를 서너차례 고비를 넘기는 것 같다. 마지막 오름길인
1,174m봉을 향해 가는 길..
잠시 후 바위가 있는 1,174m봉을 지나고..
다음에는 주릉이 서서히 북으로 꺾이면서 이어 북사면의 음침한 사면길을 따르게
된다. 그후 길은 평탄해지고 넓은 터에 산령각이 있는 사길치(새길치)가 나온다.
(14;51)
산령각이 있는 사길치까지는 유일사 안부에서 39분 걸렸다. 먼길 달려오며 지친
몸으로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이다.
사길치 산령각도 보부상들이 지어놓은 것이다. 보부상들이 천평을 지나 고직령을
넘어 춘양으로 다니던 길로, 지금도 음력 4월15일에 재를 올리고 있다.
사길치에서 오른쪽 넓은 길로 10분쯤 내려서면 사길치매표소가 나오고 그 아래
팔보암으로 길이 이어진다. 매표소에서 오른쪽 길로 500m쯤 가면 31번 국도가 나오
는데, 대간 길은 목장의 철망이 가로막고 있다.
왼쪽 밭머리를 지나 숲으로 가는 길목에 '백두대간 사길령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사길령표지석 앞에 선 은빛대장님..(사진;이은학대장님)
잠시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송림숲으로 들어서서 사면을 돌아 나아가면 10분 거리
에 31번 국도가 지나는 화방재(어평제)에 이른다.
미끄러운 하산길을 얼마나 달렸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렵게 어렵게 화방재 도
착한 시간 15;14이다.
도래기재에서 04;13 출발하여 꼭 11시간만에 화방재 도착하였다. 처음 출발때부터
일행들과 뚝 떨어져 오름길을 오르게 되어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열심히 달려온 결
과 예상 시간보다는 1시간 단축된 시간에 도착하게 되었다. 박꽃향기 때문에 다른 사
람들까지 선암마을을 못가게 되는게 아닌가 노심초사 하였는데, 계획 하였던대로 모
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 무엇보다 기쁨이 앞섰던 하루였다.
모두 열심히 대간길에 열중하시고 선암마을에서도 즐거운 모습들 보기 좋았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대간길에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
로 서강변에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맑고 청명한 물줄기는 한반도변 선암
마을변에 우리 땅을 그대로 복원하듯 한반도지형을 이뤄 놓았다.
선암마을은 서강의 샛강인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한반도를 꼭 빼닮은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해졌다.
선암마을에는 고려때 선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한때는 역말이라고 불렸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강변마을로서 마을 앞에는 넓은 자갈밭에 수박돌과 잔돌들이
깔려있다. 강 건너편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에 돌단풍이 군락을 이루어서,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영월 장릉에는 단종의 애환과 비애가 서려있다. 조선왕조 500년 사직중 가장
슬픈 역사의 주인공인 6대 임금 단종(1441~1457)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문종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세조)
에 의해 왕위를 찬탈 당하고, 그 이듬해 15세의 나이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
령포에 유배되었다. 그후 17살에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꽃다운 생을 마쳤다. 영월
주민들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 가장 슬픈 역사의 화신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단종문화제를 매년 개최하는데,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사록에 따르면 노산군이 유배되던 그해 초가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영월읍내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기거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던 중 경북 순흥에서 금성대군이
일으킨 노산군의 복위 계획이 탄로되자 세조는 금부도사 왕방연을 시켜 단종에게 사
약을 내리게 하였다.
한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닯은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찌하여 슬픔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 단종의 자규시 -
<사진; '09.11,30 청령포 소나무숲에서>
청령포 단종비가(端宗悲歌)
조선왕조 500년을 님 그리듯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돌아
영월땅 가는 길엔
겨울강 어귀
차고 시린 님의 넋이
는개로 메마른 대지를 적시던 날
옛날인 듯 어제인 듯 흐르는 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청령포를 휘감아 돌아나는데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온
소나무숲에 관음송은 눈물인 듯 빗물인 듯
아직도 그날의 슬픔에 젖고 있다.
어린 님의 심중을 헤아리던
맑고 깊은 서강의 물은
머리 풀어 그리움을 달래우고
눈물지며 쌓던 망향탑과 노산대엔
한서린 넋 달래는 까칠한 바위손만이
무수히 돋아 무정한 세월을
탓하누나.
빗속에 말없이 누워서도
끊이지 않고 사직을 말하는 단종은
이 가슴을 훑는 소낙비의 사연을
아시기나 하는 것처럼
천둥 번개 치던 그 날 폭우같은
아픔을 안기는 장구한 역사가
지금 이 시간도 망치질 하는 북악(北岳)에서
비가(悲歌) 되어 짙은 안개속을
떠돌 것일세.
(09.11,30)
아름다운 강변마을 '선암마을'을 뒤로 하고, 단종의 한이 서린 장릉과 청령포에서
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이렇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을 만끽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태백의 신께 감사드리고, 대간 2기님들과 그 영광을 함께 하며,
함께 즐거움 나눌 수 있는 당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진; '09.11,30 장능(단종의 능)을 오르며>
(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