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일에 취해 사는 남편이 모처럼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병원 일하고 남은 날은 골프 가고 해서 드라이브 한 번 할 기회가 없는 우리 부부.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했다.
막상 가려니 금방 생각이 나지도 않아
일일 여행으로 검색을 해도 새로울 곳도 없고
썩 끌리지도 않아
"산으로 갈거야 바다로 갈거야?"
했더니
"강으로 가고 싶은데~"
한다.
어제 비가 왔으니 폭포를 보러 가고 싶은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처럼 바람쐬고 싶다는 그이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강하니 근처에선 남한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때 처음 데이트 갔던 대성리에 갈까?
폭포가 있는 강촌에 가서 액티비티를 즐겨 볼까?
생각중인데 그이가
"얼마전 친구가 딸가족 데리고 남이섬에 갔더니 좋았대."
남이섬은 아직 갈 때가 아닌데 싶었다.
원래 가을 남이섬은 10월 세번째 주말에 호텔정관루에서 묵는 게 대박인데...
그러면 지금 남이섬에선 뭐할까?
젊은이들 데이트 코스에서 중년인 우리가 즐길 거리?
"여보 우리 짚라인을 탈까?"
금방 서로 죽이 맞아 우린 짚라인을 타기로 했다.
전에 타보니 하나도 겁나지 않아서
우린 젊은이들 틈에 끼어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입장료 포함된 짚라인을 겁내는 젊은이들 보란듯이 쌩하니 타고 내려갔다.
내려오다 보니 핑크 뮬리가 모여 심겨져 포토존이 보였다.
바로 거기로 가서 부부 사진도 찍고
사람들을 겁내지 않는 다람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 섬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중국인 공예작가의 해학적인 찰흙작품을 보기도 하고
이젠 별로 새로울 게 없는 관광상품도 둘러 보고
메타세콰이어길과 은행나무길 그리고 잣나무길을 걸어 보기도 했다.
그새 몇 개의 새로운 건물과 음식점들, 그리고 볼거리도 있었다.
평일이라 제법 한가한 섬의 여기저기를 걷다 보니
남편은 배가 고프단다.
떡볶이에 오징어 튀김을 얹은 음식그림을 봐두었던지라 망설임없이 그곳을 찾아갔다.
매운 음식에 리코타치즈얹은 샐러드파스타를 추가해 시켜서 허기를 채웠다.
지금보다 젊은 나이때라면 해질녘까지 시간을 보냈겠지만
우리는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주방에서 토마토두부달걀볶음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그는 잔디를 깎고 마당의 오디나무를 전지했다.
내 감정이 뭔가 아쉽다.
'뭐지? 그 높은 짚라인을 탔는데 성취감 같은 신나는 마음이 없네."
그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무표정으로 나이가 들 듯
어지간한 자극은 새로울 게 없다는 거 아닌가!
이젠 뭐 울 일도, 웃을 일도, 새로울 게 없어 시큰둥하다.
남들에게 작은 일에도 많이 웃고 감정의 기복을 즐기라고 말했는데
그 말 남에게만 하지 말고 스스로 명심해야겠다.
손자의 존재가 그런 의미에서 더 소중하다.
자주 사돈과 주고 받는 말,
"대가족 제도가 순리인가 봐요.
우리에겐 소일거리와 웃음을 주고
일 많은 젊은 아들부부에겐 쉼을 줄 수 있으니까요."
남의 애기를 들을 때
몇번이라도 처음 듣는 애기처럼 감동해주고 들어주는 게 사랑이라고 하던데
어지간한 일은 다 경험해서 새로울 게 없는 일이긴해도
2021년 9월 30일,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이날 이 시간.
남이섬 짚라인을 탄 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그런데 이렇게 시큰둥하게 여겨지다니...
타성에 빠지는 것은 감사기도를 봉헌하는 데에 가장 큰 적이다.
내가 경험하는 사소한 일조차 다시 돌아오지 않을 특별한 소중한 일이다.
오늘이라도 몸이 아프면 이 순간을 너무나 그리워할텐데....
아기자기 꾸며진 남이섬 산책을 하며
자꾸 손자생각이 났다.
'저기에 손자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예쁠까?
10월엔 아들 부부랑 여기 와서 하루 잘까?'
오늘은 오늘대로, 또 손자와 함께하는 그 날도
감사하고 특별한 하루다.
단양에서 라파엘과 패러세일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