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우 金白祐(1869 ~ 미상)】 "1920년 대한광복단 참모로 청산리 전투 참가"
1869년 출생하였으나,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19년 11월 1일자로 작성된 「간도청년회취지서(間島靑年會趣旨書)」에 발기인으로 서명한 것으로 보아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 1월 일제의 간도파견원 보고에 의하면, 간도청년회의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간도청년회는 1919년 옌지(延吉)에서 조직된 한인 청년 단체이다.
1920년 5월경 독립군 조직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서 참모로 활동하였다. 대한광복단은 3·1운동 직후 북간도 왕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 및 의란구(依蘭溝) 일대에서 편성된 독립군단으로 대한제국의 재건, 즉 복벽(復辟)을 주장하는 단체였다. 조직적으로는 왕칭현 이외에 안투현(安圖縣) 및 창바이현(長白縣) 등에 분단(分團)을 두고 1920년 8월 당시에 약 200명의 병력과 소총 400정, 탄약 1만 1,000발, 권총 30정 등으로 무장하였다. 1920년 10월 허룽현(和龍縣) 청산리(靑山里) 일대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 당시에는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연합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승전에 기여하였다.
청산리대첩 후 창바이현으로 이동하여 부하들과 함께 국내 진입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창바이현은 산세가 험하지만 함남 및 평북과 인접하여 당시 많은 한인이 이주한 곳이었다. 더욱이 1920년을 전후하여 대한독립총지단(大韓獨立總支團)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지역적 이점을 활용하여 대한광복단원과 함께 국내 진입전을 전개하는 등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감행하였다. 이에 일제가 적지 않은 병력을 보내 독립군 진영을 압박하자, 부하들을 이끌고 안투현으로 이동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