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루
옛날에, 부산 남포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간혹 “은단 가오루-” 하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었다. 일본제 은단이나 미제 껌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장사꾼의 소리다.
아버지는 가오루를 무척 좋아하셔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셨다. 몇 알씩 자주 주셨고 가끔 통째로 주시기도 했다. 내가 부산 집엘 가면 국제시장으로 가오루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셨다. 그렇게 해서 내 입에도 익은 가오루를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는 맛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 맛을 잊어가던 차에 생각지도 않던 가오루를 만나게 되었다. 얼마 전, 서울서 학여울 문학동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가오루를 주는 것이었다.
만년에 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찾아 부산에 가면 이거 두개 있는 데 너 하나 가져라 하시면서 슬며시 손에 쥐어 주시던 게 가오루였다. 아끼고 좋아하시는 가오루를 통째로 주는 그 의미를 내가 잘 알기에 가슴 뭉클한 적도 있었다. 그러데 갑자기 가오루를 불쑥 내미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가오루 몇 알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면 입안이 개운해지면서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런데 가오루를 한 웅큼 씹어 먹은 적이 있었다.
좀 오래되었나 싶다. 창원에서, 토요일 회사동료와 점심 먹으며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쏟아지는 빗속을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조금 전 하던 얘기만 생각하며 무심코 달리는데 앞차가 급정거를 하기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지만 차가 미끄러지면서 앞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얘기 하던 중 무심코 가오루 몇 알을 입에 넣는 것을 보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걸작이다. 음주운전 숨기려 냄새 안 나게 은단 먹는다며 음주운전으로 고발하겠단다. 마음대로 하라면서 가오루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보란 듯이 와작와작 소리 내어 씹어 먹은 것이다. 물론 맛은 개의치 않고 오기로 하는 짓이다.
우리나라 은단의 톡 쏘는 맛도 좋지만, 오랫동안 입안에 구수하게 남는 가오루 맛이 나는 참 좋다. 커피를 자주 찾는 사람을 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마시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오루 를 입안에 넣고 있으면 내 기분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한 번은 친구가 피우고 있는 담배를 빌려서 필터 속에 가오루 몇 알 밖아 넣고 피워 본 적이 있었다. 담배 연기 속으로 구수하게 냄새가 번져 나오는게 신기했지만 담배를 피울 줄 모르기에 몇 번 하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오늘, 가오루 몇 알 입에 넣고서 생각해 본다. 그 여인은 무슨 생각으로 내게 가오루를 주었을까. 별다른 의미는 없었겠지만, 내가 가오루를 입안에 녹이면며 이렇게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는 못하리라.
첫댓글 가오루를 주신 분 손들어 보세요. 누군신지, 많이 궁금 하네요. 하나로님 생각 많이 하게 되어 저는 좋은 글 읽어 좋은데요. 나머지 감정은 두분이 알아서 소화 하세요.
손 드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가오루를 하필이면 사연 많은 하나로님에게 불쑥 내민 '여인'께서 직접 답글을 써 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