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먼저다
문학 장르로 수필을 분류할 때 교술문학이라고 하였다. 수필은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수필 이론이었다.
가르침은 주제가 된다, 수필은 문학의 장르 중에 주제를 가장 많이 강조한다. 수필은 문학이고, 문학은 예술의 한 장르이다. 예술의 바탕이 되는 학문이 미학이다. 철학과 과학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전개가 바탕인 이성으로 인식하는 학문이라면 미학을 처음 주창한 바움가르덴은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라고 했다. 감성적으로 인식하여 쾌감(美)을 느끼는 것이 예술의 기본이라면 수필도 읽고 쾌감을 느끼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수필을 읽는 독자는 주제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감정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바쉬라르는 마음의 움직임을 ‘영혼의 울림’이라고 했다. 영혼의 울림은 우리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수필에서는 주제와 쾌감(재미)이 자주 마찰을 일으킨다. 주제를 강조하는 수필가도 있고, 재미를 강조하는 수필가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주제를 강조하는 수필이론이 중심이 되어 있다. 좋지 않은 수필이라고 평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주제가 없다 이다.
주제와 재미를 좀 더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수필은 수필이기 위한 형식이 있고, 수필로 쓰여졌을 때 담겨지는 내용이 있다. 즉 수필에는 형식과 의미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두 가지 요소는 겉과 안이라는 하나의 몸체이다. 사람들에 따라서 안을 튼실하게 하기 위해서 겉은 조금 허술해도 된다는 주장도 있고, 겉을 보면 구미가 당기도록 글을 써야 읽기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읽지 않을 때는 아무리 깊은 의미를 담아도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내용보다 재미를 주는 형식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재미를 강조하다보면 수필을 너무 가볍게 쓴다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오늘이다.
수필이 당면한 오늘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짚어 보면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필가들도 읽지 않는 수필을 쓴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이다. 원론적인 치유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읽도록 쓰는 것이다. 수필이 재미가 있으면 읽는다. 그러나 어떻게 쓰는 것이 읽도록 하는 쓰기인가 라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아니 무지무지하게 어려워진다.
수필 읽기에서 재미를 주도록 쓰는 것이 답이기는 하지만, 재미가 주제를 흐리게 한다든지(이 문제는 대부분의 수필이론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재미가 도덕성을 침해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든지, 재미만 추구하다보면 수필을 깊이가 없는 오락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한다. 그렇게 하다가는 지금도 문학의 변두리를 맴도는 수필이 문학에서 추방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이야기에는 속성상 우리의 심리적 긴장을 풀어주는 요소 즉 재미가 있다. 프롭이 러시아 민담을 수집하여 조사를 하였더니 대부분의 이야기를 몇 가지 내용별로 나눌 수 있었다. 내용별로 나눈 몇 가지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읽으니까 재미를 주는 구조이고, 형식인 것이다. 수필도 이처럼 이야기 형식으로 쓰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뿐만 아니고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언어 놀이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어머니가 외출하고 없는 아이가 줄에 묶인 고무공을 던졌다 당겼다 하는 놀이로서 어머니의 부재라는 긴장감을 감소시켰다. 고무공 놀이를 하면서 ‘포-다 (여기-저기라는 뜻으로 어머니의 외출과 귀가를 언어로 상징한다고 한다.)’라고 말을 함으로, 어머니의 부재를 언어로 바꾸어서 유희로 즐기더라고 했다. 우리도 긴장을 수필쓰기라는 언어로 바꾸어서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포-다 이론은 언어는 상징이다 라는 심리학 이론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수필도 결국은 상징으로 놀이는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필도 그와 같은 언어 놀이로 대치하면 재미를 주면서 심리적 긴장을 풀어주는 글쓰기 놀이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착한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는 심리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착한 사람이 불행해지느냐, 행복해지느냐의 문제는 별개이다.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고, 착한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이야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욕망을 만족시켜주므로 재미를 느낀다. 착한 사람이 불행하게 되었을 때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글이 읽힌다. ‘착한 사람이 불행해지고, 악한 사람이 잘 되었다.’라고 쓴 글은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고 한다. 수 백 년 동안 전해내려 오는 전설이나 민담이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더 이야기 하자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금지하고 있는 요건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사회적 가치’이다. 모든 민담이나, 전설들이 그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가까이로 서부극의 이야기 구조도 천편일률적이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을 이기는 구조이다. 그렇게 만드니까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였다.
그러고 보니 민담이나 서부극의 이야기는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구조이고, 재미를 주는 구조이다. 수필이 재미를 주려면 그와 같은 구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 사회는 착한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수필론에 따라 사실대로 쓰니까 재미가 떨어지고, 재미를 주려고 허구를 가져오니 수필론에 맞지 않고---.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곳감이 호랑이을 이기는 이야기'는 상징성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하는 언어놀이다.)
수필쓰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필에서 재미를 추구한다고 하여 의미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을 쓸 때는 의미는 잊어버리고,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의미는 재미에 덧붙여져서 만들어진다. 언어가 소통되려면 의미는 저절로 실리기 때문이다.
수필은 언어로 만들어진다. 언어는 이야기로 만들어지면 속성상 상징적 의미가 덧붙여진다. 수필에서 의미(주제)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수필쓰기에서 재미가 우선이다.
***수필은 재미가 먼저다. 라는 주장을 가져오면 딱 좋은데---. 수필론에 험집을 주지 않고 재미를 주는 수필쓰기 방법은 없을까..하나의 보기로 '상징'을 이야기 했다.
이제부터 우리 선생님들, 이 문제를 가지고 머리를 짜내어 봅시다.
첫댓글 수필론에 의하면 '수필은 제 3의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독자는 재미있어야 글을 읽는다. 사람들이 수필을 안 읽는다고 한숨을 쉬기 전에 어떻게 글을 써야 읽을까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글을 독자가 좋아하는 지를 우리는 압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쓰지 않습니까. 왜 일까요. '왜'를 피하는 글쓰기 방 법은 없을까요. 우리 선생님들이 이 문제를 따져 봅시다. '사실론'을 들고 나와서 글이 자꾸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ㅡ수필은 재미가 먼저다 ㅡ
이 주제를 갖고 생각을 말하려면 역설적으로
어떤글이 재미가 없었던가를 이야기하는것이 오히려 쉬울거 같습니다
먼저 제가 생각하는 몇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1 뻔한 이야기
인간사 이야기라 크게 다른 이야기는 없더라도 반도 읽지 않았지만 결론이나 작가의 시각이 보인다면 ᆢ
2 이해하기 어려운 글
유식한 문장만 나열되어 이해력 부족한 저같은 사람이 짜증나는 글
3 기승전결이 무시된글
읽으면서 독자가 새로 편집해서 이해해야 하는글
4 필요없이 긴 글
독자에게 읽는 재미보다 늘어져 지루한 느낌을 주는 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저의 글을 설명하는거 같아 부끄럽네요 ㅎㅎ
정말 좋은 의견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을 1, 2, 3,,4로 정리하여 올리신 글 같습니다.
모 교수님과의 대담에서 그 분은 재미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재미없는 글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집니다. 많은 선생님이 참여하여 어'떤 글이 재미 있는가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계급장 떼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수필 아카데미에 오면서
동민 선생님 같은 분을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처럼 글에 대하여 많이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글 쫌 더 잘쓰면 뭐할건데 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 선비들의 여유를 함께 할 마음은 충만힙니다
그렇지만
이런 토론에 글 한 줄 올린 여유없는 마음이 아쉽네요
저도 조만간 그렇게 될거 같습니다
동민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