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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그리스 신화
대본 라니에리 데 칼자비지(프랑스어 대본 : 피에르 루이 몰랭)
초연 1762년 10월 5일 프란시스 1세 탄생 축연일 기념, 빈의 부르크 극장
기타 빈 판본, 파리 판본, 베를리오즈 판본 등 3개의 판본이 존재
<2018 시카고 리릭 오페라 / 118분 / 한글자막>
시카고 리릭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 조프리 발레단 연주 / 하리 빅케트 지휘 / 존 노이마이어 연출 & 안무
오르페오........드미트리 코르차크(테너)
에우리디케.....아드리아나 추슈만(소프라노)
아모레...........로렌 스누퍼(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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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글루크 <오르페와 유리디스>(프랑스 버전), 2018 시카고 리릭 오페라
거장의 발레, 매력적인 소프라노
1954년 창단한 시카고 리릭 오페라가 2018년 리릭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이며 오페라단의 대표작으로 안착한 실황물이다. 글룩(1714~1787)의 대표작으로 파리 공연을 위해 수정된 이 작품은 드라마 발레의 황태자 존 노이마이어의 안무와 조프리 발레단이 함께 하며 발레로도 다시 태어났다. 노이마이어는 이야기 전달에 집중하기보단 특유의 군무진 연출을 통해 저승의 묘한 분위기를 장면마다 아름답게 드러낸다.
미니멀한 무대 장치와 원색의 조명만 갖춘 무대를 시카고 조프리 발레단의 단원들이 누빈다. 유리디스 역의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추슈만도 눈여겨볼 것. 빼어난 미모, 드라마틱한 음성, 발레단과 어우러지는 우아한 동작을 가미하여 미국에서의 '바로크 오페라'를 '바로크 뮤지컬'로 만들며 매력을 선사한다.
시카고 리릭오 페라는 1954년에 설립되었다. 당시 20대에 불과한 캐롤 폭스와 로렌스 켈리가 지휘자 니콜라 레스키뇨와 함께 시카고의 음악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 원래 명칭은 시카고 리릭 극장이었는데, 몇 년 후에 시카고 리릭 오페라로 바꾸며 오페라의 전문화를 다져나갔다. 캐롤 폭스는 창단 이후 1980년까지 26년간 총책임자로 활약하며 오페라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르페와 유리디스>는 2018년 시카고 리릭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인 공연으로 "승리와 기적으로 가득 찬 신선한 무대"(시카고 트리뷴), "글룩을 제대로 감상하려 한다면 시카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연주에는 우리를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뉴욕타임스)"라는 호평을 받으며 오페라단의 대표작으로 안착한 작품이다.
크리스토프 글룩(1714~1787)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1762년 빈 궁정극장에서 초연됐고, 1774년 파리 공연을 위해 수정됐다. 파리 공연을 위해 제목도 프랑스어인 <Orphee et Eurydice 오르페와 유리디스>라고 고쳤고, 이탈리아어 대본을 피에르 루이 몰랭이 프랑스어로 바꾸었다.
오페라로 태어난 작품이지만, 드라마 발레의 황태자인 존 노이마이어의 안무와 조프리발 레단이 함께 하며 이 공연은 발레로도 다시 태어났다. 1956년 로버트 조프리(1930~1988)가 제럴드 알피노와 함께 설립한 발레단이다. 노이마이어는 이야기 전달에 집중하기보단 특유의 군무진 연출을 통해 저승의 묘한 분위기를 장면마다 아름답게 드러낸다. 해설지(29쪽 분량/영·불·독)에는 작품 해설과 함께 안무에 관한 노트가 실려 있다. 이 작품이 그만큼 노이마이어의 연출과 발레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상물에서 눈에 띄는 존재는 유리디스 역의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추슈만이다. 캐나다 태생의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드라마틱한 음성, 발레단과 어우러지는 우아한 동작을 가미하여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다. 미국에서의 '바로크 오페라'지만, 모던한 분위기와 이지적인 미모로 이 작품을 마치 '바로크 뮤지컬'로 만드는 듯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1714~1787)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으로 이야기되는 3개의 오페라 중 첫 번째 작품. ‘기품 있는 소박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적 사실감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오페라이다.
새로운 오페라로의 도약
바로크 오페라가 인위적이라는 비판을 시작으로 고전주의 시대에는 오페라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 시도는 메타스타시오라는 대본작가에 의해 구체화되었는데, 그것은 ‘오페라 세리아’이다. 이 새롭고 진지한 오페라는, 그러나 처음의 시도와 달리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연속적인 반복과 같은 엄격한 패턴이 진부함을 주었고, 점차적으로 아리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수정되는 병폐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루크는 새로운 오페라 개혁을 주도하였다. 글루크는 오페라 세리아의 복잡한 줄거리와 화려한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 ‘기품 있는 소박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새로운 오페라 세 개를 작곡하였다. 그 첫 번째 오페라가 바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이다. ‘음악은 오페라 줄거리가 요구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의 핵심은 극과 음악의 자연스러움이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무용이나 성악의 기교적인 선율을 배제하고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기계적인 순환을 중단하였다. 또한 오페라 세리아에서 무시되었던 합창과 프랑스 오페라의 영향으로 발레 음악을 삽입하면서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아치오네 테아트랄레(Acione teatrale; 극장행위극)’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vs 프랑스, 그리고 새로운 조합
1762년 대성공을 거둔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1774년 왕립 음악 아카데미 연주를 위해 수정하게 된다. 사실 글루크는 그 이전에 오페라 수정을 결심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프랑스 버전으로의 개작을 기회로 수정을 가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버전으로 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카운터테너에 맞춰 오르페오의 음역이 수정되었다. 프랑스에는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전통이 없었으며, 이와 비견되는 것이 카운터테너였던 까닭이다. 수정과정에서 성악과 기악부분이 첨가되면서 오페라는 더 거대하고 길고 장엄해졌다. 이 새로운 작품은 프랑스 시인 몰리네가 프랑스 칼차비지의 대본을 기초로 하여 다시 쓰인 것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탈리아 버전과 프랑스 버전은 유럽에서 연주되면서 지휘자에 따라 조금의 변화를 갖기 시작했다. 몇 가지 기억될 만한 것이 1854년 리스트 지휘의 바이바르에서의 공연이다. 리스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파블로브나 대공비를 위해 〈오르페우스〉를 작곡하였는데, 이 교향시는 오페라의 서곡을 대신하고 동일 주제가 종결 부분에 첨가되었다.
1859년 베를리오즈는 콘트랄토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를 위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자신만의 에디션으로 개정했다. 이탈리아 버전과 프랑스 버전을 모두 고려하여 결합시킨 베를리오즈 버전은 1774년 프랑스 버전을 기본으로 하되 오르페오의 음역만 이탈리아 버전으로 사용해 4막 오페라로 재배열하였다. 이탈리아 버전은 단지 음악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만 사용하였다. 이러한 베를리오즈의 버전은 이후 가장 유명해졌으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1870년부터는 베를리오즈 악보를 3막으로 각색한 것이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이 악보는 이탈리아어로 돌아가서 베를리오즈가 프랑스 버전에서 삭제한 부분을 포함시켰다. 오르페오의 음역은 여전히 콘트랄토로 남았다. 이 버전은 1889년 리코르디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가장 인기 있는 버전으로 남아있다. 간혹 오르페오 역할을 바리톤으로 이조해 연주하기도 한다.
죽은 아내를 찾아서
아내 에우리디체의 죽음에 슬퍼하던 오르페오는 지옥으로 내려가 아내를 데리고 오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신 아모르는 오르페오의 음악이 지옥의 사자들을 잠재울 수 있다면 에우리디체를 데려올 수 있지만, 스틱스 강 동굴을 빠져나오기 전에 그녀를 본다면 영원히 그녀를 잃을 것임을 알려준다. 지옥에 내려가자 악마와 케르베로스가 위협을 가하고, 이에 오르페오는 노래를 부른다. 곧 이들은 오르페오에게 길을 내어준다. 엘리시움에서 에우리디체를 찾은 오르페오는 그녀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엘리시움에서 데리고 나온다.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오를 따라 나오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 묻고 포옹을 부탁한다. 그러나 오르페오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에우리디체는 이에 애정이 식었으며 차라리 지옥에 남겠다고 다그친다. 이에 오르페오가 뒤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체는 쓰러진다. 그녀를 살리려고 하나 그녀의 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 사랑의 신 아모르가 나타나 에우리디체를 소생시킨다. 지상으로 돌아온 두 연인을 보고 목동들과 모두는 기뻐한다.
주요 음악
2막 2장 ‘정령들의 춤(Dance of the Blessed Spirits)’
하데스에서 엘리시움으로 장면이 전화되면서 음악은 단조에서 전통적인 전원곡의 조성인 F장조로 변한다. 바로 ‘정령들의 춤’이라고 알려진 발레 음악의 시작이다. 짧고 단순한 선율이지만 상당히 아름다운 곡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버전에서 현과 2대의 플루트를 위한 부분이 확장되고, 솔로 플루트가 연주되는 가운데 부분의 첨가로 원곡(이탈리아 버전)의 길이보다 대략 3배가량 늘어났다.
3막 1장 ‘에우리디체 없이 무얼 하리(Che faro senza Euridice)’
3막 1장에서 오르페오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지옥에서 마침내 에우리디체를 찾아 나온 오르페오는, 그러나 에우리디체가 왜 자신을 보지 않느냐는 물음에 갈등한다. 사랑이 식었다는 그녀의 말에 뒤를 돌아보는 오르페오의 눈에는 쓰러지는 에우리디체만이 담긴다. 절망한 오르페오는 다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다. 처음 이 아리아는 너무 진부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이 아리아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루크는 프랑스 버전에서 이 유명한 아리아에 오케스트라 후주를 첨가하면서 비극의 강도를 더욱 올렸다. 풍부한 감수성에 절절한 오르페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아리아이다. 다행히 비탄에 잠긴 오르페오가 자살하려하자 사랑의 신 아모르가 두 연인을 살려주면서 오페라는 해피엔드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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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0년 4월 15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
지옥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오다 실수로 죽어버린 아내를 비통하게 부르는 노래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 의거한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87)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정가극·正歌劇) 개혁의 제1탄이며 합창을 제외한 등장인물 3명의 단순 명쾌하고 소박한 전3막의 오페라이다. 오르훼오(Orfeo, 오르페오)는 원전판(이탈리아어)을 알토(alto)의 카스트라토를 위해 썼으나 빈 초연 후 12년 뒤에 빠리(파리, Paris) 공연 때 여자 목소리인 앨토로, 가끔 옥타브를 내려 바리톤이나, 테너로 바꾸고 또 발레곡을 추가하는가 하면 ‘정령의 춤’으로 유명한 훌루트(풀루트, flute)의 아름다운 독주곡을 덧붙였다. 근래는 카운터테너가 많이 배출되어 뛰어난 오르훼오 역을 노래한 공연이 빈번해 지고 있다. 대본은 이탈리어로 된 빈 판이 칼짜비기(Ranieri de' Calzabigi)와 불란서어로 된 빠리 판을 몰린느(Pierre-Louis Moline)가 썼다.
아내를 찾아 지옥으로
독사에게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Euridice)의 묘 앞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각오가 되어 있다고 기도한 시인 오르훼오 앞에 사랑의 신이 나타나 복수의 여신이나 원령(怨靈)을 진정시킨 후 아내를 데리고 나올 때 무슨 일이 있어도 뒤 돌아 보지 않으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지옥에 내려간 오르훼오는 수금(竪琴)을 반주로 하여 노래를 하며 악령(惡靈)들을 진정시켜서 드디어 아내를 데리고 무사히 돌아 나온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 미처 도달하기 전에, 남편이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에우리디케를 참고 견디다가 하는 수 없이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순간 아내가 죽는다. 이때 오르훼오가 후회하며 애타게 부르는 노래가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이다. 비탄에 잠긴 오르훼오가 자살하려 하자 사랑의 신이 나타나 아내에 대한 성실성을 보여 주었으니 에우리디케를 살려 준다고 알린다.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디로 갈까?*
에우리디케, 에우리디케, 오 하느님!
대답해 주세요! 대답해 주세요!
나는 그대의 충실한 사랑!
그대의 충실한 사랑!
충실한 사랑!
(*부분 반복)
에우리디케, 에우리디케!
아! 이제 내게는
구원도 희망도 없소
하늘도 땅도 누구 하나 없소!
(*부분 반복)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사랑하는 그대 없이
오페라 개혁의 첫 번째 작품
글루크는 이 오페라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대로 나타나는 단순한 패턴을 과감히 배제했으며 그것은 대체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오르훼오의 감동적인 탄식(歎息)의 노래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이며 청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노래이다. 또 이 작품에는 긴 합창이나 발레 부분 외에, 조용하고 차분한 드라마도 포함되어 있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무티 지휘, 휠하모니아 관현악단/앰브로지아 오페라 합창단(1981) 아그네스 발짜(Ms) EMI
1762년 빈에서 초연했을 때의 판본(빈판)을 따른 연주이다. 가사는 물론 이탈리아어이며 오르훼오 역은 테너나 바리톤도 초연 당시의 카스트라토도 아닌 메쪼 소프라노가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빠리 공연 때 추가된 훌루트 독주곡 ‘정령의 춤’이며 화려한 발레의 디베르띠스망 등이 일체 들어가 있지 않다. 말하자면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의 이념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무티(Riccardo Muti)의 지휘는 이를 데 없이 신선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상쾌하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 고전 그리스극을 연상시키는 투명함과 강인(强靭)함이 돋보인다. 제3막의 유명한 (오르훼오의) 아리아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는 템포며 표정이 진한 슬픔과 절망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무티는 기복이 큰 해석 속에 듣는 이를 음악의 분류와 목소리의 향연으로 휩쓸고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 막이 내리기까지 단숨에 이끌고 가는 그의 [오르훼오와 에우리디케]는 글루크 연주사에 새로운 장을 추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명의 여성 가수 역시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한 솜씨를 발휘한다. 먼저 발짜(아그네스 발차, Agnes Baltsa)의 오르훼오는 그 관능적 체취를 배제한 냉랭한 노래의 감촉이 글루크 음악의 특성과 그대로 들어맞는다. 신들까지도 마음을 돌려 그들에게 회생(回生)의 길을 열어주는 사랑의 굳은 의지가 그녀의 노래 속에 힘 있게 솟구치고 있다. 또 마샬(Margaret Marhall)은 절묘한 오페라 적인 호흡으로 노래하여 감동적인 에우리디케 상(像)을 부각한다. 이 두 사람에 대비하여 그루베르바의 밝고 행복한 사랑의 신 ’아모르’는 아주 효과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고 있다.
[CD] 지기스발트 쿠이켄 지휘, 라 쁘띠트 방드•헨트 성악 콜레기움(1982) 르네 야콥스(C) Accent
쿠이켄(Sigiswald Kuijken)은 그의 연주양식의 근원을 가능한 한 역사적인 입장에서 밝혀내어 연주하려 했다. 초연 당시 오르훼오 역은 카스트라토가 노래했다. 그러므로 바로크 성악의 기교와 양식에 조예가 깊은 카운터테너인 야콥스(René Jacobs)에게 오르훼오 역을 맡겼다. 오늘날 카스트라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카운터테너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야콥스는 18세기에 출판된 성악곡집들을 참고하면서 당시의 노래 형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유명한 아리아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 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노래처럼 들리게 된다. 이는 에우리디케를 부른 마리안네 크베크질버(Marjanne Kweksilber)의 창법에도 적용된다. 바로크 방법에 통달하고 있는 수준 높은 가수들의 노래이다. 쿠이켄은 악단의 각 파트 단원들이 당시의 음향과 초연 때의 연주 형태를 부활하도록 도왔다. 많은 자료를 섭렵하여 템포와 리듬 해석을 결정하는 등, 지금까지의 글루크 연주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노력을 거듭하여 획기적인 [오르훼오와 에우리디케]를 이룩해 놓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1762년의 초연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고 다른 판의 뛰어난 부분, 아름다운 음악을 거두어들이고 또 텍스트도 아주 적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발췌 선택했다. 쿠이켄의 고악기 악단 ‘라 쁘띠트 방드’(La Petite Bande)는 그들 나름의 아름답고 우아한 음색을 한껏 발휘하면서 헨트 성악 콜레기움(Collegium Vocale, Gent)이 투명한 합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2막 끝 부분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종래의 낭만적인 색채를 없앤 이 합창단의 창법은 결코 외치는 일 따위가 없는 기품 있는 음색으로 신화의 세계를 잔잔한 감동 속에 오롯이 떠올린다.
[DVD] 헨헨(Hartmut Haenchen)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91) 요헨 코발스키(C), 쿠퍼 연출 Art haus (수입반)
거울이 달린 회전 무대가 만화경(萬華鏡)처럼 여러 차원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 시공(時空)을 초월한 설정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후,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점퍼 차림의 남편 오르훼오의 세계이기도 하고 아울러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이기도 하다. 참신한 설정은 귀재(鬼才) 쿠퍼다운 아이디어이다. 현대적인 모습의 오르훼오는 코발스키(Jochen kowalski)의 카운터테너이며 꼭 한번 들어둘만 하다. 빈번한 출연으로 거의 쉴 사이 없는 코발스키의 노래는 안정되어 있어 매력이 넘친다. 그는 특히 이러한 바로크 작품에서 그가 가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한다. 말과 음악의 일치를 지향(志向)한 글루크의 경우, 코발스키의 존재는 소중하다. 빈 판을 기초로 하여 근대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1991년 영국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공연 실황 녹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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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다음 백과>
오르페우스
Orpheus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의 아들로 초인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녔다.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태양빛을 본 오르페우스는 기쁨에 겨워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그녀는 사라졌다. 훗날 뮤즈들이 그의 찢긴 지체들을 모아 장례를 치렀고,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초인적인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하며, 그가 손수 썼다고 하는 글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오르페우스교 운동의 후원자이다.
뮤즈(아마도 서사시의 후원자 칼리오페)와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다른 설에 따르면 아폴론)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아폴론은 오르페우스에게 그의 첫번째 리라를 주었으며, 그의 노래와 연주가 너무 아름다워서 동물들뿐 아니라 나무와 바위들까지도 춤을 추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또한 아르고호(號)의 원정에 참가해 자신의 리라 연주로 마녀 세이렌들의 노래를 물리쳐 배의 안전을 도왔다고 한다. 돌아와서는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지만 그녀는 곧 독사에 물려 죽는다.
슬픔에 겨워하던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에우리디케를 되살리려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는 노래와 연주로 지옥의 강 스틱스를 지키는 사공 카론과 개 케르베로스를 매혹시켰다. 그의 음악과 슬픔에 감동한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생명과 빛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하데스는 둘 중 누구도 돌아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생명의 땅을 향해 올라가 다시 태양을 본 오르페우스는 그 기쁨을 에우리디케와 나누기 위해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고 그 순간 그녀는 사라지고 만다.
뒤에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여인들에게 살해당하는데, 그 죽음의 동기나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이스킬로스의 설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디오니소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던 아폴론을 더 존경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가 마이나스(Mainas:디오니소스 신도)들을 시켜 주신제에서 갈갈이 찢어죽이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머리는 레스보스로 떠내려가면서 리라를 타며 노래를 했다고 한다.
이 레스보스에 오르페우스의 신탁소(神託所)가 세워졌다. 오르페우스의 머리가 예언을 하는 오르페우스 신탁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탁보다 유명해지게 되자 아폴론이 오르페우스 신탁의 중지를 명했다. 뮤즈들은 오르페우스의 찢긴 지체(肢體)들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고,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하늘의 성좌가 되었다.
오르페우스에 관한 이야기는 중세 영국의 로맨스 〈오르페오 경 Sir Orfeo〉에서 행복한 결말을 맺는 이야기로 변형된다.
크리스토프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idice〉, 장 콕토의 희곡 및 영화 〈오르페우스 Orphé〉, 20세기 브라질 영화 〈흑인 오르페우스 Black Orpheus〉 등에도 오르페우스가 등장한다. 오르페우스의 가르침과 노래에 기반을 둔 헬레니즘의 신비종교가 고대 그리스에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러한 종교에 대한 일관된 설명이 될 만한 역사적 자료는 없다(오르페우스 종교). 대부분의 학자들은 BC 5세기경 오르페우스가 수립했다고 전해지는 교리와 전설에 기초해 오르페우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제들이 있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오르페우스 종교의식에는 그당시 환생한 것으로 여겨졌던 디오니소스 신을 나타내는 한 인물의 팔다리를 형식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절단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르페우스교의 종말론은 육신의 죽음 뒤에 오는 보상과 벌에 대해 많이 강조하며, 이 보상과 벌을 받은 후 영혼은 해방되어 진정한 삶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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