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동그라미
김동길
‘강남스타일’ 유튜브 시청율이 16억 회를 상회하였다. 지구인 세 사람 중에 하나는 싸이를 보았다.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그의 ‘강남스타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젠틀맨’이 연이어서 떴다. ‘말타기’ 춤을 세계인이 즐기는
모습을 보는 우리도 즐겁고 신기하다. ‘시건방’ 춤도 히트란다.
연전에 김장훈과 싸이의 합동공연을 보았다. 그들은 관객을 앉혀 두질 않았다. 모두 일어서기를 손짓했고 함께 열광시켰다.
일체감의 흥분을 유발하며 모두에게 흥을 부추겼다. 당시에 싸이는 김장훈의 조역이었다. 조역이 이런 유명가수가 될 줄
알았으면 더 눈 여겨 보아 둘 걸, 예약된 기차 시간이 임박했기에 공연을 끝까지 봐두지 못한 게 후회막급이다.
그가 처음 가수로 데뷔하던 시절의 일화를 들으니 웃겼다. 그의 목소리와 데모CD를 본 기획사는 미국에 있던 그에게 비행기
표를 보내며 초대를 하였다. 그러나 첫 면접을 한 사장은 크게 실망을 했다. 나이도 그렇거니와 중후한 몸매의 아저씨가 가수를
지망하 다니...그랬던 문제의 그가 결점을 넘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통통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착용한 얼굴에서 내 눈에는
여러 개의 원들이 보였다. 일그러진 타원형의 몸매, 갓 불어넣은 풍선처럼 빵빵한 얼굴, 동그란 검은 안경알 두 개, 그리고 둥글
둥글한 성격까지, 원은 그의 상표로 보였다. 그의 이미지를 원으로 상징할 때 그에게서 여러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싸이는 psy에서 나온 것 같다. 원은 정신psyche의 상징이고 일반적으로 원은 자연의 전체성을 상징한다. 분석가 프판츠Franz는
원(혹은 球)을 자기self의 상징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정신의 전일성全一性을 말한다. 사찰에서 보는 심우도尋牛圖(혹은 십우도)
에서 마지막 그림은 동그라미만 그려져 있다. 동그라미는 ‘나를 찾는 도정의 마지막에 도달한 깨달음’을 뜻하여 성숙, 인간의
완성을 암시한다. 싸이가 그런 의미를 다 이해하고서 원을 상징으로 선택하지는 않았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선정한 상징이
이렇게나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또한 원은 원시적인 태양숭배, 신화나 꿈, 혹은 티베트의
승려가 그리는 만다라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보다 현실적인 모습은 로마나 파리 같은 대도시가 원 모양으로 도시계획을 하였고
이를 닮은 세계의 수많은 계획도시가 그러하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증명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직관은 구체球体의 이러한
완전성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한 싸이는 뛰어난 직관을 타고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를 보노라면 춤으로보다 어릿광대가 떠올랐다. 완전 B급 춤꾼이다. 그런데 세계적 주류가 되었다. 그의 거침없이 당당한
움직임은 무엇인가를 깊은 상징을 품고 있음이다. 이 춤에서 상체와 하체의 표현을 달리하는 메시지를 다시 음미한다. ‘너무
폼 잡지 말라, 잘난 것들아’ 그런 의미는 아닐까? 이 속에서 나는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 내공과 한恨을 표현하는 집단무의식이
반영된 모습으로 새긴다.
새로운 춤에서 하는 짓, 그는 괴기한 비신사非伸士의 모습이다. 신사복 정장 차림으로 교통 표지판을 걷어차거나 나이 어린
소녀를 골탕 먹인다. 숙녀가 앉는 순간 의자를 빼내어 엉덩방아를 찧게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다. 몰상식한 짓을 통해서
신사의 음흉한 그림자를 드러낸다. 신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궂은 놀부 짓을 하며 몸을 흔들어 대는데 왜 세상이 열광하는
것일까? 세상이 참 얄궂다 싶은 기분인데 이런 현상을 어찌 읽어야 할까 혼자 고민하며 ‘시건방춤’을 보다가 옛날 마당놀이의
재현을 보는 느낌에 닿았다. 양반을 희롱하는 현대판 탈춤의 진수가 아닌가. 춤의 핵심은 상체와 하체의 표현을 달리 하는데
상체는 어딘지 잔뜩 폼을 잡고 하체는 골반을 노골적으로 좌우로 흔들어대는 것, 바로 양반의 이중성이다. 아랫도리가 엉뚱
하고도 음흉스럽다. 그런데 누구나 너그럽게 즐긴다. 나는 이런 어릿광대 모습을 우리 민족 특유의 응석으로 풀어본다. 응석은
양반춤에서 선비의 탈 뒤에 숨은 음성적 속성, 이중성을 희화하는 춤사위로 표현되어 민초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어른들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면서 퇴행적 놀이를 하는 데 나무랄 어른이 없다. 그 속에 포함된 춤의 비신사적 요소는 선비의
이중성을 드러내어 해학적인 웃음과 공감, 위트를 유발한다. 숨겨야할 신사의 이중성,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용기
때문에 젠틀맨이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참아내기 힘든 신사노릇, 현대인의 속성을 희화시킨 것이 아닌가.
춤으로 보아서는 그가 현대적인 청년의 괴팍한 인생을 연상시키지만 놀랍게도 그는 매우 무던하고 너그럽다. 성격의 원만성과
성숙한 친밀성은 그의 원이 함유하는 능력으로 내포되어진다. 그런 점이 한반도 역사의 민중이 품어온 내역, 그 속에서 성장한
특이한 존재, 그가 갖춘 내공이 놀랍다. 미국에 유학을 보내놓았으나 공부는 아니 하고 하고픈 음악에만 매달렸다니 작정한
목표를 위하여 감내하는 ‘멋대로’ 배짱도 있는 사내다. 본능에 충실한 이 ‘멋대로’가 그의 기를 살렸고, 경쟁시대 한국의 젊은
이로서 흔치 않은 여유, 그것이야말로 스트레스를 춤사위와 노래로 풀어내는 한의 승화를 창의적으로 풀어낸 이유로 풀어본다.
그의 꿈을 가로막는 아버지에게 했다는 일갈, “아버지가 춤 춰봤어요?”
통제의 해방감을 충족시켜 주기에 공감대가 커지는 현상, 억제된 분노의 발상이요 예술로 승화된 모습이다. 그의 표상, 동그라미
의 운명이 오래오래 지속되면서 우리 한류만이 풀어낼 수 있는 문화현상을 지구촌에 전달하는 생명이 긴 연예인이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그 유명한 싸이의 춤
강남스타일...
오랜만에 흥겹습니다
요즘엔 방송에 쉬는지
청송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