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파격적인 1번주자로 등판하기까지의 배경 본인의 강력 요청이 가장 큰 이유… 위험 부담의 우려도
"바쁘고 피곤할 텐데 (개막식에) 참석하러 가는군요." "순번 받으러 가야죠. (몇 장으로 나가게 되는지) 오더가 나오면 내일아리도 돌아올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쉬는 게 편하거든요."
기자는 어제 아침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이세돌 9단과 30분쯤 대화할 수 있었다. 그때 이세돌은 중국행에 대해 순번을 받으러 간다는 늬앙스의 의사를 표했고, 아마 점심 때쯤 이야기가 나와 중국에서 등판하지 않는다면 일찍 귀국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중국 공항에 내린 후의 첫마디가 "아무래도 내일 돌아가야겠네요"였다.
이세돌 9단이 농심신라면배 1번 주자로 등판하게 된 것이 화제다. 이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파격'이다. 과거 최철한과 박영훈이 1번으로 출전한 적은 있지만 실력을 떠나 팀의 막내였다.
기억에 남는 오더라면 지난 9회 때 이창호ㆍ박영훈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창호가 먼저 등장해 화제를 일으킨 것. 농심배 사상 이창호가 주장을 맞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세돌 9단은 '아군'인 기자에게도 '연막'을 폈던 것일까.
○●… "순번 받으러 갑니다"
"순번은 국내에서 정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뭐, 미국 가는 것도 아니고, 또 개막식이니까요. 집에서 나오는데 시간(대략 택시로 50분, 공항버스로 2시간)이 좀 걸리긴 합니다만…."
베이징에서 벌이는 1차전은 20일 4국까지를 끝내고 선수단은 21일 귀국한다. 이세돌은 22일인 이번 주 토요일 밤에 바둑리그, 다음 주 월요일 낮엔 KBS바둑왕전, 화ㆍ수요일 밤엔 KT배 결승전 일정이 잡혀 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엔 주장을 맡는 겁니까?" "단장님께서 결정하시겠죠." "저번 10회 대회에선 1번으로 나가고 싶다고 기자에게 강하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4번으로 출전해 우승을 결정지었었죠." "1번으로 나가고 싶지만 제 의사만으로 되는 게 아닐뿐더러 부담감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5연승 정도는 해주어야 하는데 1,2승 거두고 지거나 아예 1승을 못 올릴 수도 있거든요."
▲ 심각한 표정의 김인 단장과 이세돌 9단 사이에서 오간 이 대화에서 한국의 1번 주자가 결정됐다.
●○… 5연승 해야 하는 이유
기자와의 대화에서도, 또 개막식 단상에서의 임전소감에서도 '최소 목표는 5연승'이라고 밝힌 데엔 이유가 있다.
"4승 정도라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연승전의 특성상 본격적인 싸움은 후반이 될 것이고, 따라서 뒷 순번이 잘해 주어야 합니다. 앞에서 4승을 올려도 어차피 중국의 강한 선수가 3명이나 남게 되니까 위험이 따르지요. 하지만 5연승이면 그 수를 둘로 줄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우리 선수들은 다 강합니다."
이세돌은 오히려 김인 단장을 설득해 기어코 1번 등판의 승낙을 받아냈다. "고집을 좀 부렸지요. 새로운 변화도 재미가 있잖아요."
결과가 말을 하겠지만 뉴스 메이커 이세돌은 동행한 기자들에게 현장 취재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일인자의 활약상을 현장에서 담지 못하는 것은 애석하다.
▲ 개막식 대진추첨 결과 1국에서 맞붙게 된 한국과 중국. 김인 단장과 화이강 단장이 자국 선수의 이름이 들어있는 각각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며 발표하고 있다. 중국이 먼저 개봉했고, 이어 한국이 개봉했다.
○●… 처음 겪었던 사고방식의 착각
이야기 도중 지나가던 바둑계 입문이 오래되지 않은 일간스포츠 기자가 대화에 가담하면서 화제가 삼성화재배로 바뀌었다.
"거의 처음 저지른 착각이었어요. 수읽기에선 누구나 착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시 구리 9단과의 대국에선 뭐랄까, 사고 방식의 착각이었으니까요."
이세돌은 지난주의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구리에게 졌다. 자신의 대마가 살아있다고 오산한 것이 최후의 패인으로 작용했다.
"어이없게도 대마가 두 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었던 거죠. 따낸 곳 한집, 또 나머지 한집. 지극히 단순한 계산이었지요. 손질했더라도 반집을 이겼었는데…. 살아있는 말로 착각을 했으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따낸 곳은 완전한 집이 아닌 그 자체로는 옥집의 형테였다)
그로 인해 "잘하면 4강 싹쓸이"라며 들떠 있던 한국의 검토 진영은 댁 빠지는 재역전패에 열기가 싸늘히 식어 버리고 말았다.
"사실 구리가 졌더라면 더 억울했을 거예요. 줄곧 유리하게 전개한 데다 우상에서 수가 나는 것을 지나치고 말았거든요. 결과는 처음대로 된 셈이지요."
얼마 전 자신의 첫 바둑 출판물이었던 책(3권짜리 이세돌 명국선) 이야기도 잠시 했다.
"교정 보는 일이 정말이지 그렇게 힘든 작업인 줄 미처 몰랐어요. 봐도 봐도 끝이 없어요. 참고도는 대충 다 잡아낸 것 같은데 본문은 아마 어딘가에 또 있겠지요. 직접 쓴 작은 누나(이세나)의 고생이 많았어요."
"결혼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너도 해봐서 알잖아."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은 베이징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조훈현 9단의 '오더론'
베이징 공항에서 숙소인 르네상스 호텔로 가는 도중의 전세버스 안에선 초청인사로 동행한 조훈현 9단이 오더에 대한 견해를 잠시 피력했다.
"연승전은 뒷 주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앞에서 4연승을 한다고 해서 우승하는 것이 아니지만 뒤에선 3승만 해도 대부분 우승하잖아요." 그러면서 '못'을 박았다. "역시 정석대로 가는 게 옳아요."
그 바로 앞 좌석에선 김인 단장이 경청하고 있었다.
▲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숙소까지 바래다 줄 전세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선수들. 왼쪽부터 박승화 4단, 목진석 9단, 이창호 9단. 최철한 9단.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이제 이세돌 9단의 역할과 임무 수행만 남았다. 이세돌은 자신의 첫 출전이었던 지난 10회 대회 때 중국의 창하오와 구리를 연파하며 한국의 우승을 결정지은 바 있다.
3연승부터 연승 보너스(3연승 1000만원, 이후 1승 추가시마다 1000만원씩 플러스)가 붙는 농심배는 9연승일 경우엔 7000만원이 되지만 10연승 달성시엔 1억원을 준다.
만일 10연승과 더불어 우승한다면 이세돌은 연승 보너스 1억원, 대국료 3000만원(매판 300만원), 우승상금 2억원을 5분의 1로 균등배분한 4000만원을 합해 1억7000만원을 거머쥔다.
현재의 세계바둑계는 전반적으로 실력이 상향 평준화로 가고 있어 누가 누구에서 한 판을 이기기도 힘든 형국. 하지만 국내팬들은 그가 이세돌이기에 감히 기대를 갖고 설렌다. "과연 꿈의 10연승이 수립될 것인가!"
첫댓글 10연승~~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