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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청주] 응답은 필요하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판관 11,29-39ㄱ
+ 복음 마태오 22,1-14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 암몬 사람들과 맞서 싸우던 판관 입타는,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는데, 그의
외동딸이 그를 맞이한다. 입타의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을 지키라고
말하며 자기를 번제물로 바치게 한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유하신다. 초대받은 이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자, 임금은 아무나 잔치에
불러온다. 그러나 초대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지 않은 자는 잔치에서
쫓겨날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코헬렛은 “서원을 하고 채우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5,4)고 충고하고, 벤 시라는 “서원을 하기 전에 자신을 준비시켜 주님을
떠보는 인간처럼 되지 마라.”(집회 18,23)고 권고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에서도
발견되는 관습이었지만, 나중에는 금지되었습니다. 자기의 서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않고 서원을 했다는 측면에서, 입타는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서원을 취소했어야 할까요? 하지만
아무리 신중을 다한다 해도 서원할 때 그에 뒤따르는 결과를 모두 알아서
서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알지 못하는
미래를 내어 맡기는 것이 서원입니다. 입타 이야기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깨뜨릴 수 없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부부의 경우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계산해 보고 살펴본 다음에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열심히 살다가 가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엄습할 때, 결혼 당시 예상치 않은 일이라고 해서 결혼을 취소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입타의 딸은 자기가 죽어야 할 처지인데도 아버지의
서원을 지켜 줍니다. 기상천외한 이런 일을 맞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
결코 하나의 구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혼인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서도 서약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 서원이나 혼인 서약은, 내가 알 수 없는 미래
전부를 몽땅 하느님이나 상대방에게 맡기는 숭고한 약속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화답송 후렴).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태 22,3)
여러분은 초대를 많이 받으시나요?
어떤 초대에는 기꺼이 가고 어떤 초대는 무시해 버리지요?
여러분은 초대를 많이 하시나요?
초대한 사람이 와 주면 기쁘지요?
그런데 꼭 와야 할 사람이 안 오면 아주 섭섭하지요?
내가 존경하고 내가 도움과 은혜를 많이 받은 분이
나를 초대하면 만사 재껴놓고 가지요.
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 준 사람들도 그런 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여하튼 하느님께서 나를 초대하신다면 얼마나 가슴 뛸 일이겠어요.
신부님이 나를 초대하고 주교님이 초대해도 (ㅋ 잘 안하시지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를... 맙소사!
어찌 이런 일이... 말문이 막히고 감동에 숨이 막힐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초대에 못가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초대하신답니다.
그 초대에 감사히 기쁨으로 화답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지 않아서 하느님은 속상하시대요.
오늘 나를 초대하시는 그분께 '예' 하고 기쁘게
응답하시는 날 되시길 빕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마태오 22,1-14
하늘 나라의 잔치와 우리의 회개는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잔치의 시작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하늘 나라는 가장 좋은 베풂과 초대의 나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어
자신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습니다.
초대의 말씀도 거절하는 우리들입니다.
언제까지나 거절할 수만은 없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거절하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다시 만납니다.
최소한의 반성이라는 예복조차 차려입지 않는 우리들의 슬픈 모습입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는 자연스레 우리 삶을 비추어줍니다.
하느님을 거절한 이유는 언제나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잔치는 결국 우리들의 잔치임을
우리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천리길도 마다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할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열려있지만 우리가 거절하는 역설적인 나라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늘 나라의 예복을 잊지않는
하느님 자녀들이기를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 회 한 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하늘 나라의 예복
이상국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마태오 복음 22장 1-14절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늘 나라의 예복
우리는 세례를 통해 세례명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셨는지를 묵상하고
본받아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저마다 많이 다릅니다. 또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해석할 때도 자신이 경험하고 터득한 지식과 삶의 다양성 안에 기반을
두게 됩니다.
자칫하면 복음을 자신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는 복음은 하느님이신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만 전파되고 살아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길로 인도하시고, 신앙의 나침반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은 바로 이 사랑의 길이며, 거룩함의
길입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입어야 할 예복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예복을 갖춰 입었습니다.
그러니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세상에 전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예복을 입고 살고 계신가요?
○ 부르심 받은 이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 이상국 요셉 신부(한국 순교복자 성직 수도회) -
◈ [수도회] 구원의 빛나는 예복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구원의 빛나는 예복
어느 해 늦가을이었습니다. 때 이른 한파에 낙엽이 겹겹이 쌓이던 어느 날
수도원 마당을 쓸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큰 집’ 출신
형제분이 찾아왔습니다. 점심 한 끼 대접하면서 근황을 물으니 너무
괴롭다는 것입니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손에 쥔 돈은 한 푼도 없고 마땅히
잘 곳도 없다고...
마침 ‘주거래’하고 있던 따뜻한 보호 시설을 알고 있어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당장 모시고 오랍니다. 본인도 입소를 원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그 형제를 모시고 가는데,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오실
때 번거롭겠지만 구청 사회복지과에 들러 서류 하나를 떼어오라고...
그래서 그 형제와 함께 구청 담당자를 찾아갔겠지요. “어떻게 오셨어요?”
“네, 노숙인 발생 신고서 떼러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담당자는 저희 둘을
한참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하시는 말씀!
“두 분 다 입소하실 건가요?”
그 말씀에 너무나 큰 충격을 입은 저는 그 뒤로 가급적 옷을 잘 입고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워낙 적당적당 입고 살아온 세월이
오래 되서 쉽게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습니다. 꼭 값비싼 유명 메이커 옷이 아니더라도
신경을 좀 쓰는 것이 필요하겠죠. 깨끗하고 단정한 옷, 때와 장소, 나이나
직책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에도 옷을 잘 입어야겠지만 특별한 때, 예를 들면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는 반드시 그 장소에 어울리는 예복이 필요합니다. 진지하게 조의를
표해야하는 순간이나 마음을 다해 축하해야 하는 순간, 기본이 안 된
사람, 몰상식한 사람으로 눈총 받지 않으려면 정성스럽게 다림질 된
예복은 필수입니다.
인간 세상의 잔치에도 신경을 쓰는 만큼 하늘나라 잔치를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하늘나라 잔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복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아주 잘 어울리는 예복은 아무래도 ‘이웃사랑의
실천’이란 예복일 것입니다. ‘희생’, ‘겸손’, ‘자선’, ‘기도’란 예복이겠지요.
‘고통의 적극적인 수용’, ‘십자가를 기꺼이 수락함’이란 예복도 아주
아름다운 예복입니다.
그런데 모든 예복 중에서도 가장 값진 예복이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입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상이란 낡은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란 새로운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예복, 가장 값진 예복을 입었던
사람이 한 분 계신데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몸을 온통 오직
예수 그리스도란 예복으로 치장한 분이었습니다. 예복 중에 가장 빛나는
예복, 구원의 빛나는 겉옷인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온 생애를 단장한
왕후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기 위해 수도자로서 꼭 갖춰 입어야 할 예복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청빈이란 예복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찌릅니다.
“봉헌 생활에서 청빈은 ‘방벽’이자 ‘어머니’입니다. 봉헌 생활을 지켜
주기에 ‘방벽’이고,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끌기에 ‘어머니’
입니다.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수도자들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
다시 한 번 세속에 찌든 낡은 예복을 벗어버릴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응답은 필요하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응답은 필요하다.
잔칫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잔칫집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초대한 분으로부터 오래도록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은혜보다도 자기 잇속을
차리느라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당장 내가 먹고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내가 아니어도
축하객이 많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의 잔치는 매우 성대하였고
귀한 선물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초대 받은 사람은 핑계
아닌 핑계를 댐으로써 선물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차지하였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초대 받은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선택된 사람은 적었고 이 모습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결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에 응하는 사람만이
들어갑니다. 묵시록 3장20절에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드리는 역할은 나의 몫입니다. 그리고
응답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준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잔칫집에 가려면 그에 걸 맞는 예복을 입어야 하듯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만한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공로로
얻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의지에 의한 응답은 꼭 필요합니다.
“배부르면 산해진미가 귀찮고 배고프면 보리죽이 꿀맛이다.” 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헛배가 부르면 정말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헛배가 불러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일상 안에서도 미사참례, 성체조배, 피정이나 세미나, 신앙교육,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에 기꺼이 응하는 사람만이 영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고, 보람과 기쁨을 간직하게 됩니다. 똑같이 주어진
일이지만 은총의 기회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주님과의
만남, 관계를 새롭게 회복할 수 있는 일에 핑계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일에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주님께 대한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사람들은 저를 보면 컴퓨터를 무척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하긴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도 했고, 컴퓨터를 만진 것이 1983년부터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면 ‘컴맹’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작은 40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노안이 오면서부터입니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
점차 컴퓨터 모니터를 멀리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요즘의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가까이 하지 않으니 여기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거든요.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집중할 때에 그 분야에 전문가로 계속 살아올 수
있는 것이지, 관심도 사라지고 집중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전문가의
영역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왕년에는
말야~~”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를 깨닫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 하고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아예 시작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열심히 주님과
가까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그래도 제가 예전에는 사목회 활동도 열심히 했었습니다.”
곧바로 저는 “지금은 어떠신데요?”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머리를
긁적이시면서 “지금은 너무 바빠서 성당은 잠시 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시네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시면서 이제 다시 열심히 성당에 다녀보겠다는 결심을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왕년에 했던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얼마나 충실한가가
중요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진 시간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보다 우리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삶, 특별히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이 잔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왔지요. 그러나 이 잔치를 즐기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바로
혼인 예복을 갖춘 사람만이 즐길 수 있었고, 이 예복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잔치에서 쫓겨납니다.
이 혼인 예복을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요. 즉,
깨끗한 마음과 흠 없는 양심,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혼인 예복을 어떻게 갖춰 입을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단
일회적인 활동 하나만으로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과거라는 시간보다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자기 스스로 계속해서 만들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왕년에 한 번 마주쳤던 그
시선으로도 충분히 구원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드려야 주님의 잔치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규칙을 배워서 걷지 않는다. 걸음을 시도하고, 넘어지면서
배운다(리처드 브랜슨).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중에서(박광수)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그리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그들이 바라는 산삼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가기를 꺼리는 곳에 열매가 있고 그토록
헤매며 찾던 산삼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길은 누군가가 억지로 길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반듯한 길이 생긴다. 그렇게 생겨난 반듯한 길은 걷기에도
좋고 안전할지는 몰라도 그 길가에서 열매나 산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생겨난 열매나 산삼은 이미 누군가가 따간
상태일 터이니 말이다. 험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열매가 풍성한
나무를 만나게 된다.
다른 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이들이 고민하지 않는 것들을
고민하고 다른 이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기회는 역경으로
가장하고 나타나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는 법이다.
어제 책을 읽다가 큰 공감을 하게 된 책의 내용 일부입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 얼른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산삼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편해보이죠? 그러나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랍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기념일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예전에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인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지금 폭발물이 있습니다.” 순간 공항
출국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놓고서 일단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서워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만 최단 거리로 나갈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폭발물이 터진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아주머니들은 역시 최강이었습니다. 선물 보따리, 가방을
모두 들고 뛰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르는데, 가방과
선물은 챙기는 여유를 가지셨습니다. 나중에 그 상황은 연습상황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는지요?
신학생들에게 한 달 피정을 하면서 겸손의 3단계를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겸손은 주님께서 알려주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미사를 참례하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살아도 우리는
충분히 신앙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계명을 충실히 지킬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평일미사도 잘 참례하고, 반 모임에도
잘 나가고,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세 번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는
신앙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신장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헌혈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순교자들, 성인 성녀들은 바로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판관 입타의 이야기입니다. 입타는 하느님께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화장실에서 나와서의 입장이 바뀐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약속을 한 것들도 쉽게 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약속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
약속들, 이웃과 함께한 약속들도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5년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좀 더
열심히 살고, 신앙생활도 잘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2015년도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과연 내가 나 자신과 이웃, 하느님과 한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고향인 영원세상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2015년 나해 8월20일 목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고향인 영원세상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늘나라의 초대장을 받았고 하늘은 기다립니다.
고향 떠나 고향을 반대하며 살았다면 고향도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나라를 믿지 않고 도리어 증오하고 거부하며 지내다 죽으면 안 되죠.
그나마 죽기 직전에나 믿겠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에긍~ 너무하지요.
죽으면 땅에 묻혀 썩어버릴 몸에 온통 신경 쓴다면 영혼이 울 겁니다.
내 영혼을 잘 키워 고향인 영원세상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셔야지요.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오 22,14)”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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