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는 일병이 본인이며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오후 20:00 시 어느 부대 막사 안
지금은 장병들의 자기계발 시간.
목표지향적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부대만의 고유한 지침으로서
군대판 야간 자율학습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장병들은 일제히 책상을 꺼내 펴고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사단장이 시찰을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부대는 그 어느 때 보다 더욱더 공부하는 척을 하려 분주한 것이다.
연필 자국 하나 없던 장병들의 깨끗한 책에는 어느새 지저분한 낙서 자국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왔다는 흔적을 채워 넣으려 애쓰는 장병들의 얼굴과 손에 솟아난 핏대가
연필과 같은 방향으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당직 사령: 사단장님 오셨다!
침입자가 위병소를 통과했다는 보고를 받은 당직 사령이 지휘통제실에서 나와
큰소리로 외치자 규모가 크지 않은 막사 전체에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병사들은 공부하려는 시늉을 더욱 열심히 해내려 애쓴다.
엄숙한 내부 정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여러 간부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와
복도를 훑어보던 사단장은 이내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사단장: 뭔 구두약 냄새가 이리 심해?
간부들의 가슴이 철렁거린다. 체육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양옆으로 듬성듬성 칠이 벗겨진
검은색 벽면이 있었는데 페인트칠해 놓는다는 것을 계속 미루다 급하게 장병들을 시켜
구두약으로 때워 놓은 것이 너무 많은 양을 발랐던 모양이다.
간부들의 시선이 벽면과 서로의 얼굴을 교차해가며 불안하게 움직인다.
“쉬어! 충성! 3중대 생활관 목표지향적 자기계발 중!”
중대원이 모두 모여 있는 생활관에 사단장이 다른 간부들이랑 함께 들어오고
가장 문에 가까이 앉아 있던 병사 한 명이 칼같이 일어나 군대 예법으로 상황 보고를 한다.
병사들은 전원 공부하는 시늉을 멈추고 정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경례를 받은 사단장은 천천히 생활관 내부를 훑어보다가
한자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등병의 책을 집어 들고 질문을 한다.
사단장: 각자무치가 뭐지?
이등병: 모르겠습니다!
사단장: 왜 몰라?
입을 우물우물 거리는 이등병의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관등성명도 빼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등골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펜을 쥐었던 오른손은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사단장 예하 간부인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들의 눈빛에는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사단장이 재차 질문한다.
사단장: 고장난명은?
이등병: 이병! 아!무!개! 모르겠습니다!
사단장: 허허 이거야...
사단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린다.
‘소중한 내 장병들이 머리 굳지 않도록 큰마음 먹고 시행한 지침인데 이래서야….’라는 독백과 함께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로 고개를 젓는다.
간부들은 저놈을 구워 없애 버리겠다는 기세로 벼락불을 발산하며 이를 가는 중이고
장병들은 본인 대신 희생해준 전우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균형 잡힌 자세를 자랑하던 듬직한 중대의 막내 용사는
온갖 상상하기도 싫은 상념에 휩싸인 채 부들부들 떨며
눈동자의 지진을 반복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내부를 순회하던 사단장은 일병 한 명을 다시 지목한다.
사단장: 자네는 무슨 공부를 하나?
일병: 일병! 아!무!개! 입니다! 사단장님의 질문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대비하여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짬밥을 나름 먹었던 탓인지 정확한 사단 예법을 포함한 똑 부러지는 대답에
사단장의 얼굴에는 조금의 미소가 생겨났고 이를 눈치챈 간부들의 눈빛에서도 온화한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사단장: 그래! IT는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것인데 똘똘해 보이는구만. 끈기 있게 해봐!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위인들이 이 부대에서 나올지 또 누가 알아! 하하하!
간부들: 하하하하하하하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맞춰주려는 다른 간부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분위기는 잠깐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어 가는 듯하다.
사단장: 그래….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혹시 뭔지 알고 있나?
일병: 일병! 아!무!개! 예! 알고 있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꿈을 자는자는 꿈을….
일병은 하얗게 질린 채 입을 다문다. 핏기없는 얼굴에서 별안간 핏기가 솟더니
이번에는 퍼렇게 되기를 반복한다. 화목해 보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간부들은 그대로 얼어붙었으며 눈치 없는 장병들은 끅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웃음을 참느라 애쓴다.
침묵을 깨고 사단장이 다시 말한다.
사단장: 자 다시!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일병: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꿈을 꾸는…. 잠을…. 자지 않고 노력! 노력하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장: 그렇지!
격한 박수 소리가 사방에서 터진다. 꽁꽁 얼어버린 채 간절한 눈빛으로
제발 좀 구해주길 바라던 다른 간부들의 몸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부드럽게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흡족한 표정을 띤 사단장의 격려가 계속 이어진다.
사단장: 이 한두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꾸준히 쌓이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대 후에도 이 시간이 좋은 습관을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병: 일병! 아!무!개! 예! 알겠습니다! (더욱더 큰 목소리로.)
사단장이 만족한 표정으로 일병의 어깨를 툭 쳐준 후 간부들과 돌아간다.
뒤따르던 간부들이 일병을 돌아보며 척하니 엄지를 세워 올린다.
생활관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간부들의 무시무시한 전투화 굽 소리는
재수없게 얻어걸릴 다음 사냥감을 향해 윗 층으로 뚜벅뚜벅 움직여간다.
첫댓글 시인님의 부대일지 감상 잘 했어오~
고운 명절 되세요~
감사합니다 명절때도 전 일하러 갔다는 푸엑...
부대일지 잘보고 갑니다.
조범진 작가님
새해 복(福) 많이 많이 받으세요
따뜻한 ~구정연휴 ~잘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연휴때도 일을 하러 갔....
마치 제가 군 생활반에 있는 느낌이 드네요
잘 보고 갑니다.
죄송합니다 웃길려고 쓴건데
그런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드렸다니...큭...ㅠㅠ
조범진 작가님
안녕하세요
현역시절 병장봉급 1700윈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부대일지 잘 배독하고 갑니다.
설" 명절 온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덕담 나누는 행복한 날보내세요
만사형통 하세요 😄
켁...저 같았으면 자살했을 겁니다....
남자분들은 글을 보면서 공감이 많이 가겠네요~
시인님의 부대일자 잘 보았어요
즐거운 명절 되세요
사단장급 간부들은 언제나 침입자이죠...ㅋㅋ
조범진 작가님 안녕하세요
부대일지 감사히 배람하고 갑니다
즐거운 명절 가족들과 덕담
나누시며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참 지나 인사 올립니다 지회장님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조범진 작가님,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길었던 5일간의 설 명절 연휴도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또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이번 명절도 코로나19로 가족 친지들 많은 분들과
함께하지는 못하고 조용히 보낸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글,
부대 일지 보니,
힘들었지만 옛 군대생활할 때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그 시절 추억 생각하며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연휴 마지막 날 남은 시간 편안하게 보내시고
임인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지회장님 말씀으로는 재밌는 추억이라 하셨지만
아마...그시절 해병대는...아니시겠죠...저를 생각 하셔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시라 생각합니다 ㅋㅋㅋ
펌프 관련 일을 하셨군요
저는 조만간 전기 현장에 있는 한 분 따라서 전기 현장으로 갈 예정 입니다
맞는 일인지 아닌지 두려움이 앞서는군요...
조범진 작가님 설명절 잘 보내셨나요!
작가님의 부대일지 잘보고 가요
군생활의 옛 생각이 많이 떠오르겠네요 오늘도 행복하시고 점심도 맛있게 드세요
명절 혼자 술 먹으면서 잘 보냈답니다 크흐흐...
사는게 바빠 늦게 답글 인사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조범진 시인님! 가족분들과 오붓한 명절 잘 보내셨나요!
부대일지 잘 감상했어요
남자들만의 공감이 많이 되겠네요
저도 자료를 올렸네요! 댓글 부탁드려요!
남자들은 공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간부들이 처들어 온다 하면 그 날로 잔일 투성이거든요...ㅋㅋㅋ
늦게 답장 드려 죄송합니다 요즘 사는게 좀...ㅋ.ㅋ
재밌는 이야기지만 손에 땀이 베도록 박진감도 느껴지네요~
작가님의 재치에 박수를 쳐 드리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작정하고 웃기려 쓴 것입니다
써 놓고 보니 많이 부족하지만요 ㅎ.ㅎ
사단병들을 구한 조범진 일병이었군요~
재밌게 잘 감상했어요~
사실..............그렇습니다 저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범진 작가님! 임인년 새해가 밝았네요!
작가님의 부대일지 감상 잘 했어요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으니 이렇게 고운 글이 탄생이 되었군요
재밌게 보고 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맞습니다 지금은 추억이죠
나름 똑바르게 대답을 해서 그것도 추억인 셈이 되겠네요
저도 말아 먹었으면.....생각 하기도 싫군요 -_-
작가님의 긴장했던 모습이 그려지네요~
작가님의 부대일지 감상 잘 했어요
화요일 하하 웃는 하루 되셔요^^
감사합니다 지금와서야 저도 실실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참...
조범진 작가님의 부대일지 재밌네요~
날씨도 좋고 작가님의 글도 좋고~
기분 좋아집니다
감사합니다!
답글을 다는 이 시점에는 날씨가 근데...
안좋군요..ㅠㅠ
조범진 시인님 오늘까지 춥다고 하네요
겨울이 다시 찾아오는것 같아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코로나도 조심하시구요~
부대일지 수필 잘 감상했어요
사나이들만 통하는 군대얘기 남편에게 하도 들어도 귀에 딱지가 생겼네요 ㅎ
오늘도 멋진날 되세요
안녕하세요 답글을 다는 시점에선 금요일 까지 춥다고 합니다 ㅋㅋ
켁 남자들 군대 얘기 질리게 들으셨는데
제가 딱지에 본드를 발라 버렸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