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억, 몇 백억 하면서
억 단위를, 애들 이름처럼 쉽게 부르는 시대에
몇 천, 몇 백은 고사하고
몇 만 원만 생겨도 신명나는 넉넉한 철부지
살벌한 세상, 변변치 못해서
넓은 길 두고도, 오솔길 골목길
그나마, 꼬불꼬불 울퉁불퉁,
산전수전 공중전 육탄전
갖은 수난 다 겪으며 살아온 인생길
얼굴에 철판을 깔고
두둑한 배짜에, 과감하게 밀어부여야 살아가거늘
주눅 들고 기 죽어
낮는 곳으로 밑바닥으로
배운 게 있나, 가진 게 있나
빽이 있나, 힘이 있나, 아니면 박력이라도 있나
키가 크나, 코가 그나, 인물이나 잘 생겼나
보잘것없는 고추만 하나 달랑 달렸을 뿐
가끔씩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 자신도 햇갈려
키 크고, 잘생기고, 우락부락 박력 있느 놈 만나면
오메 기죽어, 한편 부럽기도 하고
학연, 지연, 혈연으로 맺어지는 출셋길
가문이라고 말단 공직자 하나 없고
그나마 한이 되어, 자식놈이라고 하나 있는 것
온갖 정성 다 쏟아붓고 기대했건만
지 아비보다 더, 덜떨어진 철부지
돈도, 명예도, 여자도 다 실어하는
법정 스님보다 더한 무소유주의
마누라님 말씀처럼 이순, 칠순 다 되도록
약골에 철부지라, 힘을 쓸 줄 아나?
머리를 굴릴 줄 아나?
생쥐 같은 딸래미에 악처라고 소문났지만
극성스럽고 억척같은 마누라 없었으면
벌써, 노숙자 신세 면치 못했을 이 몸
달랑 두 식구, 그것도 못 거두는 가장
지 부모, 지 처자식도 못 챙기는 주제에
뭐 잘났다고 지도자? 봉사?
그게 밥이 되나, 돈이 되나?
학력도 경력도, 내세울 것 없는 지가
무슨 선비라고, 글을 쓰고 책을 내?
사십 년을 긁고, 긁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바가지, 바가지 나이롱 바가지......
문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