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전설
김용칠
어린아이 솜털 머금은 여리고 순한 양은
큐피드화살 콩깍지 단단히 씌어
방탄복 나일론 같이 모질고 기센 여우가 이상형이었어요
새침데기 여우 다가와 꿀 바른 입으로
살을 후벼 파는 고통의 고질병을 제발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두 손 모아 싹싹 비비며 애원 했지요
편작과 비견되는 양의 뛰어난 치유능력으로
여우는 고질병이 씻은 듯 나아서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나와 함께 살아 달라 하소연
백년해로 천지서원 후 함께 살게 되었는데
여우가족들은 하나같이 고질병을 앓고 있어
천사 양은 아무런 대가 없이 엄마여우와 그 가족들 위해
여러 달 밤새워 병 치유해 주었어요
그래요 새로운 삶을 탄생케 한 생명의 은인이 된 거죠
그렇게 빛의 속도로 흘러간 10여년의 주마등 세월
양의 정기를 달콤하게 빼먹고
나르시시즘에 취하여 순결둔갑 옷을 입은 여우가
그만 숫여우를 만나 아이코 바람이 났네
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아홉 꼬리가 대명천지에 드러나는 구나
뒷간 갈 적 맘 다르고 올 적 맘 다른 여우
백년해로 천지약속 헌신짝으로 버리고
결국 오월춘추 서시로 다가와 동시 아니 똥시가 된 여우
요즈음 양의 식스센스 섬찟섬찟 오한 전율의 이유가
여우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너무 기가 막혀 큐피드화살 부러트렸으나
가슴을 할퀴고 후벼 파는 철근 박힌 콘크리트 멍울이
재생의 은혜를 던져버린 배은망덕 요망함의 독침에 찔려 커져만 가고
철저히 씹어 먹힌 삶이
한의 덩어리 맺어 천지에 퍼져나가니
어찌 오뉴월에 서리가 맺지 않으리오
어느새 춘풍을 몰고 온 봄비가 내리고
화기를 품은 진달래 개나리 벚꽃물결 출렁이며
꽃비가 봄 향기를 타고 내리는 봄기운 완연하건만
양의 마음은
추풍낙엽 되어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차디찬 한의 얼음 속에 갇혀
녹지 않는 울음비 흘리며
한 겨울 속 세한도의 고목되어 떨고 있구나
---애지 여름호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트로이 전쟁은 절세의 미녀 헬렌을 두고 일어난 전쟁이었으며, 이처럼 사랑의 싸움은 모든 전쟁영화, 또는 모든 비극의 주제라고 할 수가 있다. 오딧세우스가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지키기 위하여 그토록 처절하게 싸운 것도 그렇고,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연인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의 세계로 내려갔던 것도 그렇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숨어서 그의 왕국을 잃어버렸던 것도 그렇고, 테세우스의 미모에 반한 아리아드네가 그의 아버지와 오빠를 배신한 것도 그렇다. 사랑은 종족의 명령이며, 이 종족의 명령, 즉, 에로스의 화살을 맞으면 그는 이성이 마비되고 눈과 귀를 잃어버리게 된다.
김용칠 시인의 [여우전설]은 그토록 아름답고 예쁜 여우의 말에 현혹되어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빼앗긴 순한 양의 비극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큐피드화살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진 순한 양은 “방탄복 나일론 같이 모질고 기센 여우가 이상형”이었고, “새침데기 여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꿀 바른 입으로” 다가와 “살을 후벼 파는 고통의 고질병을 제발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두 손 모아 싹싹 비비며 애원”을 했던 것이다. 도덕과 법이 없어도 그토록 순하고 착한 남편은 천하제일의 명의인 “편작”처럼 여우같은 아내의 고질병을 다 고쳐주고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나와 함께 살아 달라 하소연”에 “백년해로 천지서원 후 함께 살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여우가족들은 하나같이 고질병을 앓고 있어/ 천사 양은 아무런 대가 없이 엄마여우와 그 가족들 위해/ 여러 달 밤새워 병을 치유해” 주고, 그들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빛의 속도로” “10여 년의 주마등 세월”이 흐르고, “양의 정기를 달콤하게 다 빼먹”은 아내는 “나르시시즘에 취하여 순결둔갑 옷을 입은 여우가”가 되었고, 그 결과, “그만 숫여우를 만나” 바람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뒷간 갈 적 다르고, 뒷간 나올 적 다른 여우, 백년해로 천지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오월춘추의 서시”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똥시가 된 여우”----. 피는 물보다 진하고, ‘여우의 전설’은 희생양의 토대 위에서 그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다. 어질고 순한 양과 그토록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의 관계는 천적관계이며, 이 싸움에서 어질고 순한 양은 결코 여우를 이길 수가 없다. 어질고 순한 양은 도덕과 법이 없어도 살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토록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는 도덕과법률을 이용할 줄 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등생이었던 것이다. 어질고 순한 양은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 퇴화된 낙제생에 불과했던 것이고, 그토록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는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을 다 갖춘 것은 물론, 천하무적의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지식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며, 소수 지배원칙에 따라서 그 지식을 가지고 순한 양들의 몸과 마음을 유린하는 것은 물론, 그의 전재산을 합법적으로 다 강탈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양의 “식스센스 섬찟섬찟 오한 전율의 이유가” “여우 때문이라는 걸” 알아도 소용이 없고, “너무 기가 막혀 큐피드화살을 부러트”려 보아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거꾸로 “가슴을 할퀴고 후벼 파는 철근 박힌 콘크리트 멍울”만이 더 커져가고, “철저히 씹어 먹힌 삶이/ 한의 덩어리 맺어”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히게 된다. “어느새 춘풍을 몰고 온 봄비가 내리고/ 화기를 품은 진달래 개나리 벚꽃물결 출렁”거려도 “양의 마음은/ 추풍낙엽 되어 바닥에” 패대기쳐 진다.
이 세상의 삶은 강자의 법칙으로 되어 있으며, 이 강자의 법칙은 선악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지식, 즉, 총과 칼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김용칠 시인의 [여우전설] 속의 순한 양의 운명은 그토록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에 의하여 유린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몸과 마음을 다 빼앗기고, 전재산을 다 빼앗기고 “차디찬 한의 얼음 속에 갇혀/ 녹지 않는 울음비 흘리며/ 한 겨울 속 세한도의 고목되어 떨고” 있어도 순한 양이 도덕과 정의와 순결을 지켜줄 전지전능한 예수 그리스도는 없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그토록 사악하고 교활한 여우는 서양의 제국주의자와도 같고, 입만 열면 야만인을 문명인으로 개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그 어떤 다툼도 없는 하늘나라의 천국으로 인도해 가겠다는 천사의 역할을 자처한다. 제3세계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전통과 역사와 종교는 물론, 모든 영토를 다 빼앗기고, 오직 천사와도 같은 여우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게 된다. 순한 양의 영토에서 생산된 금은보화의 몫도 여우의 몫이 되고, 순한 양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생산해낸 온갖 곡물과 천연자원도 단 한 줌의 푼돈에 의해 다 빼앗긴다. 전국민은 노예가 되고, 어리고 예쁜 여자들은 그들의 침실과 성욕을 채워주는 양공주가 된다.
여우의 전설은 대사기꾼이자 강도의 전설이며, 궁극적으로는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의 전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순한 양이 순한 양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지 못하면 저 사악하고 교활한 침략자들의 정복욕을 물리칠 수가 없다.
모든 전설은 힘에 의하여 구축되고, 그 야만적인 잔인성으로 그들만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