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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하루
아침마다 학교에 도착하면 마치 붐비는 기차역에 온 것만 같다. 버스에서 쏟아진 학생들이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햇살 속으로 흩어져 나간다. 곳곳에 위치한 각자의 승강장을 찾아 분주한 바람을 일으키며 모두들 활기차게 걷는다. 나도 그 속에 섞여 정문을 지나 완만한 언덕을 오른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나무들이 부푼 머리를 하고 나를 반긴다. 새들이 그 위로 반짝이는 노래를 뿌려 대고, 풀숲에선 고양이들이 모짜렐라 치즈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침의 싱그러운 분위기가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어느새 도착한 인문대학 안은 벌써부터 북적이는 소리로 가득하다. 각 층에선 정비를 마친 기차들이 출발을 대기하고 있고, 학생들은 톱니바퀴처럼 계단을 오르내린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하며 나는 완벽하게 닦인 복도를 걷는다. 광이 나는 바닥 위에서 신발도 기분이 좋은지 끼익끼익 소리를 낸다. 두 개의 출입문 중 나는 뒷문을 열고 강의실에 들어간다. 순간이나마 시선의 무대 위에 오르는 건 부담스럽다. 나는 언제나 불 꺼진 관중의 좌석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대중을 선호한다는 건 아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이어폰을 끼고 꾸벅꾸벅 조는 승객들이 보인다. 문득 저들이 침대에서의 달콤한 잠을 포기하고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그곳은 갈등과 폭력이 사라진 이상 사회일까? 디스토피아가 된 미래일까? 행성 사이를 오가는 발전된 세계일까? 조심스레 빈자리에 앉아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오늘 이 기차를 타고 나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 하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가려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졌나 보다. 소란스러워진 주위에 눈을 떠 둘러보니 객실에 불도 켜지고 자리도 거의 다 찼다. 창밖에선 오늘도 익숙한 풍경들이 잘 다녀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정각이 되면 교수님이 들어와 커다란 외투를 벗고 기차의 운전대를 잡는다. 별도의 경적 없이 철커덕― 소리와 함께 기차가 출발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기차는 바람처럼 날아올라 한라산 쪽으로 방향을 틀고, 머지않아 건물이며 도로며 회색빛 풍경들이 시야에서 멀어진다. 기차는 곡선을 그리며 한라산을 따라 상승한다. 이윽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차가운 우유를 담은 투명한 컵처럼 온통 하얗게 물든 창들. 나는 어린 시절 구름에 파묻히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만약 그때의 나를 데려와 지금 창밖의 풍경을 보여 주면 무슨 말을 할까. 아마도 구름이 연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저 기차가 뾰족한 바늘처럼 푹신한 구름 속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창밖을 보니 어쩌면 구름은 연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하얀 창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본다. 천진하게 상식에서 벗어난 모습이 참 오랜만이다. 이제 기차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게 느껴진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땅은 만화책에서나 보던 인도 같다. 그것도 아주 옛날의 앳된 인도 같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기차는 갠지스강 유역에 멈춰 선다. 이어 교수님의 친절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곳은 인도 문명 발전의 중심지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서너 명의 승객이 일어나 하차한다. 객실은 금세 갠지스강 특유의 물내로 가득 찬다. 나는 열린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 집중한다. 힌두교도로 보이는 남자들이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맑으면서도 엄숙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늙은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아들들 같다. 그들을 감싸 안는 강물은 은빛으로 부서지며 계속해서 흐른다. 강둑에서는 비교적 신분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몇몇 남자가 제단에 불을 붙인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아그니’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다. 불길이 커지며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연기는 마치 용처럼 하늘로 승천하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문득 저들을 제단 앞에 모은 건 인간의 두려움과 공경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이 자연 앞에 납작 엎드렸으며,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그런 두려움과 공경하는 마음이 사라진 요즘 인류가 계속해서 특권을 누리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걱정스러운 의문이 든다. 과격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와 정의보다는 공포와 망설임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어 10분가량 정차했던 기차가 다시 철커덕―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갠지스강을 따라 달리던 기차는 어느새 히말라야산맥 부근에 이른다. 교수님이 갑자기 창을 열어 객실에 찬 공기를 들인다. 그리고 눈 덮인 트레킹 코스를 따라 천천히 기차를 몰기 시작한다. 나는 문득 정신이 또렷해짐을 느낀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 설원 속에서 별게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럼 도대체 중요한 건 무엇일까, 생각하는 도중에 어느덧 기차는 히말라야를 빠져나와 잔디가 산들거리는 평원에 들어선다. 저 멀리 낮은 잔디만이 가득한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나무 하나가 보인다. 기차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그 앞에 가서 멈춘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는 실로 거대하다. 교수님의 방송이 나온다. ‘이 나무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대다수의 승객이 일어나 하차한다.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보리수는 잔디 위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아래엔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떤 승려들은 나무에 기대서, 어떤 승려들은 초원에 누워서, 또 어떤 승려들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서. 마치 낙원 속의 한 장면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승복은 나풀거리고 다들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들이 깨닫고자 하는 바를 나는 모르지만 왠지 내려서 저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들 곁에서는 주머니 속 가시처럼 나를 찌르는 ‘중요한 건 무엇일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것만 같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나풀거리는 승복 사이로 승려들의 야윈 몸을 휘감은 고통과 눈이 마주친다.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전사들의 갑옷 같은 단호한 고통과. 그리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10분가량 지나자 몇몇 승객이 돌아온다. 출입문이 닫히고 이번에는 출발을 알리는 기적과 함께 기차가 움직인다. 나부끼는 풀잎들을 스치며 기차는 한동안 나아간다. 파스텔톤 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들. 시야에 걸림이 없는 평원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자연스레 어떤 영원을 상기시킨다.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영원을. 동시에 평원은 일종의 순수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바다가 인간들에 의한 발전을 거부하고 처음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같이. 하지만 이러한 영원이니 순수성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도저히 그것들은 인간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그렇게 평원에는 하나둘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시야가 마음껏 달려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던 인간들은 안심하게 된다. 어느새 기차는 평원의 막바지에 이르고 속도를 늦추어 한 마을로 들어선다. 요즘같이 높고 첨예한 건물들은 없지만 야트막한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붐비는 걸로 보아 꽤나 큰 도시인 듯하다. 기차는 붐비는 광장을 빠져나와 비교적 한산한 골목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정차한다. 교수님의 방송이 흘러나온다. “혹시라도 <재미>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마을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재미를 찾거든 여러분의 생각에 덧붙여 보세요.” 무심하게 출입문이 열리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기차에서 빠져나온다. 멍하니 한 100미터쯤 갔을까 문득 뒤를 돌아보니 한두 명의 승객이 같이 내린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속은 <재미>란 무엇인가로 가득 차서 흘러넘치려고 하고, 어디로든 가서 양동이를 구해야만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가다 구석에 버려진 망토를 둘러쓰고 군중 속으로 섞여 든다.
한참을 걷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길가에서 구슬놀이를 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바닥에 돌멩이 하나를 세워 놓고 한 걸음씩 떨어져 차례대로 구슬을 던진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흙집에 기대어 이들을 지켜본다. 한 아이가 돌멩이에 구슬을 맞추고 환호한다. 그러자 다음 차례의 아이가 신중하게 자세를 잡고선 구슬을 던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 빗나간다. 아이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구슬을 주우러 간다. 마치 춤추듯 구슬을 주우러 가는 아이의 아쉬워하는 표정 속엔 눈부신 미소가 깃들어 있다. 아이들은 돌멩이로부터 일정하게 떨어진 선 하나 긋지 않고 대충 물러나서 구슬을 던진다. 그렇게 한참을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놀라워하고, 즐거워한다. 나는 어깨를 털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놀이에 관하여 묻는다. 아이들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칸차! 칸차!” 하고 대답한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한 아이가 내 손에 구슬을 쥐어준다. 그리고 자두 같은 손으로 돌멩이를 가리키며 던지라고 한다. 이에 한 번 맞춰 보려고 힘껏 던졌더니 돌멩이를 한참 넘어가 버린다. 주변에서 아이들이 깔깔깔 웃는다. 나도 같이 웃으며 쏜살같이 구슬을 주워 와 이번에는 허리도 수그리고 신중하게 한 번 던져 본다. 그러나 아! 구슬은 돌멩이를 스치듯 비껴나간다. 동시에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을 전율시키는 아쉬움. 아이들은 성공의 환희와 실패의 짜릿함으로부터 일종의 무한동력을 제공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세 번째 투척에서 멋지게 돌멩이를 맞춘다.
30분 정도 지나자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아이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간다. 달려가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를 보곤 고개를 까딱 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달려 골목을 지나 어느 특이한 건물로 들어선다. 건물의 내부는 컴컴하고, 가운데엔 단상인 듯 둥그렇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단상을 둘러서 쉰 개가량 의자가 놓여 있다. 의자는 어둠 속에 있고 단상에는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햇살이 비쳐 든다. 건물 안에서 단상은 마치 어둠 속 보름달처럼 빛난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누군가가 등장한다. 아이들은 환호하고 그녀는 모자를 벗어 우스꽝스러운 도구를 꺼낸 후 빈 모자를 아이들에게 준다. 그녀는 뱀 한 마리와 나뭇가지 두 개, 작은 풀잎을 들고 단상에 오른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입술에 치켜들고 “쉬이이이,”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정적이 찾아오고 아이들의 눈은 달빛을 머금은 유리 구슬들처럼 빛난다. 곧이어 단상 위의 여자는 나뭇가지 하나를
첫댓글 마지막에 살짝 잘린 부분이 있을 듯하네요. 재미있는 생각이고요.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네요. 아마도 한 세대가 지나면 가상현실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수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몰입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책이 더 재밌는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펼쳐진 공간, 누군가가 해석해낸 결과물 등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그래서 대개는 본문에 서술한 것같은 상상이 더 흥미롭지요. 좋은 글 잘 읽었고요. 이렇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업도 재구성해봐야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