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계
정호승
양계장에 갇혀
형광등 하얀 불빛 아래 알만 낳고 살던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나오는 물과 사료만 먹고 살던
이제는 깃털마저 다 빠져버린
통닭이 되는 일 외엔 아무 일도 남아 있지 않는
허연 폐지뭉치 같은 닭 몇마리
어머니가 고향집 뒤뜰에 살며시 풀어놓자 봄비가 내렸다
감나무에 새잎이 돋고
거죽만 남은 폐계(廢鷄)의 날개에도 새 깃이 돋았다
감꽃이 피고
감들이 밤마다 발갛게 백촉 전깃불을 밝히는 동안
어느새 힘 잃은 날갯죽지에도 다시 힘이 솟아
처음에는 폐계들이 장독대에 푸드덕 올라가더니
오늘은 감나무에도 훌쩍 날아올라가
홍시처럼 붉은 한가위 달을 보고 호호 웃는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만 명이 넘게 보았답니다.
영화를 많이 보긴 하지만
애니매이션을 보고 눈물을 흘려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암탉 '잎싹'은 하루 종일,
아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양계장에서 알만 낳는 암탉입니다.
잎싹은 자신이 낳은 알을 한 번만이라도
부화시켜보는 것이 꿈이어서 알을 품어보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잎싹은 자신의 삶에 대해 무기력해져서
밥도 먹질 않고 항상 시름만 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어느 날 물컹물컹한 이상한 알을 낳게 되고
양계장 주인은 병이 들었다고 생각해서 잎싹을 버리고 맙니다.
정신을 잃은 잎싹을 노리는 족제비가 있었으나
청둥오리 '나그네'가 잎싹을 구해주고
잎싹은 나그네의 엄마 잃은 알을 품어 주어
초록이라는 새끼 오리가 태어납니다.
족제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늪에서 살게 된
암탉 잎싹과 청둥오리 초록.
이들은 대자연의 험난한 환경 속에서
죽음의 위험을 통과하며
자유와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안 보신분들을 위해 이하 줄거리 생략)
닭장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일정한 공간에서 사육사를 통해
일정하게 제공되는 사료와 일정한 공간
매일 매일이 똑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같은 공간, 같은 사료, 같은 시간, 같은 일...
예측가능하고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생활입니다.
농장주인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자라고 하면 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면 됩니다.
굶어죽는 일도 없고,
족제비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독립, 모험, 창조, 비전은 전혀 없습니다.
조류 독감 등 전염병이 돌면 몰살입니다.
알을 낳지 못하는 폐계가 되면
통닭이 되든지, 사료가 되든지, 거름이 되든지 할 것입니다.
교인이라는 많은 분들이 은혜를 알고는 있지만 누리지 못합니다.
자유를 알고는 있지만 누리지 못합니다.
율법의 멍에, 정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율법주의 닭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로 물든 독립선언문이 2000년을 넘어
율법과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었음을 외치고 있건만
언제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 노예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어 자유케 된 사람들에게
자유함이 주는 독립성과 솔직함과 모험성(때론 위험성)과
창조성과 소망을 견디지 못하고 ,
‘방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곧바로
율법주의의 멍에를 메어 끌고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이 시대의 수많은 교회들이 닭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 자격증이 있는 사육사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좁은 의자에 앉아 목사 입만 쳐다보고
목사가 주는 말만 받아먹고 있습니다.
목사의 ‘해라, 하지 마라’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합니다.
율법주의가 보장해 주는 것처럼 속이는
안정감과 무사안일함의 그늘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습니다.
너도 같고, 나도 같고 다 똑같습니다.
똑같은 닭장, 똑같은 형광등, 똑같은 먹이, 똑같은 일정에 안도합니다.
모두다 똑같이 닭장에 있으니 안심입니다.
똥과 오물로 냄새가 나도
닭장이 크면 클수록 안심이 됩니다.
다 똑같으니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사육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육사가 없으면 죽는 줄 압니다.
눈을 부릅뜨고 뙤약볕 속에서 하루 종일 들판을 돌아다니며
흙을 헤집고 땅을 뒤집어 신선한 먹이를 쪼아 먹을 능력이 없습니다.
닭장 구멍을 뚫고 족제비가 들어와
치킨 파티를 벌여도 눈뜨고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사를 민주적으로 청빙하고
윤리적인 목사를 채용하고,
각종 유전과 폐습을 없애고,
예배 방식을 바꾸고 ,
재정을 투명하게 개혁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전히 졸고, 사료가 나오면 먹고,
알을 낳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닭장으로 남아 있는 한....
세상에 널린 교회들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은혜로 은혜를 받아 잠을 깨어 닭장을 괴로워하고
사육사를 쪼는 잎싹같은 아주 적은 무리가 있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열린 닭장문을 통해 나와야 합니다.
예배당 문을 나와 자유로운 대자연으로 걸어나가야 합니다.
닭장은 바뀔 수 없습니다.
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고 친환경으로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닭장은 닭장입니다.
스스로 닭장이 아니라고 여기고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더라도
몸이 닭장에 있는 한 닭장 속의 닭입니다.
닭장에 남아서 사육사를 쪼고 혼자서 알을 낳아보려 한다면
잎싹과 같이 좌충우돌 끝에 시름시름 앓다가 정신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알을 낳고 폐계가 되어 구덩이로 던져질 지도 모릅니다.
청둥오리 나그네가 구해주면 다행입니다.
밖으로 나오면 아무도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들판을 뒤져 땅을 파서 벌레를 잡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며칠을 굶을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노리는 족제비를 피해 달려야 합니다.
뙤약볕과 비바람과 추위를 견뎌내야 합니다.
보금자리도 옮겨가며 풀과 나무로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입니다.
형광등 불빛이 아니라 진짜 태양빛을 받아 살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뛰어다니게 될 것입니다.
생명이 넘치는 먹이를 섭취하게 될 것입니다.
저마다 깨끗한 보금자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강요함 없는 무한한 독립과 자유속에서
자유함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자원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근육은 강인해지고 발톱은 날카로와져
족제비와도 맞짱을 뜨게 될 것입니다.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는 무리 중에서
섬기는 리더가 세워질 것입니다.
새깃이 돋고 저마다 위엄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날개에 힘이 솟아 감나무 위로 훌쩍 날아올라
달을 보고 호호 웃게 될 것입니다.
비전을 바라보고 날개짓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부화를 이루어 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성도의 주인이시며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며 믿는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시요.
닭장문은 열려 있습니다.
첫댓글 iDeaRush님의 닭장 비유에 필받아 써보았습니다.
아아.. 뇌폭님께 삘을 제대루 받으셔서.. 진짜 제대로 글이 나오셨네요.. ㅎㅎㅎ
글이 좋습니다. ^^ 강추.^^
내용 좋습니다.
또 이런 면도 있습니다.
양이 무리에서 이탈하면 이리의 표적이 되어 밥이 된다는 ㅡ(삯군들이 잡아두기 위하여 잘 인용하는)
오염된 닭장 !
곧 배도된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야겠지요.
그러나 혼자이면 안되겠지요?
족제비로부터 잎싹을 보호하는 나그네를 만나면 머.. 밥은 안된다는.. ㅎㅎㅎ
하모!
그리스도의 영으로 형제된 모임!
안전할겁니다.
즐독하고 ... 영화 꼭 봐야되겠군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유함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자원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찌리리잉...전류가 흐릅니다.
군사님 샬롬!!! ..... 나두 구해주소~~~!@#$+5 / 성남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도 찾아가셔서 떡을 나누시고 창기와 세리와도 친구가 되셨으며 회당에 가셔서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충만하여 잠자고 있는 예배당도 깨워야 하고 이단들도 호통을 처서 권면하여야 하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파를 떠나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확인하고 힘써 지키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시기가 나서 몰려와야 합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강합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할때 모든 사람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결국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니며 세상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의 사람은 새 계명 대로 예수님께서 제자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만나서 삼겹줄을 만들고 떡을 나누어야 합니다.
오십보 백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조금 많이 아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경주는 육신의 장막을 입고 있는 동안은 계속되어야 하며 예수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답글을 쓰다보니 동문서답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의군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본문글도 유익하며 생각하게 하는 글이며 ^^
바울로님의 댓글또한 좋은글 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갑니다
어린아이일때는 부모가 경제적으로나 모든면으로 능력이 없더라도
울타리가 되어주며 지켜주는 보호자가 필요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른이되어 독립하게 되어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인것 입니다
부모가 이제는 대신해줄수없으며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또 가정을 꾸미며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 갑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처럼 과정이 있듯이
예배당이 있어서 예수믿음이 시작이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형제들과 자라면서 경건의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성한자가 되어 독립하여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장성한자는 이제는 누구의도움을 받는것이 아니라
영생의말씀 곧 주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심비에 새겨져
예수만 믿고 예수만바라보고 예수만을 생각하며 전신갑주를 입게 됩니다
세상에 나가서 많은 시험을 받기도 하며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지각있는자가되어 뱀처럼지혜롭고 비들기 처럼 순결한자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그리스도의몸을 이루는 교회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이렇듯 여러방면으로 우리에게 필요를 공급하시며 인도하시는
주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피차 뜨겁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예수전파에 전념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주예수 아멘^^
받으신 필이 구절구절을 통해서 잘 느껴집니다. 깊은 밤, 잘 읽었습니다.
평생 설교만 듣고 신앙 생활 하며 죽어가던 사람이 그것을 내 팽개치고
성경을 읽을며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되어 힘있고 능력있고 튼튼한 신앙인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주의군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닭장에서
푸른 초장으로, 주님의 동산으로 옮겨져서
생명을 풍성히 얻어 누리고
생명을 부화하여
생명을 낳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대한민국에는 약 190개 정도의 닭장(교파)가 있다고 합니다.
나름의 사육방식을 정하고 나름의 사료를 주면서 자신들의 사육방식과 사료가 최고라고 선전을 합니다.
이런 저런 선전에 현혹된 소비자들은 닭장의 불결한 시설에서 온 몸은 더럽혀지고 항생제로 범벅된 사료를 먹으며 병들어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티비(피디수첩)에서 닭장의 비리가 까발려집니다.
그날...겁나게 운 좋은 닭은 그 이야길 듣게 됩니다.
나는 장로교 닭장에도. 감리교 닭장에도. 침례교 닭장에도...그 어느 닭장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나는 닭장을 사랑합니다...내가 사랑하는 닭장은 들어가는 문이 좁고 협착하여 아무라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스런 닭장입니다.
주의군사님의 말씀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갑사합니다~~